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소녀 Feb 05. 2021

퇴사를 결심한 순간에 나타난 사람들


김밥과 눈칫밥을 먹은 지 두 달 즈음 지났을까. 팀 내의 조종사들은 비행이 바빠 얼굴을 볼 틈이 없었고, 사수 두 분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웠다. 두 달간 동기들과 으쌰 으쌰 해보기도 했지만, 딱히 이 회사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채용 후에 신입 사원에 대한 관리가 전혀 없었다. 회사가 성장하기에 너무 바빠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도 벅찬 상황이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하반기 취준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녀보니 항공사가 좋긴 한데 왠지 이 회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날이 따듯해지는 5월 즈음되었을까, 팀장님이 정년 퇴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사수 중 한 명은 다른 팀으로 분리되어 나간다고. 알고 보니 국토교통부 권고 사항으로 품질팀을 따로 분리해야 했고 그 결원을 채우기 위해 겸사겸사 내가 채용된 것이었다.


입사한 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팀장님은 바뀌고 그나마 익숙해진 사수가 다른 팀으로 간다니. 회사란 원래 이렇게 변화가 많은 곳인가, 했다. 하지만 이 혼란의 시기가 퇴사를 결심한 나를 이 회사에 머물게 한다.


조직 개편에 따라 조종사 중 행정 업무를 겸하는 우리 팀의 행정 승무원이 바뀌기 시작했다. 새로 온 행정 승무원 분 중 한 분은 유독 어려워 보였다. 일반직에게 친절했지만 뭔지 모를 포스가 느껴졌다. 왠지 이 사람한테 잘못 보이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일을 잘해야 한다기보다는 인성적으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새로 오시는 팀장님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다. 누군가는 무섭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좋은 분이라고 했다. 팀장 인사 발령 전 팀장님이 회사에 잠깐 들리셨을 때,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저분이 새 팀장님이야'라고 했다. 무서워 보이긴 했지만 좋은 느낌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조직개편과 팀원 변경 덕에 나는 항공사와 우리 팀에 엄청난 애정을 갖게 되었다. 아마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재 취준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전에 계신던 분들도 좋았지만 새로 온 분들은 뭔가 달랐다. 그분들과는 항공 업계가 이렇게 바닥을 찍은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한다. 힘들어도 그때가 좋았다며 함께 잘 이겨내자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관계다.


퇴사를 마음먹은 신입사원의 마음을 돌린 그분들의 특성은 이랬다.


첫째, 입사 3개월 차, 아직 적응기였던 나에게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줬다. 너무 많은 관심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과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분들이 보여줬던 관심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조종사가 어떤 직업인지 일반직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특히 본인들을 '상사'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그 말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항상 '동료'로 생각해 달라는 그 말 덕에 마음의 장벽을 많이 낮출 수 있었다. 그분들이 내게 보여준 적절한 관심과 애정은 그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으로 바뀌었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고 조종사인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둘째,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지시하고 기다려 주셨다. 행정 승무원은 비행과 행정 업무를 겸업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직처럼 5일 내내 오피스에 출근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회사는 최소한의 비행만 시키고 행정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지만 내가 다녔던 회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보기도 어려웠다. 일단 일을 하고 카톡이나 전화로 업무를 진행하고 보고 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보고는 일상이 되었고 모든 일 처리를 주도적으로 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만약 보통의 일반직 사수처럼 매 순간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다.


세 번째, 업무 과정과 결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어떤 업무 결과를 내놓을 때마다 칭찬을 정말 한가득 해주셨었다. 실수를 해도 절대 나무라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줬다. 그래서 업무를 할 때 문제가 생겨도 어려움 없이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업무 환경은 그때 당시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카톡으로 나눈 조언과 칭찬 중 몇 개는 아직도 캡쳐해서 가지고 있다. 이 팀에서 근무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항공사에 대한 애정으로 되돌아왔다.


업무 외에 가끔 가졌던 회식 자리도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같이 일했던 분들 중 몇몇은 지금도 같은 회사에 있기도 하고 다른 나라, 다른 회사에 계시기도 한다. 입사 초기에 퇴사를 꿈꿨던 내가 항공사에 애정을 갖게 된 건 아마 이분들과 보냈던 시간 덕일 테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입사 후 김밥만 먹은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