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소녀 Jun 20. 2021

항공사를 떠나는 마음


5년 넘게 정들었던 항공사를 떠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두 항공사를 다녔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던 첫 번째 항공사, 그리고 3년 뒤 이직했던 두 번째 항공사.


첫 번째 회사에서는 업무적으로 다양한 경험도 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도 많이 보냈었다. 떠날 때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했기에 기회가 왔을 때 회사를 옮겼다. 


두 번째 회사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입사 후 7개월 차에 코로나가 터졌기 때문에. 내 담당이었던 외국인들은 코로나와 동시에 모두 자국으로 돌아갔다. 순환 휴직이 시작 되었고 근무하는 달에도 주 3일, 주 4일 단축근무를 했다. 그 외의 달은 유급/무급 휴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여행이 좋아서, 언제든 떠날 수 있어서 항공사에 입사했던 나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밝음과 설렘으로 가득하던 회사는 어느 순간 우울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주변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대화는 미래에 대한 걱정의 연속이었다. 각자 사정은 모두 다르기에 이해는 가지만 각박함 속에서 날카로워지는 이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나 또한 보이지 않는 끝에 불안감이 가득 차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조금 버티자고 다잡았던 마음은 어느새 이 곳을 떠나자 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운 좋게 채용 사이트에 올려두었던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항공사와 전혀 다른 콘텐츠 업계였다. 제안을 보자마자 승낙했고, 일주일도 안되어 인적성 검사와 두 차례의 면접까지 마무리되었다. 채용 확정이었다. 퇴사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 몫이 빠져나가 그들에게는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국가 지원금, 유급 휴가를 나누어 먹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살짝은 허탈하게, 그리고 도망치듯 항공사를 떠나게 됐다. 


새로운 회사의 인사팀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가장 써먹기 좋은 5-6년 차라고 하더니, 입사하자마자 업무가 쏟아졌다. 성장기의 항공사가 그러했듯, 성장하는 콘텐츠 회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채용 중이었다. 일자리 부족이라고 외치던 신문기사는 이곳에 적용되지 않았다. 오픈된 포지션이 서른 개가 넘었고 들어오는 이력서는 900개가 넘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두 달이 지나갔다. 잡플래닛에는 분명 6시 5분 되면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인사팀은 늘 야근이었다.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도 하고, 상반기 채용이 마무리되어가는 요즘에서야 숨을 돌린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트래블 버블이 가시화되면서 항공사가 다시 기지개를 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운항을 중단했던 이스타항공은 새로운 회사에 인수되어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퇴사했지만 계속 관심이 간다. 물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항공대학원을 다닐 만큼 업계에 애정이 있었고 그곳에서 성장하는 커리어를 그렸었다. 그런데 대학원 휴학도, 퇴사도 아쉽지 않았다. 나의 20대를 보내고 그렇게 정들었던 곳인데, 마음이 식기는 참 쉽다. 


항고사를 떠났지만 그들이 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잘 나가던 그때처럼 공항에 사람도 너무 많고, 편수도 너무 많아 스케줄 짜기 힘들다고, 승무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기를. 다시 호황을 맞이하기를. 그래서 잘 지내냐는 연락이 미안했던 작년이 무색해지기를 바라본다. 다시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가는 날, 우연히 옛 동료들을 마주칠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