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보이는 것들
지난주는 여름철 장염으로 무척 고생했습니다. 올해는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는데, 아무래도 ‘주52시간제’와 ‘재택근무’, ‘워라밸’에 적응된 제 몸이 오랜만에 만난 전투식 저녁식사를 견디지 못했나 봅니다. 그 때문에 독서나 영화 관람, 브런치 게시물 작성 등은 멀리 치워두고 간신히 회사만 오갔던 한 주였습니다.
하지만 塞翁之馬란 말처럼,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은 좋지 않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안정적이었다고 할까요? 평소 같았으면 ‘주말에 이것저것 하겠다’며 금요일 아침부터 분주했을 텐데 이번은 여유로웠습니다. 아무 일정도 없었던 덕분에, 마침 여름휴가로 강원도 정선을 방문한 부모님과 동생 가족을 따라가 맑은 산과 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도 ‘벌써 기계에 녹이 슬면 안 된다’고 여겼는지 정성껏 보살펴주더군요. 특히 제가 빨리 심신의 안정을 찾도록 제 타입의, 그저 조용히 쉬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카페를 찾느라 무지 애를 썼습니다. 제 몸 상태론 여러 곳에 가긴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일단 정선을 떠나 평창으로 이동했고요. 태국 접경의 고산지대 느낌이 드는 1차선(?) 숲길을 따라 올라가 산골의 작은 카페를 만났습니다.
참 기분 좋은 카페네요. 목공예품과 LP가 가득한 정경, 스피커를 타고 전달되는 클래식 라디오 방송,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많으니 하루 더 장사하란 말에 (지금도 주 4일만 운영하면서) “손님들 더 몰리면 문 여는 날 하루 더 줄이겠다”는 주인분의 여유가 상쾌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곳입니다. 운 좋게 사모님께서 주신 수리취 가래떡까지 맛보니 배도 든든해졌습니다. 제 컨디션 탓인지, 들고 간 책의 난이도 때문인지 독서는 실패했지만, 사실 뭐 그런 건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억수로 비 오는 날 저녁, 큰 우산 같은 카페를 만났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신께선 자기만족을 배운 이에게 선물을 주는 모양입니다. 문을 닫을 무렵 카페를 찾은 노부부. 교감 선생님 내외로, 올 초 근처에 여행자용 숙소를 열었다고 합니다. 시골집을 고쳐 만들었다는데 카페 주인분이 적극 추천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받고선 서울로 돌아와 바로 예약했습니다. 8월 말 휴가는 거기서, 마음 나눌 수 있는 지인 가족과 함께 보낼 참입니다. 숲속 카페도 다시 찾을 계획입니다.
어쩌면 신께서 주신 세렌디피티가 아니라, 그저 제 어리석은 충동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가 벌써 일정 계획에 설레고 있습니다. 그러면 된 거죠 뭐. 소소한 기쁨들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들 겁니다. 장염을 통해 놓쳤던 작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