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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Jul 07. 2019

집으로 가는 길

명절 냄새가 코끝을 스칠 무렵


통장에 오만원이 찍혔다.

떡값은 어딜 가나 똑같을 텐데 직급별로 보너스를 다르게 주는 회사의 정책이 우습다 생각하며 동서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터미널로 들어서려던 찰나 나는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서 있어야만 했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그곳은 이미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버스가 정체되어 내려가는 버스도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착이 늦어질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과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발에 밟혀 소리 지르는 사람.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은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설렘보다 혼잡한 길과 긴 대기시간에 지친 표정이었다.


나는 3시간가량을 더 대기한 후에야 비로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그들이 들고 온 짐과 선물들로 인해 버스 안은 더 비좁은 느낌이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어제 백화점에서 봤던 부모님 옷이 다시 아른거린다. 가게 앞을 서너 번은 왔다갔다하고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놓았던 옷이었다. 나는 대신 산 좀 더 저렴한 옷을 짐칸에 올리며 괜히 명절 떡값 핑계를 대보지만 아쉬운 마음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높은 건물의 회색도시가 사라지고, 초록빛 풍경이 들어올 때쯤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집에 간다.'라고 썼다. 다음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 들고 있던 노트와 펜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내 허리가 아무 감각이 없어지기 직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둘러 내리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어느덧 붉은 노을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두어 차례 쓸어가고 기분 좋은 낙엽 향이 코끝을 스치자 어느새 저 멀리 집이 보였고, 내 걸음도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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