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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26. 2022

집 한 채와 바꾼 인생

그 시절 나의 사치는 한우 생갈비만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족과 대구에서 살다가 스무 살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상경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혼자 자취를 하게 된 자식이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셨지만 스무 살의 나는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과 달라서 혼자서도 잘 생활해 나갈 것이라 자신했다. 돌아보면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요리나 집안일도 엉망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남 달라서라기 보다는 부모님의 꾸준한 관리감독 덕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서울 집을 들여다보셨다. 엄마가 온 날은 복도 끝에서부터 고소한 집밥 냄새가 났다. 아빠가 온 날은 고소한 집밥 냄새 대신 한참을 마중 나와 기다린 아빠의 그림자가 나를 반겼다. 마중 나와 기다리던 아빠는 매번 길 건너 갈빗집으로 나를 데려가서 한우 생갈비를 시키셨다. 길 건너 갈빗집은 내 입학식 날 아빠와 처음 가 본 집인데 질 좋은 한우 생갈비가 아주 일품이었다. 갈비탕이나 먹자해도 갈비탕은 혼자 와서도 먹을 수 있으니 아빠랑은 갈비 먹자며 그 비싼 생갈비를 시켜 주셨다.


한우 생갈비는 지금이나 그때나 비싼 음식이다. 그런데다 그때 갔던 그 집이 다른 집보다 가격대가 높기도 하였다(그래서 결국 못 버티고 폐업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입에서 살살 녹는 갈빗살에 맛있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맛있다는 소리에 아빠는 망설임 없이 그 비싼 갈빗살을 1인분 더 추가하셨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몇 점 제대로 맛도 못 보시고 결국 갈비탕을 시킬까 된장을 시킬까, 그냥 공깃밥이나 하나 시킬까 고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야 되돌아본다. 다시 지방에 내려와서 진짜 지방생활을 하다 보니 말이다.


얼마 전 이 지역의 고3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이런 넋두리를 하셨다. 사는 거 크게 다르지도 않은데 자기 딸은 뭐하러 서울 가려하는지, 적당히 지방 국립대나 나와서 공무원 준비나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신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사실 서울에서 대학 나온다고 뾰족한 수도 없다. 대단한 부와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방 국립대를 나와서 공무원이 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얕잡아 볼 일도 아니다. 다만 경제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의 꿈과 경험에 기꺼이 돈과 마음을 내어줄 수 없음이 슬펐다. 그런 부모의 그릇과 그런 자식의 처지에 슬픈 마음이 든다.


부모라 해서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재력에 비추어 그다지 큰 희생이 아니라면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자식의 경험 자체를 응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다는 말 대신 나는 못 본 세상을 너는 보고 오라고 응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뭘 하든, 어떻게 살든, 하루에 밥 세끼 먹으면 같은 인생이라 하면 반론할 수 있는 말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맞벌이에 노후 연금까지 보장된 부모의 진심이 이러한데 외벌이에 노후대비도 혼자 감당하셔야 했던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셨을까? 부모니까 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비도 주는 거라 생각했다. 어느 부모가 못 가서 못 보내는 거라면 모르지만 갈 수 있는 자식을 서울 안 보내려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아무 욕심 없이 그저 너 하나 잘 되라고 자식의 서울살이를 응원하는 것은 집 한 채를 그냥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집을 한 채 날리신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보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좋은 선후배와 동기들을 뒀지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할 수가 없다. 교양을 쌓고 가능성과 자존감을 높인 것까지 해도 도저히 수지가 안 맞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가 집 한 채 날린 것에 본전으로 들이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역시 사는 거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어떤 어머님의 말씀이 맞는 걸까?


그러다 전화를 들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실없는 소리를 하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했다.

"아빠, 내가 절대 술을 마신 건 아니고...."

"왜, 지금부터 마시려고?"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술 마셔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맨 정신에 드리는 말인데....

  나 서울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머님들이 그러는데, 자식이 서울 가는 거 싫대.... 인생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돈 많이 든다고.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나를 서울 보내주셨대....

 서울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며 눈물 참느라 혼났다. 평소 좋은 딸이 아니다 보니 아빠 목소리만 들으면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렇게 눈물이 난다.


대단한 부와 명예를 얻지는 못해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해왔다. 가끔은 굳이 S대를 나오지 않았어도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역시 S대 나왔으니까 정도는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삼는다. 하지만 아빠의 희생에 비해서는 너무나 평범한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빠에게 죄송한 생각이 든다.

그저 맛있어서 먹기엔 너무 비싼 한우 생갈비를 철없이 맛있게 먹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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