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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틀리Lightly Sep 20. 2020

Track 1. 어른이 되는 순간

잘못을 고백하는 일.

    잘못을 고백하는 일은 낯간지럽다. 게다가 누군가가 잘못에 대해 미리 비난해놓은 상황에서 '그것이 나의 잘못이오'라고 말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다. 비난하던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둘 다 민망한 상황이 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며 그 상황이 마무리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래도 오해가 커지기 전에 나의 잘못이라고 알리고 사과 혹은 반성을 해야 할까. 누구나 후자를 선택하면서 뒤탈이 없는 선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내 잘못이라고 말한다고? 진짜.?

    사람은 상황과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행위자가 분명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내 잘못이지만) 옆 사람들이 지적하고 표정이 굳어가는 그 상황에서, 실제 주인이 애초에 드러났다면 모든 지적과 비난의 화살이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로 향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마주 서고 아픈 화살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압도당한다. 도리어 사람들의 분위기에 동조해 같이 비난하지 않는 게 양반이다. 맥락을 이해하고 그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이미 화살을 날리고 있는 그 사람들의 입술이 여간 불편하게 느껴진다. 말도 안 되지 않아? 그렇지 않아? 어이없지 않아? 이해가 가?라고 나에게 동조하기를 묻는 질문들에 속이 울렁거린다. 그렇게 분명히 나는 알고 있지만 차마 내가 그랬다는 말은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무섭다. 그 비난의 화살을 내가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와 같은 편에 서있던 사람들과 반대편이 된다는 사실이 공포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비겁해졌다. 누군가 오해를 받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거짓이 사실이 되고, 비난의 화살은 반드시 꽂혀야 하기에 애꿎은 사람에게 날아간다. 안도한다. 다행이다. 내가 겪어야 할 수모를, 비난을, 책임을, 무시를 우선 저 사람이 짊어지니까 다행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우선 비난을 시작하고 그 순간의 짜증, 불만, 답답함, 스트레스를 빨리 털어버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우선 뱉어내고 사실은 나중에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된다. 나중이 되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때가 되면 다른 잘못을 비난하고 있을 테니까. 그때는 나도 비난할 것이다. 확실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 잘못한 사람에게 지적하고 꾸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아 물론 그 잘못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우선 내가 짜증 났고, 답답하니까 성질이 자꾸 난다. 근데 답답한 저 사람이 잘못을 했나 보다. 맞네. 저 사람이 잘못을 했다. 왜 그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 진짜 얼굴 보기 싫다. 안 봤으면 사라졌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기 싫다. 알아서 그만두면 좋겠다. 자꾸 거슬린다. 왜 살지? 아 저기서 또 뭐 하는 거야.. 신경 쓰여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유 없이 내가 일하는 족족 딴지를 건다. 처음이라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준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실수를 많이 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고 능숙하고 무리 없이 일을 해나갔다. 근데 처음과 다르게 나를 못 미더워한다. 이해가 안 간다.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사람 같지 않다. 무슨 사람이 저래. 그래도 나랑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인데... 내 뒷 소문이 안 좋다고?? 나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나 보다. 아니 무슨 어른들이 그래? 내가 지난번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는데 나는 나를 아니까. 그 실수는 내가 한 실수가 아니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나에 대해 고깝게 생각하기 시작한 거 같다. 말이 돼? 잘못이 있으면 직접 와서 물어보든지 사실 확인이라도 해보던지 해야지 조금 억울하다. 주변에 물어봐도 나를 온전하게 믿어주는 것 같지가 않다. 적당히 위로하고 적당히 에둘러 지적하고 그저 그런 사람들밖에 안 보인다. 내가 한 잘못이 아닌데.. 억울하다. 나 아닌데... 오늘은 너무 속상하다. 이걸 누구한테 털어놓자니 서로 사는 게 바쁜 데 구태여 이런 일로 고민을 털어놓나 싶고, 운수가 안 좋다고 생각해야지.. 내일 다시 일할 생각에 스트레스받는다. 아니 정말 내가 잘못한 거라고 믿는 건가?



    깜빡했다. 항상 하던 대로 했는데 그날따라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를 빠트려 먹었다. 큰 손해는 아니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버렸다. 내가 그랬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면 엄청 쪽팔린 텐데.. 사실 한 소리 듣고 지적당하는 게 기분 나쁜 게 아니다. 그냥 그 상황이 불편하다. 왜 나만 그런 건 아니잖아.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이 실수에 대해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아 그런가 보다. 하는 그런 느낌으로. 제발 제발... 쪽팔린 게 제일 싫다... 다행히 아무도 모르는 눈치이긴 하다. 나만 입 다물면 되겠다. 능청 떨면서 다시 일을 해야겠다.  옆 사람이 또 저 얘 이야기를 한다. 항상 실수를 한다고. 마음에 안 들어서 같이 일 못하겠다며 이번에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고 한다. 아냐.. 그거 내 실수인데. 심장이 멎을 뻔했다. 시선이 마지막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입은 에둘러 맞장구치면서 나의 당황함을 숨기고 있다. 그건 내 실수인데.. 그 애가 일어난다. 나한테 오는 줄 알고 놀랐다. 화장실에 가는 거였다. 한번 놀라니까 계속 놀란다. 긴장이 살짝 풀리면서 옆 사람과 혀를 날름거리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고. 괜히 세게 말해본다. 어느새 자리에 돌아온 그 얘가 다시 일어서더니 나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벌컥벌컥 걸어온다. 왔다. 

"왜 말씀 안 하세요? 제가 그런 거 아니고 본인이 잘못한 거라고 말해야죠"

"이번 일은 제가 확실하게 기억해요. 제 잘못 아니고 본인이 실수해서 잘못한 거잖아요"

"요즘 골똘하게 생각해봤는데 제가 한 일도 아닌 걸로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정말 불쾌해요"

"이번 일도 본인이 잘못한 건데 가만히 계시니까 제가 욕먹고 저번도.."

'아차'

"저번도 실수한 거 본인 잘못이라고 사람들 다 알게 됐는데 아무 말씀 안 하시네요? 저번에 욕먹은 그 사람 그만두면서 억울하다며 다 말하고 그만뒀어요. 안 쪽팔려요?"

'아차'

"차라리 처음부터 말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요. 애꿎은 사람들만 욕먹고 이게 뭐예요"

'아차'

같이 욕하던 옆 사람은 어느새 맞은편에 서있었다. 입이 안 떨어진다. 시선이 입술에 박혔다. 심장소리가 들린다. 두 발은 강력 접착제로 땅에 붙어버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내가 욕했던 사람의 시선이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 얘가 한 말이 귓가에 무한 반복한다. "왜 말씀 안 하세요?", "정말 불쾌해요", "안 쪽팔려요?", "이게 뭐예요", "차라리 처음부터 말했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차라리 처음부터, 차라리 처음부터, 처음부터, 처음


처음

    잘못을 고백하는 일은 낯간지럽다. 게다가 누군가가 잘못에 대해 미리 비난해놓은 상황에서 '그것이 나의 잘못이오'라고 말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다. 비난하던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둘 다 민망한 상황이 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며 그 상황이 마무리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래도 오해가 커지기 전에 나의 잘못이라고 알리고 사과 혹은 반성을 해야 할까. 누구나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알지만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당연히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꼭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결국 돌고 돌아 모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부풀기 시작한 오해는 터지는 순간 사방을 어지럽히기 마련이다.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그거 내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렵지만 가장 깔끔한 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어른이다. 돌아보고 후회하기에는 상처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 "차라리 처음부터"라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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