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크 Aug 13. 2023

의료 기술의 발전을 빌며

세상의 모든 약골들에게 응원을


지난주엔 건강검진이 있었다. 

이제 기관 옮겨가며 받는 것도 귀찮아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계속 다닌지도 꽤 오래됐다. 예민한 데다가 겁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유독 내진을 잘 못 받는다. 내시경도 다른 동기들은 20대부터 매번 잘도 받던데 나는 쑤셔넣는 걸 잘 못해서 어영부영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면 내시경이 낫겠다 싶었지만 처음 받았을 때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갔어도 대기실에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차는 등 긴장이 돼서 혼났다. 마치 밤에 잠이 스르르 와야 하는데 내가 의식하면 잠이 안 오는 것처럼 의식이 또렷한 와중에 주사 맞고 필름이 끊어진다는 걸 알고 시작하는게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누워서 주사까지 연결했는데 불안감이 극도로 심해져서 "잠시만요! 저 그냥 안 할게요!!!" 하고 일어나려는데 어머 이미 약 들어갔어요~ 누우세요! 함과 동시에 필름이 끊어졌다. 수면마취는 잘 되었으나 그 와중에도 자꾸 뒤척임이 심했다는 전언. 그래서인지 끝나고 사나흘은 목구멍이 아프고 뒤끝이 안 좋았다. 


어려서 엄마가 귀지를 파줄 때도 동생보다 내 귓구멍은 유독 좁고 깊다고 했었는데 커서도 알약 캡슐이 그렇게 목에 잘 걸리고 뭔가 하튼 경계심이 많은 구조였다. 실제 통로가 좁은지는 알 수 없으나 쉽게 긴장하면서 근육 수축이 잘 된다는 것은 여러 상황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예민한 성격이니 소화장애는 심하고 원인은 모르겠고 불편하니 결국 내시경은 하게 되는데 해보면 아무 이상 없고 표제성 위염이 좀 있네요 하고 끝난다. 올해는 그래도 여러 번 해서 좀 익숙해진건지 큰 뒤끝도 없이 잘 하고 나왔다. 공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공산품들처럼 의사의 등 돌린 뒷모습만 본 채 끝나는 내시경 절차도 영 기분이 별로인데 매번 하는 생각은 왜 아직도 내시경 기구는 이렇게 크고 불편할까 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에 보면 신경외과 수술조차도 코 혹은 허벅지를 통해 가느다란 기구를 위로 올려보내 할 수 있나 보던데. 위 내시경 기구가 좀 가늘고 작아지면 굳이 수면마취를 할 필요도 없고 참 편리하지 않을까. 특히나 위장 질환이 많아 전 국민이 내시경 하는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효용이 더욱 클 텐데. 기술이 모자라서 못 하는 건 왠지 아닐 거 같고 뭔가 사업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 싶다. 실제 사람들의 필요보다는 돈이 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최근 또 불편했던 곳은 다름 아닌 치아 잇몸이었다. 정말 했어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 교정부터 예민한 성격으로 인한 이갈이로 마모가 심한 어금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트레스가 잇몸에 직격탄인지 노화 현상의 하나라는 잇몸 내려앉음이 3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심해졌다. 스케일링도 에피소드가 참 많은 분야인데... 한참 바쁘던 5년 전쯤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스케일링을 시작과 함께 중단했던 경험. 그리고 2년 전쯤 거의 고문이 이런 거구나, 하는 극한체험 끝에 스케일링을 다 받았는데 그날 밤 심한 잇몸 염증이 생겨 귀까지 통증이 올라와 울고 불고 잠을 못 잔 후 다음 날 치과로 달려갔더니 모든 것은 내 면역력의 문제라고 하여 크게 비관했던 사건 등.


그때 트라우마로 체력 좀 끌어올리자며 스케일링을 미루다가 이번에 큰 맘 먹고 건강검진 끝나고 바로 동네 치과에 예약하고 이어서 방문했다. (그건 그렇고 건강검진센터 치과 선생님은 어찌나 건성이신지. 이렇게 아프고 난리인데 치아도 잇몸도 별 문제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라...) 이 치과는 위생사 선생님이 매우 꼼꼼하고 싹싹하여 인상이 괜찮았는데 그 치석 쪼아대는 기계가 어금니에 딱 닿는 순간부터 미친 듯한 시림이 엄습했다. 이론적으로는 치아와 잇몸 위에 치석이 돌 형태로 붙어 있고, 초음파였나 저 돌 깎는 기계가 윙 돌아가면서 치석에 충격파를 줘서 부수는 작업이라고 했다. 따라서 치아나 잇몸은 그렇게까지 아플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난 시리고 실제로 잇몸에 상처가 나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거기에 트리플 크라운처럼 그 기계 돌아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다. 원래 거슬리는 소리인건 알았는데 이번에는 유독 왜 그렇게 힘들던지....


결국 대충 하다가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같은 학교 동문에 동생과 동갑이었다. 그렇다고 매우 친근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똘똘한 말투로 치아와 잇몸은 유전 요인이 매우 큰데 나 같은 경우는 (이미 전에 설명 많이 들으셨겠지만, 이라는 말을 많이 덧붙였다) 잇몸이 너무 많이 약해진 상태이니 잇몸치료를 두어 차례 진행하자고 결론지었다. 


건강에 유전 요인이 크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맨날 이 안 닦고 자도 충치가 잘 안 생기는 사람이 있고 관리를 눈물나게 해도 이가 썩거나, 염증이 잘 생기는 사람도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억울한 상황이 이쪽 분야도 적용되는 듯하다. 건치인 사람들은 잇몸이 이를 잘 덮고 있어서 그런지 사이에 틈이 잘 안 생기고 따라서 음식물이 잘 끼지 않고 더 신기한 건 침을 원료로 생긴다는 치석도 그렇게까지 많이 안 생긴다. 건치 유전인 우리 외가와 엄마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난 약한 구강건강을 우리 친가 유전으로 물려받았다. 최근 10년간 아빠가 치과 치료 받으시며 경험한 일련의 과정들을 옆에서 보고 들으며 나는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서 비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플란트나 여러 가지 기술들이 그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원래 치아라는 것도 골격과 비슷한 계열. 구조가 약한 사람은 보조 장치를 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건물도 사람도 골조가 중요한 법이다. 게다가 마취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예민한 사람들은 전체 마취를 하고 진행해도 시리고 아픔을 호소한다고 한다. 광고의 고전 게보린 광고에 나왔던 3대 통증, 두통-치통-생리통. 지금까진 통증의 왕은 두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와, 이번 스케일링 때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왔네. 삶의 행복지수에 너무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구강 건강. 치료는 어렵고 통증은 강렬하고 제일 중요한 요소는 다 타고난다고 하고. 아직까지는 참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분야이다. 이가 튼튼해야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고 즐겁게 사는 법인데. 최근의 소화 장애가 치아 때문인지 위장 때문인지 닭인지 달걀인지 이젠 그것도 모르겠고.


그래서 나는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간절히 소망하며 집으로 왔다. 다음 잇몸치료 일정을 예약해야 되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직은 예약을 못 잡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10년 후가 더 무섭지만 그래도 그때는 치과 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를. 대부분 기술의 발전이 탐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없지만 그나마 고맙고 좋은 건 역시 의료 분야인 것 같다. 세상의 수많은 약골들에게, 그리고 의료업계 종사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일 절임 채소 절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