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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Nov 21. 2022

이스라엘 (5) - 처음 며칠

25/10/2022~27/10/2022

이스라엘 온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이제 장바구니 물가도 어느 정도인지 알았고, 그동안 해 먹은 음식들을 보며 좀 루틴이 생겼다. 마트에 갔을 때 뭘 사야 될지가 정해졌다고나 할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엔 집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음식 해 먹는 건 상상을 못 했다. 그런데 밖에서 사 먹는 건 너무 비싸서 어떡하지 하는 마음만 있었다. 물가를 살짝 공개하자면, 기숙사 근처에 있어 학생들이 자주 가는 햄버거 집은 햄버거 하나에 38 세켈(약 15,200원)이다. 그것도 기본 햄버거.. 그나마 학생증을 보여주면 10% 할인을 해주지만 그래도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려 했을 때 12000원은 쉽게 넘는다. 그나마 싼 팔라펠은 하나에 15 세켈(약 6,000원). 한국의 김밥처럼 국민음식이라는데 그것마저도 한국 물가에 비하면 비싸니, 우리가 어찌 맘 편하게 사 먹을 수 있으랴. 화요일 새벽에 도착해서 목요일 전까지의 처음 3일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아 끼니를 해결했다. 바로 '베들라면'.




첫날 저녁에 그곳을 간 게 참 다행이었다. 어쩌면 주님의 뜻이었는지도. '베들라면'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라면 가게인데, 무료로 라면을 끓여주시고 계란이나 파, 밥 등 같이 넣어 먹는 음식들도 해주신다. 수익을 내는 가게는 아니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 



어쨌든 첫날 저녁에 우린 맡겨둔 짐을 찾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다. 거기서 맛있는 저녁(여기서는 귀한 한국 라면!)을 먹음과 동시에 사모님은 남은 밥을 왕창 싸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처음에 "가져갈 사람?" 하셨을 때 아무도 선뜻 안 나서서 내가 그냥 받아온 거였다. 그때는 그게 우리에게 며칠 동안의 귀한 양식이 될 줄 몰랐다. 그냥 밥이 많이 남았으니 가져온 거였는데.. 집에 와보니 밥솥이 없는데 이미 해놓은 밥이 있다는 건 큰 감사가 되었다. 이 밥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화수목 아침을 모두 이것으로 잘 먹었다. 우리에게 밥을 많이 싸주신 사모님 최고 :)


'베들라면'




화수목 처음 3일은 아직 남편 짐을 다 못 찾아온 날들이었다. 밥솥도 그렇고, 국자, 수저, 냄비 등 식기구가 아무것도 없이 부엌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 와중에 정말 감사하게도 평소에 자주 도와주셨다는 남편 친구분이 돌 냄비를 하나 주셔서 그걸로 이스라엘 첫 끼를 만들 수 있었다. 돌 냄비를 주신 시점도 첫날 저녁. 정말 딱 필요한 시점에 생긴 냄비였다.


여기서 만들어 먹은 첫 음식. 그리고 화수목 아침이 되어준 메뉴.


이스라엘 첫 홈메이드 음식은 있는 재료를 짬뽕하여 만들어진 식단이었다. 먼저 받아온 밥에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애물단지처럼 가져온) 먹다 남은 저지방 치즈, 여기서 산 야채 세트, 토마토소스를 모두 부었더니 '토마토 치즈 볶음밥'이 탄생했다. 또 첫날 저녁에 찾은 짐들 중 남편이 이전 학기까지 썼던 젓가락 한 쌍이 있어 우리는 다행히 손으로 먹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지 3일째 되는 날 목요일에 우린 이케아를 갔다. 거기서 프라이팬, 칼, 도마, 그릇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을 사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스라엘 물가가 비싼데 이케아는 그나마 쌌다. 물가가 너무 비싼 탓을 정치권 때문이라고 말하는 현지인도 봤다. 그 이유인즉슨 일 년에 선거를 4-5번 할 정도로 정권이 안정되지 못해서 물가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근처 슈퍼마켓보다 2배 정도 싼 가격으로 물건들을 사서 좋았다. 그것도 디자인 괜찮은 물건들. 다만 가기 전날 이케아 온라인 사이트에서 열심히 검색해서 간 물건들 중 매장에는 없는 것도 있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꼭 필요한 걸 사고 오게 해 주신 것 같아 기뻤던 날. 이 날 오후에는 히브리대 교수님을 만나기로 한 일정이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물건 정리하고 30분도 안돼서 집을 나서야 했다. 





저녁 5시 30분쯤 학교 갈 때의 풍경. 아직까진(10월) 서머타임이 적용되어서 5시가 넘어도 해가 안 떨어졌다.



학교 가는 길은 해질녘이라 아름다웠다. 다행히 셔틀 시간에 맞춰서 탈 수 있었고 인당 교통비 5.5 세켈(약 2,200원)을 아꼈다. 



여기는 학교 캠퍼스가 도시 내에 여러 군데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가족 기숙사는 문과 캠퍼스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인데 이과 캠퍼스와는 걸어서 1시간 30분 거리다. 학교 셔틀을 타면 20-30분 정도. 고속도로를 지나야 직통으로 갈 수 있어 절대 걸어갈 생각을 못한다. 이과 캠퍼스를 갈 때는 학교 셔틀이나 42번 버스를 타야 빠르고 68번 버스는 좀 돌아가서 더 오래 걸린다. 대신 68번은 자주 오고(거의 10분마다) 학교 셔틀은 2시간 간격이다. 42번 버스는 30분 간격이라는데 제때 맞춰 안 오는 경우도 종종 경험해서 믿을 수가 없다.  



 만나 뵙기로 한 교수님은 히브리대에 교수로 계시는 뇌과학자셨다. 아무 연고 없지만 문을 두드려보는 이메일(cold email)에 답장해준 친절한 분이셨다. 이메일은 내가 의사로서 무급으로 연구를 돕고 싶은데 받아줄 수 있는지 부탁드리는 내용이었다. 일단 남편이 히브리대 학생이니 히브리대학교 교수면서 의학 쪽 연구를 하시는 분을 찾아보다가 이메일을 보낸 거였다. 이 분은 Nature Neuroscience 등 유수의 저널에도 논문을 실으신 분이어서 이런 분을 cold email로 직접 만나 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다.



남편도 처음 내린다는 뇌과학 건물 정거장. 



이제 저녁이 돼가고 있었고 처음 본 히브리대 뇌과학 건물(Hebrew University Brainscience building)은 아름다웠다. 이 건물이 가장 최근에 지어졌고, 가장 많이 투자받는 곳이라고 한다. 돈이 많아 가끔 학생들에게 무료 간식도 주는 곳.



건물 외부는 뉴런의 네트워크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우린 10분쯤 전에 도착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마침 교수님이 다른 주니어 연구자들과 대화하고 계시는 모습이 오른편에 보였고, 교수님도 우리를 보고는 그쪽에 인사를 하시고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 후 한 시간 동안은 교수님의 방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얘기를 나눴다. 교수님은 올해 만 70세가 되시는 분이셨고 나에게 이 연구실에 들어온다는 가정 하에 장단점을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또 이렇게도 말씀해주셨다.


"You only say 'professor' when you are angry."


이스라엘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중에도 한 번 쓸 것 같은데 여기서는 강의실에서 먹든 중간에 화장실을 가든 신경을 안 쓴다. 교수님도 굉장히 편한 차림으로 수업을 들어오시고, 학생들은 중간에 서슴없이 질문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한다. 또는 쉬는 시간에도 교수님과 마치 동료처럼 질문하며 대화한다. 그 활발하고 격식 없는 모습이 수업을 참관하는 나로서는 참 인상적이었다. 





미팅은 잘 끝났다. 아쉽게도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하는 원숭이 연구는 나에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우리는 신혼인데..! 남편이랑 떨어지기 싫어 이스라엘로 같이 왔는데 이렇게 될 순 없었다. 그렇지만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추천서나 연구를 위해 교수님을 선정할 때의 꿀팁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만난 교수님은 너무 따뜻한 분이셨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좋은 첫인상이 되어 주셨다. 



오는 길은 벌써 해가 지고 깜깜했다. 미팅이 끝난 건 저녁 7시 정도. 나오는데 지치고 배가 고팠다. 우리에게는 이후에 갈 곳이 있었다. 바로 우리에게 냄비를 준 남편 친구(일명 '냄비형')네 집. '냄비형'이 우리에게 파스타를 해주기로 했었다. 물론 남편이 한번 초대해달라고 부탁해서ㅎㅎ


제대로 된, 근본 있는 [엔초비 오일 파스타]



냄비형은 음식 하나를 할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한다.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친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과 같은 형네 파스타였다. 이날 가다랑어포 육수도 따로 해주셔서 우동처럼 같이 먹었다. 정말 맛있기도 하고 훈훈했던 저녁.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을 때 음식을 해주고 도와준 그 손길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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