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아빠가 내게 시킨 일이 있다.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 한 편을 쓴다. 매일 공부할 것을 계획하고 진도표를 작성한다. 용돈기입장을 작성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친다. 주말 중 하루 아빠에게 이것들을 검사 맡는다.
아빠는 선생님이었다. 직업은 영어 선생님. 집에서도 선생님이었던 셈이다. 나는 아빠가 무서워서 꾸역꾸역 시키는 것들을 했다. 칭찬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아빠는 매우 엄했기 때문에 속으로는 아빠를 미워했다.
아빠가 꾸준히 내줬던 숙제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됐다. 독서 습관은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했고 지금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양분을 만들어 줬다. 지금은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아빠 덕분이라고. 그런데 가끔 궁금하다. 아빠도 내 마음을 눈치챘을까. 알고 있었을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
미움받을 것을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이해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월이가 우리 집에 온 지 3일 만에 왼쪽 눈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흰자가 빨갛게 물들더니 살며시 붓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네이버를 켰다. '고양이 눈병', '고양이 충열', '고양이 질병'. 검색을 거듭할수록 병명은 심각해졌다. 처음으로 우주선 가방에 오월이를 넣어 부리나케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뭐가 문제였지. 뭘 잘못한 거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다 등 뒤에서 울고 있는 오월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슴팍으로 가방을 돌려맸다. 오월이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병원에는 기다리는 손님이 없었다. 초초한 마음으로 접수대에 가서 말했다.
"저희 고양이가 눈이 부어서요" 담담한 목소리를 연기했지만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잠시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월이는 차가운 대리석 상판에 발을 디뎠다. 선생님은 오월이를 이리저리 살피며 기본 검사를 진행했다. 의사 선생님의 얇은 입술사이에서 결과가 날아왔다. "괜찮아요 모래나 먼지 때문인 것 같네요. 허피스 같은 질병은 아니에요"
처방은 알약 5일 분과 안약이 나왔다. 아침 점심으로 알약을 먹여주고 하루 세 번 안약을 넣어줘야 했다. 기쁜 마음에 동물병원에서 잘 팔린다는 간식을 함께 결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날개 단 듯 가벼웠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봉지를 깠다. 주사기 같은 형태의 기구 끝에 알약을 넣고 입을 벌려 넣어야 했다.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겐 별안간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냥냥 펀치와 하악질을 당했다. 몇 번이나 입에 들어갔다 나온 알약은 물렁물렁해졌다. 조그마한 이빨을 보이며 소리 지르는 오월이를 보니 신뢰가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오월이가 귀를 뒤로 젖히고 있다. (일명 마징가 귀로 불린다)
"괜찮아 괜찮아 이거 먹어야 안 아프지. 응? 이거 먹으면 냠냠 주지." 간식을 보고 달려오던 오월이는 알약을 보곤 도망갔다. 내 어깨에 기대 잠을 청하던 오월이는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침대 밑으로 몸을 숨겼다. 전쟁 같은 5일이 지났다. 오월이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나에 대한 애정은 전과 같지 않았으리라.
미움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에게.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은 함께 떠났던 여행길에서였다. 나는 차 안에서 학교, 친구, 공부 이야기를 했고 아빠는 그것을 재미있게 들어줬다. 나 역시 아빠의 친구, 근황과 고민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다. 물론 아빠가 어린 내게 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한정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아빠의 가슴속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언어를 쓰고 있어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표현에 서툴렀던 우리 아빠는 술을 마시고 오면 나를 깨워 용돈을 주곤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걸 사랑한다는 말로 알아 들었었나. 기억이 흐릿하다.
아빠 딸 역시 오월이에게 간식으로 관계를 좁히는 것을 시도했다. 츄르, 트릿, 사탕 무기는 많았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야.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하지만 오월이 역시 간식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함께 있는 시간이겠지.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월아, 나 미워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