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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Mar 04. 2018

Everything passes with time

모든 것은 다 지나가. 그 지나가는 시간을 잘 견디는 것, 그게 힘이야

1. 2012년 1월부터 2013년 10월, 나름  파란만장했던 군생활, 그곳이 시작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선진병영문화 조성의 일환으로 ‘1년 동기제’ 제도를 시행했다. 기존에는 1개월 단위로 끊어 선임과 후임, 동기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우리 부대의 연대장은 이런 타이트한 계급구조가 부조리의 상황을 만들어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개월 단위를 1년으로 바꾸어 입대연도가 같으면 무조건 동기로 생활하라는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하였다. 아마 전국에서 최초였을 것이고 이 제도는 내가 자대에 전입하자마자 바로 실행되었다. 불행히도(?) 나는 2012년 1월 3일 입대 군번이었고, 그 말은 즉슨 2012년 12월 31일까지 입대한 친구들과 동기이고, 그때까지 후임을 받지 못하고 막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일명, 내리갈굼으로 돌아가는 체계이다. 즉, 병장이 직접 이등병의 생활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다. 이등병의 행동거지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 밑 계급인 상병을 불러 ‘쟤 관리 안 하냐?’라고 한 마디 하면, 상병이 일병을 불러 ‘내가 쟤 때문에 병장한테 한 소리 들어야겠냐?’라고 또 한 마디 한다. 그럼 그제야 일병이 당사자인 이등병을 불러 주의를 주고 갈구는(?) 방식으로 조직이 돌아갔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1년동기제로 선, 후임 체계는 바뀌었는데 이 부조리한 ‘내리갈굼’ 의 시스템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즉, 내 선임들은 내가 바로 밑 후임이니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를 부르고 쪼는데, 나는 계급이 달라도 같은 동기들이었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는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윗 선임들은 후임인 내게 ‘야! 밑에 관리 똑바로 안 하냐’라고 말을 하는 것이고, 나는 내 ‘동기’들에게 가서 ‘친구들, 이것 좀 제대로 해주면 안 될까? 부탁할게’라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불완전한 시스템의 과도기 속에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중간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답답하고 불만이었지만, 1년동기제라는 제도 자체는 좋은 취지였고 장, 단점이 모두 있었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에서 기인했겠지만, 단지 1개월 일찍 들어왔다고 해서 계급이 나뉘고, 장난 삼아, 그리고 이유 없이 후임을 갈구고 하는 방식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유치했다. 그래서 어쩌면 모두가 집을 떠나 고생하는 처지에 다 같이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했을 당시 내가 간과했던 치명적인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 ‘인간’이 그리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군대’라는 공간이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폐쇄적이고 일시적인 공간이었다는 것.   


군대라는 공간은 굉장히 특수한 공간이다. 사회와 완벽하게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이자 ‘일시적’인 공간이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부모, 친구들 등 사회의 지인들, 군대 밖의 사람들은 그 사람이 군대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면회를 제외하고 해당 물리적 공간에 절대 들어갈 수도 없으며, 마음대로 연락할 수도 없다. 즉, 우리가 사회에서 아는 친절하고 착한 A군이 군대에서 온갖 부조리를 일삼아도, 군대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행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군대는 영원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왔다가 21개월간 지내고 다시 떠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제대 후 보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지 안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떠날 곳이고 안 볼 사람들이니까. 여기에 ‘1년동기제’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작용하며 이 공간의 특수성에 방점을 찍었다. 모두가 '동기'이기에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제지할 수단이 없었다.


2.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가장 쉬운 공간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나는 군대라는 공간이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가장 쉬운 공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회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왔는가에 상관없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진짜 자기 모습'이 나오게 된다. 온갖 부조리를 일삼아도 휴가를 나가서, 제대를 하고 사회로 돌아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면서 나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처참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곳은 내 평생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의 본성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공간’이었다. 


정말 많은 인간군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기인데도 불구하고 늦게 입대한 친구들에게 폭언과 부조리를 일삼는 사람. 내무반이 빈 틈을 타 물건을 훔치는 사람. 본인은 낮 근무만, 다른 인원은 무리하게 야간 근무만 몰아넣어 근무 일정을 짜는 사람. 권력을 이용해 낙하산으로 인사과 계원으로 들어가는 사람. 맡은 일을 처리하지 않아 같은 분대원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같이 쓰는 실내 공간에 침을 뱉는 사람. 인격 모독을 하는 사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좌절했다. 너무 순진했다. 이제 우리 모두 다 같은 동기니까, 모두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이제 부조리한 계급제도도 희미해졌으니까, 다 같이 협력하고 의지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곳은 지옥이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적어도 남한테 피해는 주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믿음도 무참히 무너졌다. 


‘같은 인간이 어떻게 저리 이기적일 수 있는가, '악'할 수 있는가’ 
‘왜 이 조직은 이런 시스템을 방치하는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이 문제인 것인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루하루를 좌절감과 분노에 휩싸여 보냈고 그토록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정말 친한 대학 동기와 휴가를 맞춰 나와 마주 앉아 있는데 문득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얘도 자기 부대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폭언과 부조리를 일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알 방법이 없잖아. 아무도 모르는 거야. 지금 내게 보이는 이 모습, 내가 알고 왔던 이 모습은 다 거짓이 아닐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써가며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강박증이 더욱 심해져 갔다. 제대 직후, 학교에서 받은 심리검사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해를 받으면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라는 질문지에 ‘네’라고 체크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장시간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왜 ‘네’라고 체크했냐는 상담사의 질문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리고 다시 밀려오는 그때의 기억들과 감정들에 제대로 입을 떼 지도 못하였다.  


3.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당장은 큰 일 같아도 다 지나가게 돼 있어. 그러니까 그 지나가는 시간을 잘 견디는 거, 그게 힘이야"


그러다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우등생이었던 민기라는 캐릭터가 본인의 잘못된 행동과 부모님의 기대, 압박감을 못 이겨 자살시도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다행히 자살시도를 포기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데, 담임교사였던 장나라가 민기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민기야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당장은 큰 일 같아도 다 지나가게 돼 있어. 그러니까 그 지나가는 시간을 잘 견디는 거, 그게 힘이야” 


이 대사를 듣는데, 순간 감정이입이 되면서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가슴 깊이 밀려 들려왔다. 먹먹해지고 멍해져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나서 홀가분해졌다. 버티자고 다짐했다. 지나가니까. 저 말대로 다 지나갈 거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추악한 본성도 봤지만, 그만큼 선한 본성도 봤고, 좋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그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견뎌내면.. 언젠가 다 지나갈 거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내가 힘들었던 시간, 힘들었던 이유, 그리고 어떻게 힘들었고 어떻게 버텼고 그 끝이 어땠는지를 또렷이 기억해서 앞으로도 내게 닥쳐올 시간들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곱씹으면서 내 자양분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내 가슴에 첫 번째 타투를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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