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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Nov 25. 2022

이스라엘 (6) - 테러 소식. 정전.

23/11/2022~24/11/2022

그날도 평범한 수요일 아침이었다. 올해 이스라엘 온 뒤로 두 번째로 들리는 테러 소식. 첫 번째는 10월 말 즈음 있었던 버스에 돌 던진 사건이었고, 두 번째가 오늘이었다. 오늘 일어나서 들은 소식은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사망자가 있었다니.



우리는 어제 밤늦게까지 각자의 일을 하다 새벽 2시쯤 잤다. 남편은 목요일 새벽 1시까지 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하느라, 나는 최근 열중하고 있는 영상 편집 작업이 있어서 둘 다 바빴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는데, 아침 7시경 그 바쁜 출근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지난 한 달간 예루살렘에 살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한 번은 인도를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 안에서 어떤 사람이 빽 소리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랄 뻔한 정도? 그래도 우리가 생활하는 기숙사나 학교 근처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테러가 난 곳은 이과 캠퍼스 근처였다. 우리가 사는 곳은 문과 캠퍼스 근처여서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평소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서도 자유롭게 근처 공터로 산책을 나갔었고, 한 번은 걸어서 아랍 동네까지 내려가 본 적이 있다. 물론 버스에 돌 던졌다는 동네가 아닌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곳으로. 10월 버스 공격은 문과 캠퍼스 근처 아랍 동네에서 버스 유리창에 돌을 던진 사건이었는데 사상자는 없었다고 들었다. 그 뒤로 산책할 때 어느 한 버스가 유리창에 무슨 깁스를 한 것처럼 테이프로 도배해 놓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잠잠한 것 같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처음 테러 소식을 들은 경로는 교회 단체톡방이었다. 우리가 출석하는 현지 교회 목사님께서 대사관의 전달사항을 공지해주시는데, 폭발물 테러 사건이 발생했으니 신변안전에 각별히 유의해달라는 내용을 전달해주셨다. 비슷한 시간에 남편에게 온 학교 측 공지는 그날 출석체크는 모두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수업은 여전히 있다는 말. 그래서 평소처럼 학교 갈 짐을 꾸렸다. 여느 때처럼 도시락 가방도 함께.



테러가 일어났는데 기숙사는 평소와 같았다. 학교 셔틀 타는 곳도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우리가 탄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서자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탔다. 오늘 아침 9시쯤 탔을 학생들이 좀 미뤄서 늦게 탄 걸까? 어찌 되었든 학교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이 활발히 이동하며 각자 갈 길을 가는 모습이었다.






 현지 뉴스에 따르면, 폭발은 두 번 있었다. 경찰은 이 두 폭발들이 버스 정류장 뒤 덤불 속에 숨겨진 거의 동일한 원격 폭발 장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며, 이 장치는 사상자를 최대화하기 위해 못으로 포장되었다고 한다. 1명의 사망자와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한 명은 16세 청소년이었다. 정말 비극적이고 참담한 테러였다. 경찰은 이 테러가 지능적이어서 개인이 아닌 어떤 단체가 배후에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어디가 의심된다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Hamas라고 하는 테러 단체는 이 사건을 두고 자기네들 편이 이스라엘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에 일어난 버스 폭발 테러는 Hamas 가 감행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번 사건도 그런 것일까? 당국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후에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모르는데, 이스라엘 경찰 국장은 테러를 감행한 자는 두 명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s://www.timesofisrael.com/explosion-at-bus-stop-near-entrance-to-jerusalem-7-injured-2-critically/)




테러 소식을 들은 날도 결국엔 평소처럼 지나갔다.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가고, 도시락을 싸갔으나 역시 다 해치우고 빈 배로 집에 오고.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본 카톡에 내 안위를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 양가 부모님들께서도 테러 관련한 소식을 못 들으신 것 같았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셔서) 친구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서 테러 일어난 장소가 어디였는지, 우리 기숙사 위치는 어디인지, 몇 시쯤 테러가 일어난 건지 등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더랬다. 마침 오늘 늦게 일어났다고, 무사하다고 카톡에 답장하는데, 밀려오는 고마움. 마음 따스해지는 연락이었다. 



저녁은 간단하게 후무스와 야채 또띠아로 해결했다. 우리의 효자템 참깨소스와 케첩은 덤..!

참고로 후무스와 케첩의 조합이 매우 좋다. 한국 가면 후무스를 이렇게 자주는 못 먹을 것 같아서 좀 아쉽다.

또띠아 바로 위에 스프레드처럼 바른 후무스

그날 저녁은 시간도 거의 안 들고 성공적이었다. 당근을 미리 잘게 썰어놓은 것도 다행이었다. 후딱 먹고 남편은 과제, 나는 동영상 자막 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또 일주일이 갔다. 남편 수업이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만 있어서 수요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참 좋다. 항상 집 가는 셔틀 안에서는 이미 지치고 배고프지만 그래도 이번 주 수업도 무사히 클리어했다. 남편 수고 많았어! 






그 다음날은 목요일이었다. 공강이지만 공부하러 문과 캠퍼스 가는 날. 공강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제 자막 다는 게 밤늦게 끝나서 모두 끝내고 나니 자정이 넘어버렸다. 처음으로 만든 영상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그동안 '내 스타일'의 영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과 그걸 위해 기도했던 것을 모두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이 영상을 얼른 유튜브에 올려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지금은 브이로그지만, 언젠가 이 채널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해줄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또 내가 올리는 영상들이 어떤 이에게는 힐링이 되면 좋겠다. 지난날 수험생으로서 하루 종일 공부만 했던 내게 브이로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으로 만든 썸네일.

내 인생 첫 유튜브 영상은 https://youtu.be/WgJNwnY8ggA 에 안착되었다. 


유투버로서의 시작을 위한 작업들을 하고, 약속이 있어 즐겁게 얘기하고 나니 벌써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2-3시간 정도밖에 안 남았다. 학교 도서관은 금, 토가 휴관일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붙잡았다.






이 날도 저녁 먹을 게 딱히 없었는데, 마침 아는 동생이 미역국을 많이 했다고 좀 가져가라고 연락해주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오늘 처음으로 된장국이나 해볼까' 싶었는데 모험을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동생 너무 감사!) 그래서 미역국을 냄비에 받아서 아주 편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참고로 미역국은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미역국을 먹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생일날 해주시면 잘 먹긴 했지만 평소에 먹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미역도 재발견하게 되었다. 좋은 음식이었구나, 미역은.




그런데 미역국을 데우기 전에 작은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전기스토브 네 개 중 하나가 스위치를 돌렸더니 스파크가 나면서 집 전체가 정전되었던 것. 두꺼비 집을 내렸다 올려서 일단 해결은 했는데, 밥을 먹고 나니 저 스토브를 안 쓸 수는 없고(가까이 있고 크기가 적당해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었다) 다시 스위치를 돌려볼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시도했는데 또 스파크. 그런데 문제는 두꺼비 집으로 다시 가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건 진짜 큰 문제인데..?





열심히 시도해보는 남편 최고.



계속 두꺼비집을 해봐도 안되고, 결국 그 문짝에 있는 번호로 연락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다른 번호로 연락하라고 하셔서 그 번호로 문제를 알렸다. 거기서는 기술자 분을 보내주신다 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또 전화하고. 수화기 저편에서는 사과하며 기술자 분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셨다. 어떡하지.. 우리는 그저 기다리면서 어둠 속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불빛의 소중함을 깨닫고.



폰 불빛으로 비추인 우리 부엌. 동그라미 네 개가 전기스토브인데 가깝고 크기 적당한 아이가 말썽이었다.


솔직히 나는 명랑했다. 불빛이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듣고 있던 드라마 ost를 (정전 전처럼) 부르기도 하고.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웃었다. 너무 심각한 것보단 낫잖아. 그렇게 재밌게 보낼 수 있던 건 컴퓨터나 핸드폰 모두 배터리가 넉넉해서였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 나는 컴퓨터로 아까 못다 한 프랑스어 과제 진도를 나갔는데 남편은 컴퓨터 배터리가 3% 밖에 안 남아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또 기술자 분도 기다려야 했고. 



이렇게 오늘 밤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화장실을 어둠 속에서 혼자 가긴 힘들다. 그나저나 씻는 건 또 어떡하고... 결국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는 데 초인종이 울렸다. 드디어 기술자 분이 오신 것이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더 늦지 않은 게 감사했다. 실은 초인종 울리기 몇 분 전에 갑자기 불이 들어와서 우리끼리 '할렐루야'를 외치고 노래 불렀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바깥에서 뭔가 하셨었다고 한다. 그러고 스토브는 내일 교체해주신다고. 결국 다 잘 해결됐다. 그래도 이렇게 해외에서 정전되는 경험도 하고. 같은 건물 주변 집들은 다 멀쩡한데 우리만 깜깜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모든 게 잘 풀려서 다행이다. 이렇게 오늘도 경험치+1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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