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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May 17. 2018

나와 맞지 않는 것을 만나는 행운

오춘기를 겪는다는 건.

전공이 잘 안 맞아서요


꽤 어린 나이에 이것저것 인턴도 해보고 창업도 해 본 친구를 만났다.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지 찾기 위한 도전 중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취업준비,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떻게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공이 너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얼마 뒤,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다.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김태용 님의 강연을 들을 때였다.


그의 전공은 회계학과였다. 재미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아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했다. 군대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서 기업가에 대한 꿈을 키웠고 제대 후 여러 가지 창업에 도전했다는 그. 디자인 상품도 만들어보고 가구도 만들어보고 앱도 만들어보고 하다가 콘텐츠 큐레이팅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고 했다. 이후 무작정 떠난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 온 '리얼밸리'라는 인터뷰 콘텐츠가 유명세를 타면서 현재는 'Voyage'라는 우리나라 스타트업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가 전공 관련 일을 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 관련 일을 했다면 나에게 자극이 되어 준 '리얼밸리'라는 콘텐츠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발버둥 치고 싶을 만큼 맞지 않는 것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사춘기도 겪지 않았으니까. 사춘기도 없이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난 나다워질 기회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황을 바꾸려고 발버둥 친다는 건
누군가에겐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난 웬만하면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수동적이었던 걸 수도 있고,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부도, 대학의 전공과정도, 회사생활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차라리 정말 맞지 않았다면 다른 일을 도전해 볼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동안은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누리며 지내왔다. 그러나 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인생을 내가 만들어 가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틀 안에서 살아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너무 긍정적인 내 성격이 나를 그 상황에 머물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원하는 것이 있다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형편이 좋지 않아 할 수 없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유학을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좋은 학점을 받아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도 몰라. 그냥 지금에 만족하면서 살자.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잖아' 내 고민은 항상 '지금도 충분해'로 끝이 났다. 정말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나지 않는 이상 난 그냥 이 트랙 안에서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발버둥을 칠 기회가 찾아왔다.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 그건,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야 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먹던 게살을 나눠 주면서도 '엄마 정말 게살 좋아하는데 너 주는 거야'라며 생색내는 나를 보며,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노래 가사와 같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나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무조건 적인 희생을 해야 하는 엄마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희생하는 것이 잘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난 남들보다 더 민감했다. 발버둥을 치고 싶을 만큼.


그렇게 내 오춘기는 시작되었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나를 버리고 엄마로 존재해야 했던 2년의 시간은 나에게 엄청난 보상심리로 나타났다. 나를 찾아야겠다며 발버둥 쳤다. "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1년 동안 좋아하는 것만 이것저것 해볼 거야. 흠뻑 빠져서 몰입할 수 있는 일 찾을 거야. 처음엔 돈 못 벌어도 괜찮아, 나중엔 훨씬 많이 벌지도 모르잖아." 중2병에 걸린 아이처럼 나의 오춘기는 격하게 나타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너무나 목말라 있었다. 하루 종일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를 한 후의 자아성찰은 회사를 다니며 했던 것과는 달랐다. 대학생 시절 나를 찾겠다며 MBTA만 달랑했던 것과도 차원이 달랐다. 지금 하는 생각과 선택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깊이 있고 심도 있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를 찾고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 인생의 사춘기는 꼭 겪어야 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됐다. 빨리 겪을수록, 격하게 보낼수록 좋은 것이었다. 애매해서, 적당해서 그냥 버텨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일이었다.


부모님과 사회의 기대를 내려놓았고, 퇴직금이라는 경제적인 안정감이 있기에 이런 방황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도 참 다행이다.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 견뎌낼 만했다면, 나는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내 인생은 특별한 전환점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나를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 이건 누군가는 평생 가져보지 못한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 너무 감사하다.  



발버둥을 많이 칠수록
점점 나다워지는 건 아닐까?









[다음편]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관련 유튜브 영상 - 김태용 [리얼밸리 시즌1 종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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