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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Dec 01. 2022

이스라엘 (7) - 머리가 너무 아픈 날

11월 마지막 주의 한바탕


오늘은 수요일. 남편 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주는 참 다사다난했다. 좋은 일도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던 한 주였다. 이번 주는 특이하게 아침 밥상에서 거의 매일 싸웠다. 이런 게 신혼인가. 여태까지는 한 번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트러블 나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싸우면서 느낀 점은 서로에게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하나 그 상황이 왜 본인에게 속상하고 화가 났는지, 어떤 상황을 피해 줬으면 좋겠는지 설명해야 된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가정환경, 부모님들의 태도가 참 많이 달랐다는 것...!



솔직히 남편하고 살면서 행복했다. 이건 현재 진행형. 종종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나 오늘은 남편이 단단히 속상했나 보다. 사과를 해도 안 풀리고, 바로 옆에 있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을 설명해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알아서 발견하라는 듯 도서관 안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휴..







나는 아침에 같이 나올 때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싸우고 난 후에 서둘러 같이 준비해 나오는 게 어색했다. 같이 발맞춰 걷지도 않게 되고, 평소와 같은 활기참이 없었다.



싸움의 원인은 대략 이렇다. 나는 흘리는 것,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뭐든 저지른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만 한다는 주의다. 그런데 남편은 보통 흘리는 편이고, 나처럼 아끼는 편은 아니다. 이런 걸로 한 소리를 했고, 이후 차린 밥상머리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보다 빨리 준비했으니 9시 15분 셔틀을 타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들어주었다. 서둘러 준비해서 어떻게든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 가면 어제처럼 너무 누워있지는 않고 뭐라도 하겠지.. 어제도 아침에 싸우고 서로 잘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을 보내고 나니 나는 너무 무기력해졌다. 아무 의욕도 없는 껍데기 같은 상태. 그래서 3시간 정도를 그저 누워있었다. 원래 일어나면 다시 침대로 안 가는 사람인데. 남편은 혼자 학교 가서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계속 연락을 주는데 내 상태를 듣고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어제는 저녁에 여기서 알게 된 동생을 초대하는 날. 초대를 위한 요리 준비를 위해 내가 남은 거였는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2시 좀 넘어서 일어나 밥을 먹고 장도 보고 음식도 잘 차린 게 어제였다. 물론 초대 시간 40분 전 수업 마치고 돌아와 준 남편이 중요한 마무리를 도와줘서 해낼 수 있었던 초대 요리였다. 이렇게 제대로 메뉴를 갖춰서 초대해 본 건 처음이었는데,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프라이팬 하나와 냄비 하나만 있는 우리 형편에서 아주 잘 고안한 메뉴였다는.



야침차게 준비한 갈비탕
성공적이었던 새우 감바스와 가지 무침. 그리고 진짜 김치.




요리 이전에는 아무 일도 못했다. 어제의 건강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뒤로하려고 평소보다 2시간 먼저 버스를 탄 거였다. 수요일에 이렇게 빨리 셔틀 타는 건 처음이었고, 예상치 못하게 차는 만차였다. 서서 가야만 하는 상황. 가다 보니 지루해서 웹툰을 봤는데 그게 이후 수 시간들을 지배하게 되었을 줄이야.






한 번 감정 소모를 하고 나면 머리는 공백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삶의 기쁨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먹고 싶은 것도 없어지고, 인생에서 색(color)이 없어지는 느낌. 싸늘한 분위기 속에 수학과 도서관에 도착해서 나란히 앉았으나 나는 내리 웹툰만 봤다. 폐인처럼 무기력한 상태로. 난 한 번 빠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경향이 있어서 음식도, 여가 생활도 제한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입석으로 탄 셔틀에서 본 웹툰을 결국 여기 도서관에서도 질질 끌게 되었다.



때가 되어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었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에게 아무 말 없이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서 기숙사로 가는 셔틀을 타버렸다. 사실 머리가 너무 아파 엎드렸는데 옆 사람이 뭘 하든 안 봐주는 것 같은 그에게 서운했다. 그래서 2시간마다 한 번씩 오는 셔틀을 탔다. 그래도 그 후 2시간 동안은 연락이 없었다. 2시 수업이라는데.. 어차피 이동해야 할 시간에 내가 없는데 남편은 나를 찾지 않았다. 안 풀렸겠지.



머리가 너무 아파 좀 편하게 있고 싶었다. 그래서 집 문 앞까지 왔는데 마침 열쇠가 없었다. 오늘은 남편이랑 같이 외출하니까 집 열쇠며 카드며 다 안 챙기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후 2시 20분부터 나 혼자 방황하는 상황이 되었다.


밖은 쌀쌀한데 집에 들어가질 못하니.. 그나마 기숙사 공동 시설 중 의자가 있는 실내를 발견해 앉아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연락이 왔다. 어디냐고. 기숙사 안이라고 말했지만 위치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기숙사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 그래서 학교 문과 캠퍼스로 걸어갔다.

답답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하늘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게 15-20분 잡고 문과 캠퍼스로 걸어가는데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수업 하나를 거르고 빨리 와버렸단다. 그런데 나도 서러웠다. 지금껏 같이 있을 때는 봐주지도 않더니 없을 때에야 연락을 한다고? 그것도 2시간 넘어서?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있다. 다른 곳에.




우리는 언제에야 서로에게 잘 맞춰질 수 있을까. 정말 좋은 사람인데도 왜 이렇게 힘들까. 나에게 더 큰 잘못이 있나. 일단 여기서 뭐라도 내 자리가 있었으면 싶다. 내가 하루 종일 웹툰만 보고 시간을 허투루 써도 아무 데미지(damage)가 없는 이곳은 내게 불안정한 공백의 기간이다. 부디 좋은 일정들이 많이 생기기를. 그리고 이 시간들이 나와 남편 모두에게 유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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