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와 바꾼 인생
그 시절 나의 사치는 한우 생갈비만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족과 대구에서 살다가 스무 살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상경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혼자 자취를 하게 된 자식이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셨지만 스무 살의 나는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과 달라서 혼자서도 잘 생활해 나갈 것이라 자신했다. 돌아보면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요리나 집안일도 엉망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남 달라서라기 보다는 부모님의 꾸준한 관리감독 덕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서울 집을 들여다보셨다. 엄마가 온 날은 복도 끝에서부터 고소한 집밥 냄새가 났다. 아빠가 온 날은 고소한 집밥 냄새 대신 한참을 마중 나와 기다린 아빠의 그림자가 나를 반겼다. 마중 나와 기다리던 아빠는 매번 길 건너 갈빗집으로 나를 데려가서 한우 생갈비를 시키셨다. 길 건너 갈빗집은 내 입학식 날 아빠와 처음 가 본 집인데 질 좋은 한우 생갈비가 아주 일품이었다. 갈비탕이나 먹자해도 갈비탕은 혼자 와서도 먹을 수 있으니 아빠랑은 갈비 먹자며 그 비싼 생갈비를 시켜 주셨다.
한우 생갈비는 지금이나 그때나 비싼 음식이다. 그런데다 그때 갔던 그 집이 다른 집보다 가격대가 높기도 하였다(그래서 결국 못 버티고 폐업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입에서 살살 녹는 갈빗살에 맛있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맛있다는 소리에 아빠는 망설임 없이 그 비싼 갈빗살을 1인분 더 추가하셨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몇 점 제대로 맛도 못 보시고 결국 갈비탕을 시킬까 된장을 시킬까, 그냥 공깃밥이나 하나 시킬까 고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야 되돌아본다. 다시 지방에 내려와서 진짜 지방생활을 하다 보니 말이다.
얼마 전 이 지역의 고3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이런 넋두리를 하셨다. 사는 거 크게 다르지도 않은데 자기 딸은 뭐하러 서울 가려하는지, 적당히 지방 국립대나 나와서 공무원 준비나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신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사실 서울에서 대학 나온다고 뾰족한 수도 없다. 대단한 부와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방 국립대를 나와서 공무원이 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얕잡아 볼 일도 아니다. 다만 경제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의 꿈과 경험에 기꺼이 돈과 마음을 내어줄 수 없음이 슬펐다. 그런 부모의 그릇과 그런 자식의 처지에 슬픈 마음이 든다.
부모라 해서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재력에 비추어 그다지 큰 희생이 아니라면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자식의 경험 자체를 응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다는 말 대신 나는 못 본 세상을 너는 보고 오라고 응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뭘 하든, 어떻게 살든, 하루에 밥 세끼 먹으면 같은 인생이라 하면 반론할 수 있는 말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맞벌이에 노후 연금까지 보장된 부모의 진심이 이러한데 외벌이에 노후대비도 혼자 감당하셔야 했던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셨을까? 부모니까 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비도 주는 거라 생각했다. 어느 부모가 못 가서 못 보내는 거라면 모르지만 갈 수 있는 자식을 서울 안 보내려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아무 욕심 없이 그저 너 하나 잘 되라고 자식의 서울살이를 응원하는 것은 집 한 채를 그냥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집을 한 채 날리신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보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좋은 선후배와 동기들을 뒀지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할 수가 없다. 교양을 쌓고 가능성과 자존감을 높인 것까지 해도 도저히 수지가 안 맞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가 집 한 채 날린 것에 본전으로 들이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역시 사는 거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어떤 어머님의 말씀이 맞는 걸까?
그러다 전화를 들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실없는 소리를 하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했다.
"아빠, 내가 절대 술을 마신 건 아니고...."
"왜, 지금부터 마시려고?"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술 마셔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맨 정신에 드리는 말인데....
나 서울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머님들이 그러는데, 자식이 서울 가는 거 싫대.... 인생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돈 많이 든다고.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나를 서울 보내주셨대....
서울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며 눈물 참느라 혼났다. 평소 좋은 딸이 아니다 보니 아빠 목소리만 들으면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렇게 눈물이 난다.
대단한 부와 명예를 얻지는 못해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해왔다. 가끔은 굳이 S대를 나오지 않았어도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역시 S대 나왔으니까 이 정도는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삼는다. 하지만 아빠의 희생에 비해서는 너무나 평범한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빠에게 죄송한 생각이 든다.
그저 맛있어서 먹기엔 너무 비싼 한우 생갈비를 철없이 맛있게 먹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