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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Dec 29. 2022

이스라엘 (12) - 하누카(Hanukkah) 시즌

히브리대 한인회 행사


이스라엘에는 하누카(Hanukkah; 수전절, 봉헌절)라는 절기가 있다.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키슬레브(Kislev) 달 25번째 날부터 8일간 지키는 절기로 보통 12월에 맞게 되는 절기이다. 올해는 12월 18일 일요일 저녁부터 12월 26일 월요일 저녁까지가 그 기간인데 딱 크리스마스 시즌과 겹쳤다. 하누카(Hanukkah)는 원래 ‘봉헌’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제의적으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B.C 164년 마카베오 혁명으로 다시 하나님께 봉헌했던 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 당시 성전을 봉헌하면서 저항기간 동안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겸하여 지켜서 8일이 수전절 기간이 되었다(마카비 상 4:56-59). 이때 예식을 위해 8일 동안 촛대에 불을 켜야 했는데 촛불을 태울 기름이 하루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하루치의 기름으로 8일간 초를 켤 수 있었고, 이 기적 같은 사건으로 인해 수전절의 상징은 촛대(하누키야; Hanukkiyah)와 기름이 되었다. 정확히는 기름으로 만든 음식인 '스푸가니야'(sufganiyah; 딸기잼이 들어간 도넛)가 또 하나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수전절의 유래를 되새긴다고 한다. '스푸가니야'의 전형적인 그림은 흰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딸기잼 도넛이다. 마치 서리 내린 들판에 소심하게 피어난 칸나처럼.


출처 : istockphoto

 

하누키야(Hanukkiyah; 아홉 갈래의 촛대)는 8일간 하나씩 붙일 수 있는 여덟 개의 촛대와 불을 붙이기 위한 보조 촛대(정중앙 촛대)가 합쳐진 것으로, 첫째 날에는 정중앙 초와 맨 왼쪽 초 하나를 밝힌다. 그 후에 하루에 하나씩 불을 밝혀 가는 것이 '하누카'를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의식이다. 참고로 중앙의 초는 '샤마쉬'(shamásh; waiter, servant)라고 불리며 이것으로 하나씩 다른 촛대의 불을 밝힌다. 불을 밝히는 개수가 점점 늘어나 마지막 날에는 총 9개의 촛대에 불이 켜지고 이렇게 불을 켜는 절기여서 '하누카'를 '빛의 축제'라고도 한다. 이를 주제로 한국에 있는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께서는 우리의 거룩은 밝아져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다.(*출처는 하단에 첨부)


가로등 밑에도 하누키야.


'하누카'가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공휴일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전국에서는 '하누키야' 조형물과 장식이 설치되고 사람들은 집집마다 작은 '하누키야'에 불을 붙인다. 우리가 사는 히브리 대학교 기숙사(Hebrew University Student Village)에서는 날마다 밤 9시에 '하누카'에 관한 연설과 초를 켜는 행사를 하고 그때 '스푸가니야'를 나눠준다. 작은 초들과 그것에 꼭 맞는 '하누키야' 모형도 원하는 사람들은 가져가게끔 하길래 들고 왔다. 한편 학교 학생회에서는 공짜로 도넛과 팝콘 등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였다. 나눠주기 전에 학생증 확인을 거쳐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부든 학교든 모두 '하누카'를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었다.


공짜 스푸가니야(딸기잼이 들어간 도넛)에 미소가 절로 :-)


올해부터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는 학생들에게 하누카 방학을 선사했다. 딱 내가 남편과 함께 살러 온 기간에 생긴 방학이어서 더 감사했다. 학생들도 다들 학기 중반이라 과제나 중간고사 대비, 또는 점점 심화된 강의 내용으로 지쳐있을 무렵이었다. 이렇게 월요일(2022/12/19)부터 일요일(2022/12/25)까지 일주일간의 방학이 주어졌고, 우리 부부는 이때 여행을 가기로 했다. 2박 3일 하이파(Haifa) 여행! 이후 이어지는 2박 3일 동안은 교회 차원에서 갈릴리 호수(Sea of Galilee ; Lake Tiberias) 근처로 수련회를 가기로 했다.


여행에 들뜬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때 뭐하는지 물어보니 보통 밀린 과제나 중간고사 대비를 한다고 했다. 아마 남편이 문과생이었다면 비슷했을 것이다. 대체로 중간고사도 있고, 매주 내야 하는 에세이나 간단한 퀴즈들로 학기가 꽉 차 있었을 테니. 하지만 남편은 중간고사도 없었고, 과제도 평소엔 매주 3개씩 내야 하는데, 이 기간엔 방학이라고 과제도 없었다. 물론 학기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내용 정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같이 시간 보내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준 남편 덕분에 이 기회에 근처 항구도시로 여행을 갈 수 있었다.


하이파(Haifa)의 어느 해변가






참고로 이스라엘 대학교의 1학기는 10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유대교 달력으로 1월이 그즈음이기 때문. 그래서 1학기가 1월 말에 끝나는데, 이후에는 약 한 달 반 정도의 시험기간이 시작된다. 시험기간이 긴 이유는 과목의 시험 날짜가 몰려있지 않고(보통 일주일에 한두 과목 정도), 1차 시험과 2차 시험 총 두 번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1차 시험을 망쳤다면 2차 시험을 도전할 수 있다. 단, 2차 시험을 응시하면 1차 때의 기록은 사라지기 때문에 애매한 점수를 받았다면 고민을 좀 하게 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남편의 결론은 과목 중 일부만 1차 때 시험 보고, 나머지는 2차 시험으로 미루어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단점은 방학이 짧아진다는 것. 3월 12일에 2학기 시작인데, 그날도 2차 시험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조형물이 지방 도시 곳곳에 다 있다.


어쨌든 기대되는 방학이었다. 방학이 되기 전에 우리에게 닥친 일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히브리대 한인회 행사'였다. 아무래도 예측이 안 되는 행사여서 그랬나 보다. 이번에 히브리대 한인회에서는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시즌이 겹친 것에 착안해 'Merry Christmas - Happy Hanukkah' 행사를 히브리대 한국학과 학생들과 열기로 했다. 우리 한인들끼리 모인 행사는 학기 초에 한 번 했기 때문에 이번엔 유대인들과 교류해보자는 의미에서 연 행사였다. 우리가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모든 비용은 한인회에서 대었다.



남편이 이 행사를 위해 했던 활동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줌 회의를 임원단끼리 열어 행사의 가닥을 잡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날짜를 정하고, 그날을 위해 각자 할 역할을 맡겼다. 예를 들어, 총무를 맡은 한 학생에게는 구글 설문지를 만들어 행사에 참여할 사람들의 인적사항, 어떤 음식을 가져올지를 파악하게 했고, 다른 총무에게는 신청자에게 이메일로 연락하는 역할을 맡겼다. 또 조를 짜고, kahoot(온라인 퀴즈를 만들 수 있는 사이트)으로 크리스마스, 하누카에 관련된 퀴즈를 만들고, 한국학과 동아리 장과 소통하면서 그쪽에서 원하는 데코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 미리 예약한 기숙사 4번 빌딩의 모임용 방이 행사 한 시간 전부터 분주했다. 미리 시켜 놓은 피자며 음료수, 과자 등을 테이블에 안배하고, 유대인 학생이 사 온 데코도 천장에 달랴, 테이프로 붙이랴 열정을 다했다. 행사 때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음식도 나눌 수 있도록 안내를 했는데 한국인 학생들에게는 '코셔(Kosher; 유대인 정결법)'를 어기지 않는 음식을 해올 것을 주문했었다. 그래서 난 라이스페이퍼 떡볶이를 해갔다. 같은 테이블이었던 한 유대인 친구는 할라 빵(Challah; 머리 땋은 모양의, Ashkenazi 유대인 전통 빵)을 해왔는데 거의 20명 전체가 먹어도 될 정도의 많은 양을 해온 친구를 보며 큰 손의 인심을 느꼈다. 이스라엘 와서 한 달 반 만에 처음 먹어보는 할라 빵은 버터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퐁신하고 부드러웠다. 모닝빵보다 더 자연스러운 빵 본연의 맛이 나는 듯했다.


할라(Challah) 빵.



테이블마다 어색했던 자기소개 시간이 지나고 음식이 들어가니 점점 친해졌나 보다. kahoot으로 만든 팀별 퀴즈 대항전이 끝나고 나니 마련해 놓은 프로그램 없이도 우린 삼삼오오 모여 열심히 얘기를 나눴다. 사실 크게 말하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고,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가장 예뻤던 데코. 조명이 다 했다.


우리가 방을 빌린 시간은 저녁 7시 반부터 2시간이었는데, 밤 10시가 지나가도 사람들이 떠나질 않았다. 10시 30분이 되면 이 방을 닫아야 하기에 다 같이 치우고 나니 음식들이 많이 남았다. 피자가 많이 남아서 아까웠지만 그 이상으로 다 같이 웃고 즐긴 행사여서 뿌듯했다. 바쁜 학기 생활을 감당하면서 의견을 모으고 행사를 추진한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무엇보다 참여해준 한 명 한 명이 고마웠던 저녁이었다.






이제 밤 11시니 이것으로 끝? 인줄 알았으나 마지막까지 남아서 치운 우리 10명은 2차를 갔다지. 밤이 깊은 시간인데 도심은 오히려 활기찼다. 한두 시간 정도 디저트 집에서 얘기하다 온 것 같다. 집에 오니 밤 1시 반이었나.. 참 따뜻하고 밝은 연말이다.


자정 가까운 시각의 시내 모습.




*'하누카' 관련 출처: 위키백과,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oisraco&logNo=90185505421,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0519,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embisrael&logNo=22021448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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