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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21. 2022

사실은 공부 중독입니다

희귀병이라 외롭습니다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일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고비가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 고비가 가타가나, 두 번째가 동사변형, 세 번째가 수동, 존경, 겸양 등 우리말로 직역하기 힘든 일본어만의 특이 문법이라고 한다. 나는 이 모든 고비마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며 네 번째 도전을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엔 마지막 고비를 잘 지나가고 있고 올해 12월에 있을 JLPT 시험도 볼 예정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했으니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정규직 직업도 있는 사람'(우리나라에서 공부의 최종 목적은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얻는 것 같으니까)이 일본어 공부는 갑자기 왜 하냐면, 그냥 재밌으니까. 그게 이유다. 재밌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공부가 재밌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균적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고민해봐도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일본어 공부를 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특히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같은 말이나 추가질문이 나오지 않으려면 무슨 이유를 대야 할까.

그런 이유는 없다. 이유를 찾는 게 어려워 일본어 공부를 한다는 사실부터 숨기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부끄럽거나 나쁜 일이라서 숨기는 게 아니라 귀찮다. 그렇구나 한 마디면 될 것을 미운 네 살처럼 왜. 왜. 왜. 만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말꼬리 잡혀 자기변호해야 하는 것이 귀찮다.


아주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계신 김경일 교수님은 행복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우리는 큰 행복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자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합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빈도를 어떻게 찾아야 하냐고? 거기에 대해서도 김경일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 오랫동안 해 온 일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성과를 느끼기 힘듭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 해보는 일은 성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함에 공부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공부는 돈이 가장 적게 드니까, 작은 비용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다행히 김경일 박사님은 유명하신 데다 말솜씨도 좋으셔서 공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말을 하셔도 누구도 비웃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내내 공부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공부를 왜 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차라리 편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본심이 드러난 날이 있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죽겠다는 친구가 나에게 너도 하기 싫을 텐데 어떻게 참고 공부하냐고 묻기에 말했다.

"그런데 하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은 재밌을 때가 있어. 죽을 만큼 싫으면 나도 이렇게 못하지."라고 말했더니 지나가다 그 말을 들은 학원 선생님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공부가 재밌다니 너 정신병자구나. 공부를 제대로 해봐라,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공부를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감수성 예민한 나이였지만 정신병자라는 말에 전혀 상처받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사람들의 반응이 귀찮아서 솔직한 말 대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말을 찾게 되었다.

 

나라고 모든 공부가 즐겁고 재미난 것은 아니다. 법 공부는 진짜 죽을 만큼 하기 싫었다. 법 공부를 하면서 공부하기 싫어 죽어버리고 싶다는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엔 포기를 품고 실제로 포기하기도 했었다. 포기했다 다시 시작하며 이번엔 죽을 만큼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 공부를 마쳤다.

이 것이 내 인생에서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최초이자 마지막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까지 되었으니 무슨 욕심이 있어서 하기 싫은 공부를 참고하는 줄 아는가 보다. 그러니 "공부는 그만하라"라고 말리거나 "차라리 영어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냐."는 조언을 하거나 "뭐 하려고 하는 거냐"라고 묻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냥, 별다른 이유없이, 재밌으려고, 잘하고 싶으니까라는 대답을 들으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도 의아스럽다. 하루에 몇 시간을 내어줄 뿐인 공부 따위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면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 같은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엔 이유를 생각해 보는지. 재밌어서 하는 일은 아닐 텐데.


공부 그거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재밌으려고 하는 거다. 다른 재밌는 게 있고 행복한 게 있다면 공부를 왜 해. 안 해도 된다. 답답한 것은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심지어 불행하다고까지 푸념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공부는 왜 하냐고 묻는 것, 심지어 재밌어서 공부한다는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과 냉소가 성가시다. 그렇다고 행복하려면 공부하라고 전도할 정도로 사람과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도 없으니, 가끔 답답하다. 그리고 문득 외롭기도 하다. 그래도 간간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p.s. 토 달지 않고 그렇구나 해 주는 사람에게만 말씀드리자면, 공부 왜 하냐면,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게 즐겁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대체로 힘들긴 하지만 가끔은, 진짜 아주 가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공부가 재밌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프(바디 프로필) 찍는 사람들 있잖아요. 몇 달 동안 먹고 싶은 거 참으며 힘들게 운동하잖아요. 준비하는 동안은 힘들어도 힘들게 만든 몸을 거울에 비춰보면 뿌듯하고 행복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공부를 해서 만들어진 저의 모습에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아마 공부중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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