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1/2022 _ 올드시티 투어한 날
11월 마지막 한 주 ~ 12월 첫 주는 이벤트가 많았다. 정리하자면,
✔ 독일 교회 바자회 (11/27)
✔ 새로 사귄 친구네 집 방문 & 초대 (11/28, 29)
✔ 친구랑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 근처 상점들 & 마카네 예후다 시장(Machaneh Yehudah Market) 나들이 (12/1)
✔ 텔아비브(Tel Aviv) 이케아(IKEA) 가기 (12/2)
✔ 단체로 한국 vs. 포르투갈 축구 응원 (12/2)
✔ 베들레헴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12/3)
막상 남편과 많이 싸웠던 한 주였지만, 지난 글을 쓰고 집에 돌아간 직후 십여분에 걸친 대화(?) 끝에 눈물의 화해가 있었다. 그러고 같이 저녁 먹고 토이스토리3 를 보고 평안히 잠들었다는..
신앙이 있는 사람끼리 사는 게 좋다는 건, 끝이 좋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다. 신기하게 해피앤딩이 된다. 아무리 내가 잘못하고 그가 잘못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게 느껴진다. 목사님의 주례 말씀 중 '**을 가장 사랑하셔서 **을 붙여주셨다'는 말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싸우고 난 후에는 선물 같은 평화의 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도 커피처럼 지지고 볶으면서 완성되어 가나 보다. 커피가 여러 공정을 거쳐 쓴 맛, 신 맛, 묵직함, 향 등의 밸런스를 맞추면 매력 있는 café가 되는 것처럼.
어쨌든 지나간 한 주를 잘 정리하고 싶어서 지금 글을 쓴다.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들..!
이 날은 번개로 바자회를 간 날이었다. 우리 교회 전체가 다 갔다. 참고로 우리가 지금 예배터로 쓰고 있는 교회는 독일식 교회 건물인데 수십년 전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이 곳에 처음 개척하신 후 독일에서 다른 목사님이 오셔도 한인들이 이 곳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문서화시키셨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독일식 교회는 항상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는 교회이기도 하다. 1층에서는 기념품샵이 있고 언제는 입장료를 받는 걸 본 적도 있다. 우리는 교회 내부의 한 홀을 예배처로 쓰고 있는데 한 번 음악회가 열렸을 때는 종탑으로 올라가 예배드린 적도 있었다. 종탑은 정말 꼭 한번은 올라가봐야 할 곳이다. 주변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경치를 맛볼 수 있다.
어쨌든 독일 교회 공동체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바자회가 열리는데 그게 우리 교회 정문에도 팜플렛이 붙어있어서 우리도 가보기로 하였다. 이 날은 담임목사님 차를 타고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 근처로 이동하여 일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를 지나 Old city 안에 있는 독일 교회였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Lutheran Church of the Redeemer. 이전에 친구랑 이곳을 지나가면서 예쁘다 했던 건물이었다. 드디어 이곳을 들어가 보다니..!
내부는 사람들로 아주 북적였다. 먼저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인당 5 세켈(약 2000원)이라고. 목사님께서 우리 모두를 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과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두 층에서 바자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래층은 주로 간단한 간식, 음료 위주라면 위층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많이 팔았던 것 같다. 또 아래층엔 카페도 있어서 여유 있게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게 흥겨운 크리스마스 바자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성탄을 기리며 열리는 바자회라는 게 뜻깊은 것 같았다. 올해는 하누카(Hanukkah) 연휴와 크리스마스 시즌이 딱 겹쳐서 12월 18일 (일) 해가 떨어진 후부터 2022년 12월 26일 (월) 까지를 쉰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하누카 연휴일 텐데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그대로 건재하구나. 중간에 어느 매대에서 히잡을 두른 여성분도 크리스마스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이 아랍 사람도 예수님을 믿나 보다. 다행이다. 이런 느낌. 참고로 하누카는 ‘봉헌’이라는 뜻으로 기원전 164년 마카베오 혁명으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되찾아 하나님께 다시 봉헌한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보통 11월 말이나 12월에 있다고 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지하를 한 바퀴 다 돌았다고 판단되었을 시점에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빼꼼 들여다보니 뭔가 고요하면서도 품위 있는 분위기. 깔끔한 내부였다. 여러 장의자들이 나열된 것과 중간 중간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걸 보니 예배처 분위기가 났다. 교회는 예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가 아니던가. 이전까지는 시끄러운 세상이었다면 여기야말로 교회라는 느낌. 우리도 들어가 보기로 했다.
들어오자마자 오른편에 성탄 데코가 보였다. 푸른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에 큰 별과 경배하는 사람들. 그 주변에는 자연친화적인 배경을 묘사해 놓은 모습이 아름다웠다. 떠들썩한 바깥을 막 헤쳐 나온 뒤 보이는 모습이어서 더 감명 깊었을까.
내부는 유럽의 여느 성당처럼 천장은 높고 벽이 다 돌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회색인데 빛 덕분인지 뭔가 포근해 보였다. 뒤쪽 끝을 보니 위층에 오르간이 있었다. 이 때는 몰랐는데 한 30분쯤 후에 이곳에서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곡들을 하다가 마지막에 바흐의 선율을 연주했던 것 같다. 파이프 오르간을 발명한 사람은 천재일 것이다. 파이프로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생각을 했을까. 하나하나 손과 발로 음을 연주해내는 연주자도 대단했고, 마치 육중한 자동차가 부드럽게 굴러가듯 끊이지 않는 선율이 나오는 오르간 연주가 아름다웠다. 또 예배당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이들이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매너가 참 좋았다. 이 연주를 듣는 사람 중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바자회 장소는 여전히 활기찼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많은 코너는 소시지. 예루살렘에서는 독일식 소시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유대인의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했기 때문에 그걸 구하려면 러시안 마켓을 가야 된다. (아랍에서도 돼지고기는 금지라 한다) 그런 소시지가 심지어 독일식이라면..? 할 말 다했다. '이건 먹어봐야지'하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즉석에서 숯불에 구워주는 거여서 더 맛있게 보였나 보다.
솔직히 나는 배고프지 않으면 음식은 안 사는 편이지만 남편의 제안을 번번이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산 건 뱅쇼(vin chaud; 따뜻한 와인)와 소시지. 각각 20 세켈(=8000원)이었다. 난 소시지를 즐겨 찾는 편이 아니라 뱅쇼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는데 친한 동생이 주길래 한 번 먹어봤더니 맛있었다. '독일식 소시지 인정'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우리가 그 소시지를 못 먹었다면 이후 일정들을 소화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땐 알지 못했지만 소중했던 소시지 간식.
난 바자회 오면 주로 물건들을 사는 편이지만 솔직히 가격이 착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특히 예루살렘 황금돔이 그려진 엽서나 아랍어가 쓰인 에코백처럼 이곳의 지역적 특징들을 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 눈에 띄었다. 또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아이들 장난감 코너도 있었다.
내가 사려고 살짝 고민했던 건 나무 조각품들. 7년 전 이스라엘에 왔을 때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표현한 나무 공예품을 하나 샀는데 그건 본가에 아직도 건재하다. 그때 기억이 나서 살까 싶었으나 가격을 듣고는 빠르게 포기했다. 그래도 예뻤다는.
정말 볼거리, 먹거리 가득했던 장터였다. 충분히 구경하고 먹다가 오르간 연주를 마지막으로 나왔다. 연주는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먹고 들어가려다 보니 시간이 지체돼서 우리는 중간에 들어가게 됐지만 정말 좋았다. 이미 하루를 알차게 보낸 느낌이었다. 이렇게 한 시간 반쯤 시간을 보낸 후 교회를 나왔다.
근처에 예수님 무덤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어 온 김에 거기도 들르기로 했다. 다 같이 이동. 여기는 이스라엘 왔다면 반드시 찍는 Tourist attraction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꼭 올만한 곳이다. 난 올해 두 번째로 들어가 보았다.
마침 사모님께서 위층 가이드를 해주신다 하셔서 후다닥 따라 올라갔다. 가보니 향을 피워놓고 줄 서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벽화를 보면서 설명해주셨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Holy 한 분위기와 향 피운 연기가 자욱하게 보였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피운 향이 쌓이고 쌓여서 두터운 연기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니 안쪽에 사람들이 한 방(room)을 두고 빙 둘러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여기가 예수님 무덤인가 보다 하면서 둘러보고 나왔다.
무덤 교회에서는 길게 있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일 년 이상 이곳에 살았던 분들이기에 특별히 새롭게 볼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근처 유명한 곳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했다.
이후에는 집에 갈 줄 알았는데 보여주실 곳이 더 있으신 것 같았다. 아랍 쪽 구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후에 간 곳들은 다음과 같았다.
✔ 아랍 시장
✔ Al-Quds University (어떤 아랍 대학)
✔ 예루살렘 유물 상점
모두 우리가 목사님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절대 올 수 없었을 장소들. 예루살렘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여기서는 '친구'가 되면 주차료도 깎아주고, 남들한테 안 보여줄 자기들의 것들을 보여준다. 또 이스라엘 사회는 Top-to-bottom의 권력 질서가 잡혀있는 곳이라 한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 윗사람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소소해 보이는 학사 일정에 관한 업무에서조차 윗사람을 불러야 해결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스라엘에서 몇 년 산 경험이 있다면 다 아는 사실. 하여튼 이 날 우리가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누릴 수 있었던 혜택은 전부 목사님의 인맥 덕분이었다. 아마 이스라엘도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면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지내다가 올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곳에서 몇십 년을 살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소통해오신 목사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랍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원으로 쭉 둘러앉아 커피와 차, 간단한 디저트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일어나서 어느 아랍 대학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현재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그곳 옥상에서 여러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사람들과 시대에 관한 이야기.
이제 돌아가나 싶었는데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었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에서 대를 걸쳐 유물을 집대성하고 보관하는 어느 유대인의 상점이었다. 마치 일본에서 가문의 비법을 전수받아 십 대를 넘게 운영해 온 음식점처럼 이곳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곳 같았다. 알고 보니 National Geographic에도 나오는 분이 우리를 맞이해준 상점 주인이었다. 물론 목사님이 'my friend'이기에 우리의 방문을 허용한 거였다.
여기서도 한 30분쯤 지났을까. 아무에게나 개방해주지 않는 본인 작업 공간을 보여주며 우리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동전(1 세켈)도 만질 수 있게 해 주셨다. 이러저러한 설명과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벌써 날이 어둑해졌다. '오후 5시가 넘었네.'(여기는 11월에 해가 4시 40분쯤 진다)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고 많은 것들을 본 하루였다. 쓰다 보니 계속 그날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담임 목사님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상상하지 못했을 예루살렘 올드 시티(Old City, Jerusalem) 투어. 번개로 나간 길이었지만 즐거웠고,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