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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Dec 12. 2021

가난한 갤러리스트의 최후

레드부츠갤러리

"끝이 보이지 않았다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가라앉는 배 안에서 내일을 꿈꾸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2018년부터 운영했던 북클럽이 코로나19로 잦은 취소와 연기를 반복할 때, 문득 미술 전시 관련된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북클럽에서 미술사 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도쿄로 2박 3일 미술관 투어를 다녀오면서, 미술 작품 앞에서 벅찬 감정을 느낀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공간을 3년 이상 운영하다가 코로나 덕분에 그나마 남아 있던 에너지가 소진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무작정, "갤러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당하게 돈을 투자하고 말아먹을 준비를 하는 어리석은 사업가처럼.


"내 몸의 에너지가 소진되면,

내가 있던 공간은 자연스레 사라질 테니

소멸할 거라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한번 더 해보고 싶었다."

문미정.작가 <생의 찬미>

그렇다고 그걸 바로 실행에 옮길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어서, 최대한 있던 공간에 머무르고 그 이후에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실행에 옮기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내 속마음을 누가 알아내기라도 한 듯, 상가 주인은 나가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그리고 권리금, 시설비 한 푼 안 내주고 이사비용 100만 원 받고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었다. 속상한 그 과정 가운데, 전화로 주인과 대판 싸우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기사로만 접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 동네에도 수두룩 했는데 순진한 나는 예외일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주인이 위층에 살고 있어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할 수없이 다른 공간을 알아보게 되었다.


분노의 질주였을까, 나는 더 큰 공간을 얻었고, 생애 처음 대출이라는 걸 받아서 인테리어를 마음껏 했다. "그래! 갚아보자! 갚으면서 한번 해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원 없이 하고 싶은 걸 해보자! " 몇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좀 무모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춤을 추듯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신나게 돈을 써본 건 40년 평생 처음.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천만 원 단위의 돈을 혼자 처음 써본 건, 10년전 남편이 받아온 보너스를 천만 원 받아서 월드비전에 우물을 하나 판 게 전부였다. 그 뒤로 난 늘, 여지없이 돈이 없었다.  그나마 우물 판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커주었다고 믿고 있다.


아무 준비도 안되어 있는 초보 갤러리스트가 다짜고짜 공간부터 열었다. 그냥 인테리어 사장님께 말했다. "갤러리 할 거니까 거기에 맞게 컨셉을 잡아서 알아서 해주세요." 다행히도 별 무리 없이 공간은 잘 꾸며졌고, 코로나 덕분에 오픈식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오는 사람은 적었지만, 전시는 계속되었고, 꾸준히 문의가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 안에는 의문이 있다. 나는 왜 전시기획을 하고 싶은 것일까? 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무모한 일을 이번 생에 여러 번 시도하는 것일까? 그 동기는 어디에서 부여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 안에 재능이라고는 1퍼센트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유를 찾을 때까지, 혹은 적자 상황으로 더 버티지 못할 때까지 갈 것 같다.





가난한 갤러리스트는 상황상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갤러리는 돈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술업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사업이 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예외적인 상황이 많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망할 게 뻔하더라도 갤러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그 일을 좋아하는가 아닌가의 여부.


그래서 나는 공간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다. 망하더라도 멋지게 망할 방법을 미리 구상해두자. 미술 전시와 작가들의 협업, 연대를 만들어 함께 가는 그런 구상. 그것 없이 돈만 따라가다 망하면 제일 불쌍할 것 같았다. 최대한 돈을 따라가지 않고 작가들을 밀어줄 수 있는 갤러리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가난한 갤러리스트의 최후 상황을 상상했다. 나는 언젠가 망할 것이고, 망하는 그날의 하루 일과를 지금 결정하자고 마음먹었다.


최후의 그날


30년을 갤러리를 운영했던 김대표는 그 간의 전시 이력과 활동을 돌아본다. 비록 상황이 어려워져 갤러리 문을 닫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고,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가슴 벅찬 경험을 했다. 30년을 함께 해온 작가들, 기획자들, 소장자들의 폐업 축하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 하는 따뜻한 말이 가슴을 적셔주고 있다. 32년 전 도쿄에 미술관 투어를 함께 갔던 지인들은 마지막 날에 함께 모였고 와인 한잔씩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시를 이 공간에서 했었고, 그 순간마다 서로를 응원해주고 지원해주길 멈추지 않았던 가. 지역에서 여성 작가들을 응원했던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 문화 사업, 공동체 활동. 이렇게 기쁘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게 될 줄 알았을까. 신기하게도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으니까. 반드시 최후의 날이 올 것을 알았고, 그 최후의 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도 계획 안에 있었다.


이제 남아있던 작품 중에 대부분은 주인을 찾아 떠났다. 남은 작품들은 평생 팔지 않고 아껴두었던 몇 작품. 이제 그의 작은 집안 곳곳에 걸릴 예정이다. 죽을 때까지 그 그림들 옆에서 다정하게 지내고, 재미난 소설책을 읽으면서 오후의 티타임을 갖는 일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일상을 고대해 왔을까? 이제야 그에게도 쉼이란 게 찾아온 것 같다. 감사하고, 기쁘고, 벅차오른 얼굴 표정을 보라!




끝을 알면, 두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갤러리를 시작했고, 무턱대고 그림들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갤러리를 하면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 신나게 전시도 기획하고, 작가들과 열심히 소통하는 갤러리스트가 되어야지.

레드부츠 갤러리 12월 전시

12월에 한 작가님의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전시가 취소되었다. 내가 가진 작품들을 전시할 기회가 생겨 두근거렸다. <그림의 방> _A Room of a Art collector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기획했다. 그림들을 위해 자신의 공간을 내어 준 한 소장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컨셉이다. 작가님들께 연락을 드려 전시를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도 울컥. 그저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마냥 자식 같을 것 같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신이 나는 것이다. 나도 내 분신과도 같은 소장품들을 이번 기회에 내놓을 수 있어서 기쁘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 대부분 30년 뒤에 나의 집으로 나와 함께 갈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있어도 행복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도 작지 않은 행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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