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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페 Skopje, Macedonia

떠도는자의 기억법 #16

by 모래의 남자

6/23-26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불현듯 아무 이유없이 시작한 달리기가 햇수로 어느덧 3년째. 누구라도 언제든 할 수 있는 대단할 것도 없는 취미지만, 그때의 느닷없었던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이 이따금씩 생기기도 한다.


스코페의 바르다르 강변은 러닝에 상당히 친화적이었다(적어도 런던보다는 아주 훨씬).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았어도 매년 가을에 열리는 스코페 마라톤은 유럽에서 꽤나 큰 행사다.


운이 좋게도, 온라인으로 연결된 현지 러너들과 만나 강변을 달렸다. 러닝을 둘러싼 저마다의 개똥 철학부터 전 지구적 기후 위기, 마케도니아-그리스 다툼의 오해와 진실, 한국과 마케도니아 독립운동 역사의 유사성 같은 자못 심오한 주제까지 숨을 헐떡이며 그야말로 주제 넘게 떠들어대던 순간. 그리고 경기를 마친 축구선수들 마냥 서로의 유니폼을 교환하는 유치하지만 유쾌한 엔딩.


풀코스 완주 같은 건 관심도 감흥도 없지만 그럼에도 달리기를 좋아해왔던 이유와 명분,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건져올리고 이 작고 매력적인 도시와는 작별. 생명력이 아주 길 것만 같은 기억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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