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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 Apr 23. 2019

엄마, 그건 고양이 탓이 아니에요

연애 못하는 딸을 둔 엄마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고양이 엄마 줘라"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내가 기르는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나섰다. 엄마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가 곁에 없어야 순탄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의 연애는 언제부턴가 금방 끝나버리기 일수였다. 처음엔 그냥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며 다른 사람으로 지워냈다. 하지만 그다음 사람도 또 다른 사람도 금방 헤어졌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은 니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명백한 사건이 생겼다.  하지만 사례가 늘어날수록 '문제는 사실 내가 아닐까' 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찌나 나를 실망케 하는지 자꾸만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했다. 헤어진 연인에게 비친 나는 밝게 빛났지만 도무지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소녀였다.




한 번은 아빠가 나서서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아빠 지인의 조카가 서울에 사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담대한 긍정론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그 제의를 덥석 받았다.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물었다. 잘생겼냐고.


전화번호를 넘겨받았는지 연락이 왔다. 간단한 자기소개 끝에 만날 날짜를 정했다.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진 사이에 여러 번의 양가 부모님들의 전화가 끼어들었다. 사실, 말 소개팅이지 선이나 다름없었다. 양가 부모님은 과년한 딸과 아들의 연애가 잘되길 바랬다.


그도 고양이를 키웠고 내 직업을 잘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터라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외모도 내 취향이었다. 가끔씩 보였던 무신경한 행동은 약간의 호기심과 의문을 남겼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시동을 걸면 그대로 결혼으로 골인할 것만 같은 기세에 당사자들은 노를 놓아버렸다.


사실 나는 우선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4살이나 많았던 서른 중반의 그는 몹시도 부담스러웠는지 지지부진한 연락과 만남을 진전시킬 기미가 없었다.


먼저 포기를 외친 것은 나였다. 나쁘지 않았던 데이트였지만 마음을 터놓지 않는 그의 태도가 나를 실망케 했다.


여름휴가를 기점으로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명쾌하게 '그만 만나자'라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찝찝했다. 그러나 우린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기에 이별을 고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여름휴가가 끝난 뒤 두 번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할 이야기도 없었고 더 이상 답답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도망친 것은 그가 아니라 어쩌면 금방 결혼을 밀어붙일 것만 같은 부모님이었나 싶다.




신기하게도 어딘가에 존재했는지도 몰랐을 남자들을 자꾸만 알게 됐다. 소개팅이나 우연한 만남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몇몇은 내 옆을 지켰지만 잠시뿐이었다.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에 자꾸만 지쳐갔다.


나에 대한 확신을 지킬 수 있게 한 건 내 고양이었다. 엄마의 우려와는 반대로,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안의 사랑을 확인해줬다.


나 이외의 생명에게 헌신할 수 있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줬고 함께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


내가 또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 준건 말없는 내 고양이라는 사실을 엄마는 모르겠지.


2018년 2월 28일생. 브리티쉬 숏헤어. 회색과 노란색, 흰색 털을 가진 과묵한 고양이. 봄과 여름의 중간에 나에게 온 나의 오월.


그러니까 엄마,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오월이 때문이 아니야. 아직 내 인연을 못 찾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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