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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Sep 07. 2022

888개의 나에 대한 글

백번의 힐링다이어리

브런치 글을 오랜만에 쓴다. 블로그도 그럭저럭 유지한다.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블로그 100만 조회수를 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여전히 힘없이 글들은 흩어지다 만듯 올려져 있고, 매일 같은 일상을 올린 일기는 반복되고 있다. 너무 열심히 사는 척을 하다보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구분되지 않는 일상은 쳇바퀴일 수 밖에 없다. 글은 쓰지만 쿨해 지지도 앖고, 그냥 어쩔수가 없어서 마침표를 찍는다. 


일기쓰기를 시작한지 몇년 되었다. 블로그에는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연도별로 일기, 조각 글 같은 것들이 모여져 있다. 어떤 날은 초점도 안맞는 사진을 올리고 졸다 말다 쓴 일기글은 이미 맥락따위는 없이 시처럼 널부러져 있다. 운동 10분도 못한 날은 더 휘청되는 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를 직면한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지금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가, 이럴꺼면 다 때려치우지 왜 그렇게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어정쩡한 상태로 매일의 나를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총 2054개의 포스팅 중에서 일상의 기록을 모은 것은 888개. 


" 2054개 포스팅 중에서 일기형식의 글은 888개"

누군가 나에 대해 기록을 남겼는데 888개의 짧은 글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나를 ............


사랑하는게 아닐까?



그래, 어정쩡한 나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감하고, 받아쓰고, 사진찍고, 다시 어깨를 두드려준 나의 가장 좋은 벗. 


바로 나. 


나는 나를 정말 많이도 사랑해줬구나. 



힐링다이어리 일기모임이 어쩌다보니 25기까지 왔다. 사실, 처음에 시작할 때 너무 좋아서 100기 까지 가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버린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번 고민했던 "그냥.... 그만 둘까?" 의 유혹은 여러번 잘도 피해왔다. 매번 열심히 일기를 쓰는 멤버들과 서로 위로하는 마음을 진심을 다해 내비쳤던 그들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짠해져서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의 글을 읽어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가치가 있을까?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서 매일 타인의 일기를 클릭해서 읽어보고, 한줄이라도 댓글을 달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닐까? 전혀 딴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힐링다이어리 멤버들은 서로를 챙긴다. 얼굴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온라인 상에서의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가끔 우리 안에서도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도 하고, 멋쩍은 상황은 아닐까 의심도 들지만, 그래도 새로운 날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굿모닝을 외친다. 


왜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일까?

시작은 큰 아이의 일기쓰기 방황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나는 이렇게 자유로운 형식의 글쓰기가 좋아서 계속하고 있다. 쓰다보면 나는 나를 보듬고 있고, 위로하고, 이해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 누가 보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냥 꼴리는 대로 쓰고 또 쓴다. 이렇게 쓰다보면 누군가 한 사람은 얻어걸릴테지. 내가 나를 위해 전했던 위로가 그 사람의 정신의 주파수와 맟닿아 공명할 수도 있으니까. 


기운이 빠질때 쯤, 약발이 떨어졌다는 걸 안다. 비타민을 달고 사는 나지만, 일기쓰기 카테고리를 보면서 나대로 위안의 무언가를 쟁여두었다가 꺼내쓰는 기분이 든다. 일기읽기가 무슨 에너지바도 아닌데 말이지. 나는 문득 기억도 나지않는 과거의 어느 날에 들어가 그 날의 나를 만나고 온다. 어김없이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너무 힘들지, 조금만 참으면 곧 지나갈거야.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이유를 찾게 되니까. 그때는 좀 더 편안해 지겠지. 


그래 안심하고 편안해질 나를 기록하고 있었나.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두렵고 흥분되는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내 일기따위 책으로 낼만한 기록은 하나 없지만, 여전히 내 감정과 현실을 담아낸 일기는 중요한 사료이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이 모든 기록물도 꼭 잘 데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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