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직원 항공권을 썼던 때는 2016년 여름이었다. 친한 대리님 두 분의 제안으로 동기들과 함께 방콕으로 떠났다. 방콕 시내에 5인이 쓸 수 있는 커다란 레지던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놀라고 10만 원도 되지 않는 항공권 가격에 감탄했다. 백만 원을 훌쩍 넘는 티켓만 예약하다가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부산 왕복 KTX 값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왔다.
항공사 직원이 이용하는 티켓은 언제나 스탠바이 티켓이다. 확약이 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승객이 와서 내 자리를 구매하고 싶다고 하면 티켓을 반납해야 한다. 캐리어를 위탁수하물로 맡겼다면 찾아서 다시 돌려준다. 그만큼 항공사 직원은 '남는 자리 타고 가는' 것이다. 물론 복지에 따라 확약 티켓을 제공하는 회사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효도 항공권이거나, 결혼 축하 항공권이거나 혹은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경우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그때 당시 직원에게 굉장히 유했다. 직원들이 오면 카운터 마감 이 전에도 티켓을 주었다. 그래서 면세점 쇼핑도 할 수 있고 PP카드가 있을 때는 간혹 공항 라운지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국내 여행을 하고도 남을 가격으로 인천 공항을 편하게 돌아다녔다. 지금은 꿈처럼 아득한 시간들이 되어버렸지만. 그때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돌아다니던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청나게 자유로운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
회사 사람들이랑 해외여행을 갔다고 하면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다. 우리는 주말에, 가끔은 연차를 내고 함께 여행을 갔다. 특히 나는 '친구'라는 말에 인색한 편이라서 친구들이 더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바운더리가 강한 사람이 회사 사람들과 여행을 다닐 수 있냐고. 처음에는 여행 메이트 느낌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갔던 여행은 이곳저곳 구경해야 하는 관광이라기보다는 휴양의 느낌이 강했다. 맛있는 거 먹고, 마사지받고, 좋은 곳 구경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지금은 보릿고개 중의 보릿고개를 겪는 항공 산업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다들 돈 벌면 쓰자 주의였다. 그래서 지갑도 넉넉했고 덩달아 마음도 넉넉했다. 아마 항공 산업 최대 호황기를 겪은 항공사 직원들은 대부분 공감할 수 있을 거다.
회사 항공권은 최고의 복지였고 최고의 기억을 선물했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회사 동료들과 친해졌음은 물론이고 지금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친구들과 내가 이미 가본 곳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내가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친구들보다 항공권에 큰돈을 지불하지 않았기에 밥도 한 끼 살 수 있었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혼자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있었고 그 여행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들과도 10대 이후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고 그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도 다시금 깨달았다.
적고 보니 더 그립다. 호기심 많던 20대에 그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