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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un 26. 2023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말한다

엄마는 뿌리를 옮겨 심은 나무야 - 첫 번째

몇 주 전부터 <H마트에서 울다>를 서점에서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엄마를 추억하는 방식은 한국음식 그 자체여서, 저자의 엄마가 어릴 때 요리해 주셨던 집밥과 함께 먹었던 한국 음식들을 매개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내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각종 Banchan(반찬)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는 문화이고 정체성이어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그녀 또한 엄마에게 물려받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전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과 처음 제대로 얘기해 본 날,
나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겨울에 한국에 가면 꼭 국밥을 먹었어. 한 그릇도 아니고 막 두 그릇씩,
그리고 깍두기는 한 항아리를 다 비웠어."


소울푸드가 국밥인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는건 국룰이니깐.

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첫 데이트에서 한국식 고깃집에 가서 소고기를 20만 원어치 헤치웠다. 블루베리 농장에서 막 올라와 (오피스워크 말고 어디까지 해봤니 #3 참고) 대학원 준비하며 주머니가 얇아진 나는, 황송하게 얻어먹었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인생의 진리이기도 하잖아요?  



아빠는 회사 근처에서 맛있는 소고기를 먹으면, 꼭 우리 가족을 데려가셨다.

한번 발길을 튼 식당은 그 계절이 지나갈때까지 매 주말이면 갔던 기억이 날 정도였다.






처음에 해외에서 살게 됐을 땐 한국 음식 생각이 그다지 안 났다.

가끔가다 분기별로 한 번씩 한인타운에 가서 사 먹으면 될 정도?

스물두 살,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일 년간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한국 음식 거의 안 먹고 현지 음식 먹으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팬케이크, 파스타, 빵 같은 것만 먹고도 물리지 않아서 '난 나와 살아도 전혀 문제없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호주에 살면서는 약간 궤도가 바뀌었다.
지금은 매일 온갖 나라의 음식을 먹고 산다. 이민자의 나라이자 다민족 국가인 호주에는 각국의 이민자들이 가져온 컬처가 여기저기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 중동 음식은 물론이고 초기 이민자인 유러피안 음식은 이탈리안,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폴란드 등 각국의 음식이 여기저기 퍼져있다. 우리에겐 인도 문화권으로 친숙하나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음식들도 팔고 향신료와 식재료들도 그렇게 다양하게 팔고 있는 걸 친구를 통해서 알았다. 한국에서도 여러 국적의 음식을 먹고살았지만, 이곳 호주에서 먹는 음식은 현지의 맛이 더욱 강하다. 모든 나라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보진 못했지만 - 거의 대부분은 접해보았고 현지 여행객들에게 대표메뉴였던 음식들의 맛은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누리면서 음식 취향은 더욱 다양해지고 맛에도 촉각이 섬세하게 예민해졌다. 음식을 맛보면 각 문화권별로 사용하는 향신료와 소스는 다르기에 그 맛을 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집 팬트리에만 해도 꽤 많은 향신료들이 있고 냉장고에는 각기 다른 용도의 치즈와 소스들이 꽤 다양하게 항상 구비되어 있다. 하루에 세끼를 먹는다고 하면, 한 끼는 간단한 호주식 브런치로 먹고 나머지 한 끼는 태국 음식 (팟타이)를 집에서 만들고 나머지 한 끼는 한식을 먹거나 이탈리안 음식을 한다. 그리고 집에서 요리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한식은 밖에서 거의 사 먹지 않게 되었다. 외식할 기회가 있다면, 국밥러버인 남편이 주도해서 결정하지 않는 날은 주로 다른 아시안 음식들을 먹는 걸로 대체되었다.


이스트우드, 매릭빌, 뱅스타운 외 Pho (쌀국수)가 유명한 곳은 늘 가서 먹어보고 맛을 비교한다. 마라탕 맛도 한국과는 다르게 더 진하고 몸에 더욱 자극적일 것 같지만 한번 먹으면 잊기 어려운 맛이어서 면밀히 맛을 평가하며 먹으러 다닌다. Uber Eats에서 여러 태국음식을 배달시켜 먹어보고, 현지 느낌 나는 곳과 Chat Thai (챗타이) 같은 레스토랑에서의 맛을 비교하기도 한다. 호주 생활 일 년 차일 때 친구가 소개해준 레바니즈 음식을 먹으러 무슬림 인구 밀집 지역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이탈리안 피자 찐맛집은 손님이 놀러 오면 무조건 데려가는 곳이 되었다.



미국은 용광로 (Melting Pot) 그리고 호주는 샐러드볼 (Salad Bowl).

그래서 집에서 자기 문화권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도 집에서는 자기 언어를 사용하도록 더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백호주의'가 근간에 깔려있지만 그걸 없애고 원주민 (Aboriginal) 학살 등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메인스트림 문화인 걸 알게 되고 '난 다양한 문화가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살아있는 호주가 좋아'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샐러드볼' 같은 호주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가끔 이 다양성이 오히려 지겹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은 단일하고 우리만의 컬처가 살아있는 한국이 좋았다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늘 한국말을 썼고 청소년기에는 한국 친구들과 모여서 K 콘텐츠를 보며 자랐고, 한국에 사는 친척들을 보러 한국 여행도 여러 번 왔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여러 2세 친구들은 한국에 가끔 다녀온다.

한국 간다고 하면 모두가 '좋겠다' 하는 것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의 내게 한국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살고 있는 고향 그 잡채지만, 그들에겐 왜일까 의문이었다.

호주에 이민온 한국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데 '한국은 재밌는 지옥, 호주는 지루한 천국'이란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그런 걸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지켜보니 마치 우리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한국에 가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이 친구들도 내 문화와 정체성의 뿌리가 살아 숨 쉬는 한국에 가서 다름도 느끼고 활력도 받아오는 거였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느 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고 지냈는지가 아니었다.

그저 그 안에 있을 때 편하고 좋으면 되는 거지.

내가 선택하고 그 안에서 편함을 느끼고 또 찾게 된다면 그게 바로 정체성인 것이다.






작년, 한국에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삼 개월간 부모님 댁에서 체류했다.


나는 한국에 가면 호주의 햇빛과 마른 볕, 파랗고 높은 하늘이나 바다, 어디에나 널린 공원 같은 것들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웬걸, 자꾸 생각나는 것은 음식이었다. Pho를 이어 마라탕, 이탈리안 피자, 호주식 월남쌈이 그리웠고 심지어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케밥, 인도 카레 나중에는 KFC 패스트푸드까지도 호주의 맛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고작 삼 개월을 체류했고 한국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다니던 곳들이 거의 문을 닫힌 했지만 그래도 한국인데, 나는 호주의 입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각종 국밥부터 시작해서 엄마표 반찬들 (나도 먹었다)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외할머니표 된장찌개와 시장에서 직접 사서 올려주시는 조기, 그리고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늘 가시던 정육점에서 떼온 한우와 포항 수산시장에 가서 먹은 대게와 회, 그 유명한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까지... 그리웠던 것들을 원 없이 누리고 먹었는데, 어느 정도 그리움의 허기가 다 채워지자마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호주에서 먹던 Pho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쌀국숫집에도 가고 현지에서 배워오신 분들이 하는 곳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는데도... 도저히 그 맛이 안 났다. 호주에서는 우리가 아는 쌀국수면이 아니고 더 납작하고 두꺼운 생면을 쓰고, 육수에도 Pho 스탁 (치킨스탁 같은 것)과 각종 향신료가 더 들어가기에 맛이 더 진하게 우려 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호주 음식이 자꾸 먹고 싶다는 나를 보시더니,
내가 이제 호주에 사는 사람이 다 된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 겨울이 오면서 몸이 너무 으슬으슬했다. 호주의 겨울은 기온은 그리 떨어지지 않지만 이곳에서 자라지 않은 내게는 뼛속까지 아린 추위다. 의외로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몸이 이 추위에 적응해서 열을 더 만들어내는 것 같던데, 나는 관절 마디가 여기저기 돌아가는 느낌이 날 만큼 춥다.

아가 낳고 나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지라 이 추위에 몸살이 오려고 해서 파나돌을 몇 시간 간격으로 한 알씩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시어머님이 직접 닭뼈를 사다가 우려서 만들어주신 Pho도 빨간 월남고추를 썰어 넣어서 한 대접을 먹고, 집에서 건강식으로 식단을 짜서 먹으며 버텨보았지만 감기 기운이 떨어질 기미를 안 보였다.

"너도 역시 한국 사람이어서 한국 음식 먹어야 힘 나는 거야"


시어머님이 직접 끓여해 주신 갈비탕 한 그릇에 밥을 말아서 먹는데 평소의 나답지 않게 땀이 다 났다.
그리고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기운이 났다.
거짓말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기 기운도 없어졌다.  

평소엔 호주에서 먹는 각국의 음식이 좋아도 아플 땐 한국음식을 먹어야 몸이 낫는다니, 내 몸이 바로 반응하는 이 강력한 문화적 연결고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Pho가 좋아도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국에 밥을 말아서 먹어야 낫는 것도,
'국밥'을 소울푸드로 말하는 남편에게 처음부터 친근감을 느꼈던 것도.

아무리 호주 공립병원에서 아가 낳고 미역국 먹지 말라고 전단지까지 나눠주며 뜯어말려도
호박수프, 토마토 수프, 치킨 수프 다 제치고 미역국이 가장 당겨서 매일 먹었던 것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엄마가 해주시던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은 것마저도.

그저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다양한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나를 이루고 있더라도 이걸 빼놓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는 것.
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이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의 집단.

우리가 가진 사고방식과 함께 공유하는 기억들.

딱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그런 것들이 우리를 이루는 정체성이고 내가 속한 문화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음 편에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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