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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Feb 16. 2022

나를 슬프게 하는 겨울 달밤

백번의 힐링다이어리

7주간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갔다가, 6학년 언니들의 졸업식을 끝으로 다시 봄방학에 돌입했다. 막내는 오늘 이런 말까지 했다. "아직 방학이 안끝났네~." 꼬맹이는 행복하고, 엄마는 슬프다. 겨울은 길고, 겨울 방학은 더 길다.


오늘은 오전에 온라인 수업이 있었다. 두 시간 반을 듣는 동안, 틈틈이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한다. 전날 있었던 녹색당 경기도당 운영회의 기록을 정리했다. 이렇게 딴짓을 해도 될까? 어쩔 수가 없다. 몸은 하나이고, 벌려놓은 일을 다 하려면 분신술을 써야 할 판이다. 아침에 김치볶음밥 도시락 세 개를 싸 두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일어났고, 두 명은 도시락을 열어 아침식사를 한다. 2시간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니 슬슬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지금 일어나 아침을 안 먹으면 세명의 아이들 점심시간이 뒤죽박죽이 된다. "조oo ! 이제 일어나~!!!" 큰 아이는 벌떡 일어나 내려온다. 고맙게도 금세 밥을 먹어치운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오후 1시 반이 되었다.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으니 막내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한다. 3시에 경기 녹색당 당무회의가 잡혀있다.  일단 아침과 점심을 챙겼으니, 애들 아빠가 저녁에 한 끼는 챙겨 먹이겠지. 그런데 어제오늘 저녁에 일정이 있는지 물어보던데, 왜 그랬을까. 모르겠지만 일단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전화로 피자를 주문하고, 일터로 나간다. 늦은 출근. 아마도 오늘도 밤늦은 퇴근이 예상된다.


가는 길에 야채 샌드위치를 두 개 주문했다. 가는 길에 찾아가서 회의 전에 하나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결국 내 점심은 5시 반에 먹었다. 회의는 기본 1-2시간이 걸리니까.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하나 먹으면서 저녁에 해야 할 기본소득 의제 모임 준비를 한다. 발제할 텍스트 4개를 읽는다. 2개 정도 읽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졸릴 때는 유튜브 방송을 하나 본다. 재미있는 거 하나 보면 잠이 확 달아난다. 딱 하나만 보고, 다시 집중한다. 꼬박 2시간 걸려 4개의 텍스트를 다 읽고 머릿속에 정리를 했다. 나는 왜 야채만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기본소득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일까?

저녁 8시가 되어 줌에 접속했다. 총 5명이 모였다. 어떤 멤버는 기본소득 정책에 굉장히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이런 사람이 있어야 더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다.) 어떤 멤버들은 모두를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시간이 되어서 스터디가 끝났다. 철칙이다. 스터디가 길어지면 다시는 안 오고, 안 가고 싶어 진다. 온라인으로 1시간만 한다. 스터디는 한 달에 한 번만 하지만, 뭐든 작은 것들이 쌓이게 되면 꽤 그럴듯한 자산이 된다고 믿고 있다. 태산이 될 때까지 티끌을 모을 태세로 공부한다. 기본소득 정책을 밀고 나온 대선후보의 공약과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의 기본소득 공약을 비교해서 발제를 했다. 기본소득은 글로벌한 정책 이슈가 되었다. 세금을 가장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의 아이들이 크면 일자리는 많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산을 모으고, 부동산 수익을 꿈꾸며 투자를 하고, 아이들 이름으로 주식을 사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아이들을 위해 기본소득 정책을 공부하고, 정당활동을 한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쿠폰으로 맥주 두 캔을 샀다. 가족들이 환호한다. 웬일인가. 알고 봤더니 오늘 결혼기념일이다. 14년이나 되었다. 남편이 케이크를 사 왔는데, 아이들이 나를 기다린 건 엄마가 와야 케이크를 먹기 때문이다. 꼬맹이들 얼른 케이크 먹게 하려고 촛불을 끈다. 맥주와, 샌드위치와 케이크, 그리고 둘째가 끓여준 비건 떡볶이, 낮에 먹다 남은 피자를 차려놓고 앉아서 먹고 또 먹었다. 괜히 왔다 갔다 돌아다니는 둘째를 꼭 껴안고, 앉아서 케이크를 퍼먹는 첫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기 쓰기 하는 막둥이의 쪼그만한 손을 쳐다본다. 또박또박 글씨를 참 잘 쓰는구나. 참 예쁜 손이다.


고기를 먹지 않은지, 아마도 거의 먹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건 동물 사체를 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가축을 먹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면 그 외에도 모든 공산품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부도덕함의 덕을 보며 소비하고 있기에, 부도덕하지 않은 물건은 세상에 거의 없다. 내가 고기를 줄이고 거의 먹지 않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이 꽤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가 지구를 뜨겁게 만든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기후변화로 온갖 불합리한 희생을 감당해야만 한다. (산업화 이후 1.5도씨만 올라가도 지구의 기후는 사람이 살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아 진다고 과학자들이 말한다. 앞으로 7년 정도 남았다. 이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절대 말할 수가 없다. 이미 알 수도 있겠지만. ) 살 곳이 없어지거나, 기후위기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이 되면 내 아이들도, 다른 나라의 아이들도, 잘 살 수 있을까? 청년 실업난은 시작된 지 꽤 되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으면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소득 없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소득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https://www.mcc-berlin.net/fileadmin/data/clock/carbon_clock.htm

야채 샌드위치도 맛있고, 기본소득 스터디도 할 만하다. 그 두 가지에 집중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내 아이들의 미래는 어둡고, 보이지 않는다.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아이들의 슬픈 미래가 펼쳐진다. 지구는 병들지 않는다. 인간이 멸종할 뿐이다.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으면 버려지는 쓰레기가 점점 더 많아질 전망이라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이들이 커서,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알아서 바꿔나가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비겁한 변명이 없을 것 같다. 어른들이 해야만 한다. 지금 아이들은 해맑게 살아가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매일, 일상이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속으로 운전하다가 장애물을 발견하면 브레이크를 급하게 콱 밟아야 하듯이, 우리는 지금 급격한 전환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노년도, 아이들의 미래도 지킬 수 있다.

달이 슬픈 밤이다. 나는 몇 살까지 정월대보름 달을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인 어느 날, 달을 보며 소원을 빌며,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던 날을 기억하겠지.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날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내 소원을 빌었다.



#백번의힐링다이어리

#기후위기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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