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물의 매력이란
맘에 드는 작가를 발굴하는 것, 맘에 드는 시리즈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이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오면 다음 회차 방영일까지가 즐거운 것처럼. 최근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시대물 시리즈가 그런 즐거움이었다.
난 옛날을 좋아하는 레트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인류 문명의 황금기가 딱 1900년대 정도까지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도, 문화의 부흥도 딱 그 즈음까지가 절정이었고 모든 분야에서 명작과 고전이 등장했었다. 인간다움이 꽃피웠던 마지막 시절이었다.
물론 옛날에는 더 헐벗고 원초적으로 힘든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문학 작품으로 태어날 때에는 한 번 다듬고 걸러진다. 그리고 초점은 인간 군상과 사건들, 변하지 않는 것들에 맞춰진다. 한편 예술의 특성은 그 시대만의 아름다웠던 면들을 사진처럼 더 중점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러면 시대물은 마치 현재에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과 같이 아름다운 고전으로 태어나게 된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시대물은 너무 매력적이다.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과 삶의 본질적인 면을 잘 잡아낸 것들은 더욱 그렇다.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오랜만에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따뜻하고 여운있는 작품을 알게 되어 정말 좋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음 책, 다음 책으로 넘어 갔었고 지금은 다음 번역본이 출간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나 감탄했던 소개글.
"에도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고 가난했다. 그렇지만 삶은 좀 더 자연스럽고 본질적이었고, 사람들끼리 돕고 나누는 정이 끈끈했다. 행복은 겉으로 화려한 것들이 아니라 소박한 본연의 것들에서 나온다. 전에 없이 풍요롭다는 이 시대에 오히려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사회파의 거장인 작가는 지금까지 일본의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현대 추리물들을 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 혹은 치유로써 이 시리즈를 함께 쓰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시대물은 마치 풍속화처럼 특정 시기의 삶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이게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풍요로운 필체로 쓰여진 이 책을 읽다보면 옷이며 음식, 에도 시대의 다양한 생활상을 자세하게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다. 기계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의식주는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디지털 문명이 극에 달하는 요즘, 오히려 직접 키우고 만든 음식이나 옷, 집 같은 것이 더 그리워진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 그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다. 역사와 문학의 위대함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 시리즈에는 온갖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욕망과 사건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대배경은 지금과 다르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와 속내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흥미롭다. 새삼 미미여사의 필력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