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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Nov 09. 2022

미라클 모닝에 대한 뻘글

20221109

  미라클 모닝. 이 말이 참 우스웠다. 네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아홉 시에 잔다면, 어차피 퇴근 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깎이기 때문에, 결국은 조삼모사 격이 아닌가.


  의도치 않게 미라클 모닝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독일 살이 시절, 한 달 남짓 한국에 휴가를 마친 뒤 다시 독일로 귀국했을 때. 시차적응때문이겠지만, 어찌 됐든 한국의 시간대를 애매하게 따라가서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눈이 떠졌고 말똥말똥 머리도 아주 맑았다. ‘미라클 모닝’을 우스워하며 핀잔을 주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이 시기만큼은 난 어떤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라클 모닝. 이렇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뭐라도 하다 보면 기적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할 수 있어, 나도. ‘미라클 모닝’ 검색어를 돌려보다가 그냥 조금 일찍 일어나서 재미있는 것을 해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영상인지 글인지를 봤다. 그러고 실천했다. 유튜브를 봤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주 맑은 머리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아주 열심히. 어쩌면 나도 아침형이 될 거라는 그 헛된 희망은 늘 일주일도 안 되어 좌절되었다.   나에게 유튜브는 그다지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시차 적응 완료의 힘이 더욱 강력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왠지 모르게 비꼬고 싶어지는 그런 신포도가 다시 되어버린 미라클 모닝은 나와 꽤 오랜 기간 거리두기 중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는 그는 말했다. 아침에 무언가를 성 취하고 나면, 그날 일터에서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고 속상해도 ‘그래도 아침에 그건 성취했잖아’라는 그 기분이 아주 큰 위로가 되며 힘이 된다고. 그 성취의 맛을 본 이후에 선순환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친구는 이런갑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직장생활, 사회인이 어떤 세계인지 어느 정도 간은 본 것 같은 직장인 7개월 차. 특징적인 내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매일 출근길부터 대략 오후 한 시까지 아주 멋진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퇴근하고 이걸 해야지. 오! 이걸 그런 식으로 하면 진짜 재밌고 멋질 거야. 오, 나는 천재인가 봐. 빨리 저녁이 돼서 그렇게 하면 좋겠다. 아 맞다, 오늘 저녁에는 그것도 처리해버리자. 정말 홀가분할 거야!’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활기. 희망찬 하루의 시작. 하지만, 정신없이 밀려드는 회의, 전화, 테이블 미팅, 메신저, 카톡. 예상 퇴근시간보다 한 시간 두 시간은 훌쩍 넘긴 그 시간에는 말 그대로 뇌가 아주 탁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그 반짝이던 오전의 아이디어들이 새벽 한 시 감성글마냥 더 이상 멋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해서 무엇하리. 별로 좋은 생각도 아니었던 것 같구먼. 아마도 지친 심신으로 더 이상 무언가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쯤 되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외치던 미라클 모닝, 아침형 인간, 모닝 루틴이 떠오르는 거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직장인이 있고, 그중 아주 많은 사람이 내가 느낀 이 ‘풀방전’ 상태를 아주 오랜 기간 이미 경험해봤고, 조금은 더 성취지향적인 삶을 위해 아침형 인간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일어나지 못하는 핑계는 아주 많다. 수많은 핑계들 중, 요새 가장 밀고 있는 것은 ‘당분’과 ‘커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어떠한 활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아침밥과 커피를 회사에 가서 해결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마도 머리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아서 스스로 꽤 만족스럽게 여기는 이 핑계는 한동안 나를 현재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본성을 거스르며 아침형 인간이 되려 하는 의지는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나의 노답일상패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그리고 아침형 인간의 그 성취감에 대한 호기심이 잔재한다면, 그것과 거리두기 해제될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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