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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Feb 21. 2023

꼬리뼈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20230221

 일생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그래서 아주 중요한 일이 그토록 순식간의 찰나에 일어날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은 일이 일어난 직후. 미끄럼방지가 있었고, 구두도 단화도 뭣도 아닌 운동화였고, Autopilot으로 십수 년 잘해 온 그 일, '계단 내려가기'가 그 순간에 오작동했고 다섯 계단을 다리로 굴러 꼬리뼈로 착지했다. 동행자는 당황했지만, 가장 황당황 한 것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던 그런 모냥빠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 나 자신.. 나의 신체적 안위보다는 당황스러움과 쪽팔림이 더욱 컸기에 빛의 속도로 일어났고, 잘 걷고 또 보란 듯이 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차를 두고 무자비하게 공격을 하는 통증은 피할 수 없었다. 퇴화된 신체의 일부인 꼬리뼈 주제에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이 개입되어 있을 줄이야. 가장 마지막으로 꼬리뼈에 부상을 당한 것은 어언 십수 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영장에서 물속에 안착하려다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을 그때, 아악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고통을 느꼈던 그때였다. 하지만, 어린이라면 통상적으로 그러하듯이 별 신경 쓰지 않고 살던 길을 잘 살아냈고 불과 며칠 사이 통증은 자연스레 말끔히 사라졌더랬다. 하지만, 삼십 줄이 넘어선 지금 이때의 부상은 그렇게 가볍지가 않은 것이다. 금이 갔을 것이다. 어딘가 부러졌을 것이다. 척추가 통째로 뒤틀려버렸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걷지 못하게 되는가? 평생을 이렇게 꼬리뼈를 부여잡고 살게 되는가?!?! 부리나케 검색을 통해 꼬리뼈 금은 X-ray로 판독이 안되며 다른 방법을 활용해 판독한다 하더라도 수술적 요법은 수행하지 않으며 그저 시간을 두고 '휴식을 취하며' 회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잡지식을 습득했다. 아차차.. 출근길이던 나는 이 '휴식을 취하며' 대목에서 절망했다. 나도 휴식 좀 하고 싶다고.....,,,..,,. 나의 꼬리뼈는 이대로 안녕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고통 1일 차. 단 하루 만에 나는 통증이 극대화되는 동작과 최소화되는 행동들을 꽤 빠르게 파악했다. 일어나고, 앉고, 눕고, 일어나는 어떤 '변화'가 있는 동작은 통증을 악화시키기 마련이며, 의자에 앉아있기 같은 오래 머무르는 동작 또한 최악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알아봤자였다. 이론값과 실제값에는 늘 괴리가 있는 법. 직장인의 숙명과 사명을 저버리는 의자에 앉기를 거부하는 행위, 그러니까 일 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할 수 없던 것이다. 통증에 몸이 비틀어져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 앉아있어야 하고 그러면 너무 아프고의 반복. 게다가 의외의 통증 최고의 순간은, 기침, 재채기였다. 도대체 몸통은 어떤 구조로 생겨먹었고 어떻게 다들 연결되었길래 꼬리뼈와 전혀 무관한 폐를 포함한 상부 장기의 영역인 줄만 알았던 기침에 영향을 받는 건지. 평소 하지 않던 기침과 재채기는 왜 이런 순간 조금 더 자주 발생하는 건지.! 삼십여 년 살아도 이해할 수 없는 몸뚱아리였다. 그 와중에 찾은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으니, 통증이 가장 최소화되는 변기의 순간... 수많은 검색 결과에서 의사들 답변에 하나같이 '도너츠 모양의 방석을 사용하세요'가 있는지 완벽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너츠 모양의 방석은 없었고, 당장 구할 수도 없으니 화장실을 조금 더 자주 가는 방식으로 나의 상처를 달랠 수밖에. 


삶을 이루는 근간인 육체와 정신 모두 영향을 받았다. 나의 하루하루는 꼬리뼈가 멀쩡한 타인을 관찰하며 지나갔다. 멀쩡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서로 수다를 떨고 있는, 다트게임을 하며 방방 뛰는, 진득하니 오피스 의자에 앉아 업무처리를 하는, 모든 신체활동을 보란 듯이 아주 쉽게 해내는 그들을 질투하고 동경하는 데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불가피하게 아무런 운동을 할 수 없었기에 온몸의 근육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고, 실제로 몸무게가 1-2 kg 줄었다. 참다못해 헬스장에 가서 꼬리뼈가 개입되지 않는 동작으로 조심스레 근육손상을 시도한다. 상체, 하체, 복부 등 몸이 모든 부분이 꼬리뼈의 영향권에 있음을 처음 깨닫는다. 아니, 내가 꼬리뼈를 개입시킨 채로 운동을 해왔던 것일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꼬리뼈 개입은 운동할 때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육이 뭐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 어떻게 닿아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꼬리뼈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구나. 반강제적으로 근육 분절화를 하며 몸의 구성에 대한 연구만 잔뜩 하다 오던 그런 하루하루. 


삶의 많은 것들이 꼬리뼈로 인해 변했다. 조금 더 몸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깨달았고 조금 더 신중히 조심성 있게 살아가자는 다짐이 빼곡했다. 하지만, 그 새로운 다짐의 영향력은 고작 일주일 남짓.. 큰 문제는 없었는지 하루하루 시나브로 회복되어 이제는 좀 살만해졌다. 꼬리뼈는 소중하지만 이제 다시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꼬리뼈 너는 단지 퇴화된 신체(꼬리)의 일부로서 아무 의미 없는 기관일 뿐!


그렇게 어렵고 쉽게 꼬리뼈에 대한 철학과 통찰은 끝났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나는 인간이고 나는 망각의 동물이니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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