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크 Aug 12. 2023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법

허나 자본주의 DNA가 없는 경우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정점을 찍고 후기로 접어드는 시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첫 단추부터 잘 끼워서 오랜 세월 발전해 온 자본주의도 아니고 서양에서 온 흐름에 뒤늦게 올라타서 따라잡느라고 어딘가 얼기설기 어설프고 속도만 빠른 자본주의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워낙 분석하고 풀어놓은 사람들이 많으니 이제 굳이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다른 것보다 우리나라는 상거래가 발달했던 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관이 발달하고 주도했던 경우가 많은 것 같고 민족성을 뜯어봐도 이성적이고 거래에 밝기보다는 정, 흥, 감성, 따뜻함, 한, 유행 등의 키워드가 어울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 냉정하고 야수적인 자본주의가 들어왔으니 대충 생각해봐도 힘든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자본주의 DNA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노동의 가치보다 자산의 가치가 훨씬 빠르게 상승하는 것,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부작용들이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우리나라에도 빠른 속도로 찾아왔다. 느낌엔 IMF를 기점으로 우리나라가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저런 부작용의 영향도 가속화되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일해서 고소득 직장에 일하는 것보다는 부동산 등 일찌감치 우량자산을 확보해 두는 것이 부의 차이를 갈랐고 그 차이가 점차 심하게 벌어지면서 개인의 역량과 노력으로 따라잡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최근 코로나19와 정부의 핀트 안 맞는 부동산 대책이 겹쳐져 말도 안 되는 집값 급등을 겪으면서 나는 그 소용돌이에 본격적으로 휩쓸렸다. 아무리 괜찮다고 생각해도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특히 라이프사이클 상 일찍 결혼해서 코로나 전에 미리 집을 장만했던 주위 사람들과 이제는 아예 다른 계급이 되는 것 같은 그 박탈감은 마음챙김으로 해결이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위대한 자연의 원리에 따라 그런 상승장 다음에는 하락장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한번쯤 나도 여유를 가지고 고르는 입장에서 집을 사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몇 년 간의 마음 졸임 끝에 갑자기 그런 배짱과 여유가 확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대개 이런 상황에서 항상 의견과 관점이 다른 것이 부부인 것처럼 우리도 덜컥 집 계약을 하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계약이었거니와 애초 냉정한 거래/계약형이 아닌 우리 부부가 뭘 그렇게 이성적으로 잘 따져가면서 계약을 했을까. 그렇게 하고나니 이것저것 아쉬움이 많이 남아 마음 고생을 이후에 많이 했다. 무엇보다 당장 길에 나 앉을 상황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급하게, 아쉬운 입장에서 거래를 해야 했을까 하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남았다. 가장 큰 계약금액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복비며 사소한 것들까지도. 


자꾸만 나만 바보 같고 호구처럼 느껴지는 상황. 자본주의 시대에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이해타산으로 풀어지기 때문에 아마 이런 생각은 앞으로 끝도 없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거래에 강하고 현실적인 성향인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분명히 손해 보고 실수한 경험들은 있다. 대부분은 어렸을 때의 어려운 환경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산전수전 경험을 통해 야무지게 나이 든 경우다. 평범한 중산층 집에서 자랐고 뜬구름 잡는 성향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마음 약한 나 같은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나 싶다. 


내가 내린 크고 작은 결정들과 놓쳤던 기회들에 대해 곱씹으며 건강의 타격까지 다 경험해 보고 나니 이제 더 큰 일들이 많을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인생에서 제일 큰 거래였던 집 계약을 거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위에서 너무 많이 들었고 듣기에는 참 단순하고 쉬운 말. 나의 인생을 살으라는 것. 비교를 아예 안 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의 색깔, 컨텐츠, 가치관, 스타일을 찾아 큰 길을 하나 정해서 걸어가게 되면 그 비교라는 것도 훨씬 덜해진다. 이 시대 서울이 생존경쟁이 유독 치열한 곳이라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살아가려면 내 나름의 안식처를 찾아야 한다. 

주류와 달라서 힘든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안 가는 길을 찾게 되면 경쟁에서 벗어나 조금 숨 돌리며 살 수 있다. 거래에 능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약간의 손해를 조금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에는 정말 바보처럼 다 손해보고 시작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경험들이 한 두 번씩 쌓이면 처음에 아예 몰랐던 것, 못하고 끙끙댔던 것도 아주 조금씩은 개선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하나씩 찾아서 쌓아가다 보면 다른 곳에서 내 자산이, 행복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와서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뭐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들은 절대 단기간에 쓱싹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력도 시간과 인내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