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하나, 외로움 둘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살게 된 곳은 오래된 빌라 건물의 반지하 방이었다.
어두운 실내 때문에 낮에도 불을 켜야 했고, 시간의 흐름은 늘 시계로만 확인해야 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방음 또한 거의 되지 않았다. 고요한 밤이 되면 작은 소리도 확성기를 단 듯 더 크게 들렸다. 때문에 백일도 안된 듯한 옆집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우는지 졸려서 우는지를 짐작해야 했고, 매일 늦은 밤 문 앞에 나와 통화하는 남학생의 비밀을 강제로 공유 받아야 했다.
방음이 안 되는 건 귀를 막고 있으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건 절망에 가까운 일이었다. 창문을 열면 옆 건물에 가려서 보이는 건 온통 회색 시멘트 벽 뿐이었다. 가끔 벽에 비친 햇살을 보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맑은 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도 좋지만, 비 오는 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창문으로 보이는 거라고는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창문을 열어 둘 때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를 볼 수 있다. 회색 풍경에 엑스트라처럼 가끔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리를 보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20대 중반 여자의 다리, 반바지를 입고 바쁘게 뛰어가는 털 많은 40대 남자 다리, 아장아장 걷는 오동통한 3살 꼬마 아이의 다리, 그리고 느긋하게 거니는 나이 많은 길 고양이 다리까지. 한 번은 멍하니 창문 밖을 보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후 놀라서 한달 가까이 창문을 열지 않은 적이 있다. 물론 창문 너머의 다리를 지켜보는 일도 다신 없었다.
불필요한 구매를 줄이고, 좋아하는 음식을 덜 먹으면 좀 더 빨리 이사를 갈 수 있을까 싶어 그 목록에 커피를 넣었다 지워버렸다.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던지 하루는 이사 가는 꿈을 꾸었다. 언니가 이제 베란다에 화분을 놓고 식물도 키울 수도 있다 말했고, 난 너무 기뻐 ‘봉숭아 심어서 손톱에 물들여야겠네’하며 서둘러 사러 나섰다. 근처 문방구에서 봉숭아씨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어느샌가 투스텝을 밟으며 걷고 있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도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 ‘투스텝으로 걷는 건 아주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