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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Apr 19. 2024

Standing up for me myself

 1. 3년 전,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그 강아지는 주인이 놀아주는 행위인 줄도 모른 채 공격적이었다. 하찮은 그 귀여운 몸짓을 보며 A는 자랑하듯 말했다. "Look, he is standing up for himself. Haha. Good boy." 일어서다? 자신을 위해 서다? 뜻이 정확히 뭔지 모른 채로 넘기고 뒤늦게 집에 가면서 뜻을 찾아본 나는, 이유 없이 그 구절이 꽤나 맘에 들었다. (A는 내 반경에서 사라진) 그 이후로도 계속 그 구절이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어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 13년 전, 그 청문회 비슷한 그 자리에서 그 17명의 남자들은 3명의 동기 여자들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남학생 K가 여학생 Y를 막 대하는 걸 보고 본인들도 그냥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고 따라 했을 뿐이라고. 옆에서 그렇게 하니 자신들도 막말하고 쌍욕을 날리고 막대했을 뿐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3. 최근, B 선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과거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절대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데서 나오는 용기였을 것이다. 모수가 적어 쉬이 마주치기 힘든 대학 동문 선배를 우연히 같은 회사에서 만났고, '대학 동문'이라는 것은 2024년 새천년 한가운데에서도 여적지 쉽게 친밀함을 형성하는 파워가 있긴 했다. B 선배와 나는 유일한 동문이었으며 선배님, 후배님 하는 모습이 주변에서도 꽤나 재미있어 보였는지 캐릭터를 부여해 줬다. 그러나, 동문이라고 해도 (가족이라고 해도!) 사람을 쉬이 믿지 못하는 나는 아직 거리감을 두고 서로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중인데도 그 선배는 일방통행으로 대단히 친밀하게 나를 대했다. 한 번, 두 번 B 선배를 포함한 동료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거듭할수록 때마다 유독 나에게 다소 불쾌한 언행을 하는 것 같더니, 그날은 나를 마치 '격 없이 친한 남자 후배' 마냥 나를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아니다. 남자 후배라고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무례의 영역이다). 육두문자를 섞어 쓰는 말을 내 앞에서 했고, 헛소리하지 말라며 본인 손으로 나의 목을 친다던가, 옆구리를 찌른다던가 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불쾌했으나, 너무나 급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그의 행동들에 상황 파악을 하는 데에는 이미 집에 돌아온 뒤였다. 

 굉장한 고심 끝에 몇 가지가 정리되었다. 나는 불쾌하다. 그리고 이것은 빠른 시일 내에 당사자에게 표출하고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상황이 종료된 직후인 오늘내일 이걸 전달하지 않으면 그는 분명 기억을 못 할 것이고, 현재 이 타이밍이 지나고 나서 말하는 것은 그때부터는 나의 '잘못'이다. 불쾌한 감정은 내가 온전히 다 떠받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얘기를 들먹이는 쫌생이가 되는 것이고 감정만 상하는 개싸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난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 되고, 그럼 나는 나를 정말 싫어할 것 같다) 이건 단 둘만 비밀리에 이야기해야 하는 사안이다. 

 결심하고 출근 한 날, 하필 유난히 정신없이 바쁜 그날 그를 따로 불러내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숨이 막혀 그냥 어물쩍 넘어갈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나름 동문이라고 다소 수월하게 업무적으로 상부상조했던 기억도 떠올라서 괜히 진지하게 각 잡고 말했다가 그런 좋은 기억까지 그르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나의 기질 덕분인지 포기했을 경우 후폭풍이 머릿속에 파사삭 떠올랐고 일단 냅다 지르고 만 것이다. 할 말은 많았지만 두괄식 좋아하는 회사에 다니니만큼 담백하게 두 가지 사실만 전달했다. '나는 불쾌하다. 나를 그렇게 막대하면 그걸 본 타인도 은연중에 똑같이 나를 대할 가능성이 높고 난 그걸 절대 원치 않는다' 다행히 사회화가 된 사회인인 덕분인지 알아듣는 (혹은 척) 모냥이었다. 변명하자면 본인은 원래 누구에게나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 이렇게 불편함을 말해주는 게 오히려 고맙다, 쉬는 동안 어떻게 말할지 마음이 불편했겠고만, 하며 그 상황은 종료되었다. 한동안 B 선배와 내가 같은 자리에 마주할 때마다 어색함의 그 기류가 불가피할 것을 안다. 그러나 그건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하다면 그냥 그대로 두면 될 것이다. 어차피 우리 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

 

  씁쓸했다. '어른'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그 누구도 복잡다단해진 상대방의 삶을 면밀히 알 수 없고, 맥락 파악에도 크나큰 한계가 있다는 것. 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를 위해 싸우고 나서서 해결해 줄 수가 없다는 것.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나 개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시시비비의 사건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 이것이 어른의 룰이구나. 

 한편으로 굉장히 뿌듯했다. 십수 년을 돌고 돌아 마침내, 나는 stand up for myself 할 수 있었다. 고민도 많았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름의 해결방안을 고안했고 실행했다. 그리고 스스로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에서 해방되었다. 13년 동안 않은 채 홀로 간직하고 있던 그 문제가 함께 풀리는 기분이었다. 13년. 오래 걸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은 게 어디인가.   



태어난 지 한 달짜리 강아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포효한다. 만 30년 하고도 그 이상을 산 여기 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한 생명체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행동은 복잡다단한 이 세상에서 단순히 동물적인 포효면 된다. 부단히 지능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참으로 피곤한 세상이지만, 괜찮다. 내일은 더 피곤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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