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장화북클럽 책모임이야기
<프랑켄슈타인>과 <82년생김지영>의 공통점이 있을까?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 여성작가가 쓴 것이고, 버림받고 소외당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다. 다만 메리셸리는 소외된 여성을 '괴물'로 형상화했고, 조남주작가는 '김지영'으로 집약시켰다. 2년 반 전에 나는 두 작품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괴물과 김지영이 꼭 나인것 같았다.
어릴 때는 집에 전집 책이 많아서 닥치는 대로 읽었고, 10대에는 문제집과 교과서만 미친듯이 읽었다. 가난한 20대에는 성경만 붙들고 늘어졌고, 가끔 알바로 몸살이 나서 드러누운 날은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빙점>을 붙잡고 읽고 또 읽었다. 책 속에 구원을 찾아 헤맸다.
결혼이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부 전공과는 무관한 천연염색 공예작가가 되었다. 나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다가,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알맞은 일을 찾다가 그림책테라피 일도 시작했다. 그림책은 좋아했지만, 책 테라피는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82년생김지영>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었다.내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인것 같아 눈물이 났다. 아주 어릴때부터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엄마가 되고나니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싶어 속이 상했다.
책을 읽다보니,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고, 승진한다고 하고, 성공한다고 하는 모든 사기성 짙은 말에도 나는 화가났다. 많은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간파했다는 듯이 타인을 하찮게 보는 사람들에게도 화가났다. 나는 왜 그렇게 화로 가득차 있었을까? 나는 왜 내가 이렇게 소외되었다고 느끼고, 화로 가득 차야만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고민했다. 어린시절의 읽기는 단순히 '읽기' 위해서였지만,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페미니즘 도서도 읽고, 고전문학도 다시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내가 가진 관점이 달라져 있었기에 전혀 다른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독자의 세계관에 따라 하나의 책이 완전히 달라보일 수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과 몸으로 알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불완전함이라는 측면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게되지만, 소외된 존재인 여성으로서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 남성중심의 이기적인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존재를 꼭 자신 아래에 두어야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닐텐데. 재미있게도 메리셸리는 소외를 경험했던 자신도 여성이 아닌 남성 괴물로 표현해야 했다. 힘있고 똑똑하지만 버림받은 상처로 삐뚤어져버린 남성 괴물. 그래야 독자들이 괴물을 불쌍하게 여길테니까.
나는 끊임없이 문학과 고전 등 인문학책을 읽어 나가면서, 화는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을 발견하고,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혼자 읽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책모임 전문 공간, 빨강장화북클럽을 꾸리고 함께 책읽기를 한지 3년 9개월 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지금은 5~6개의 팀으로 이루어져서, 인문학, 문학, 온라인, 낭독 등 다양한 장르의 책과 읽기 방식으로 만나고 있다. 서로의 일기를 읽기도 하고, 서로 추천한 책들도 함께 읽고 있다.
함께 읽기를 하면서 달라진 점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수용성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세계관이든, 논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갈 만한 근거들이 된다.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는 말을 내뱉지 않게된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말하고, 근거가 어떤지 잘 듣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모임이 끝나는 시간이 오면, 나름의 결론이 정리된다. 내 논거의 약점도 알게 되고, 나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 상대방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함께 읽기의 다른 좋은점은, 독서장르의 확장이다. 나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의무적으로 읽게 된다. 다양한 관심사가 있기에 다양한 장르로 읽을 수 있어서 지식의 폭도 함께 확장된다. <아!팔레스타인>,< 우린너무몰랐다>,<블록체인혁명> 과 같이 세계사, 역사, 과학기술 장르를 통해 소설이외의 책들은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책모임 안에서 다른 장르로 독서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수용성과 지식의 확장은 어떤 사회변화를 가져올까? 나는 단언코, 연대의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 사회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꿀벌이나 개미처럼, 인간은 함께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를 구성해서 살아왔다. 무조건 강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니다. 서로 도와야만 생존할 수 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들은 문화안에서 책을 통해 전달이 된다. 그 지식들은 한결같이 협력하는 인간만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책모임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자주 읽었다. 현재 공동체 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차별받고 있고, 그 차별로 인해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차별로 인해 인류의 절반이 불행하다면, 인류의 절반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분명 그 종족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책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불균형적이고, 비이성적인 사회 공동체를 인식하게 되었고, 건강한 사회가 실현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내가 책읽기를 시작하고, 모임을 꾸려온 지 햇수로 3년차의 중반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즐거웠고, 훨씬 더 고된 일이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고, 그것을 나누는 것은 더 기쁜일이며, 배움을 통해 성장하려면 피할수 없는 진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 좀 더 걸어가 봐야 알겠지만, 분명 그 목적지가 우리를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책읽기#빨강장화북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