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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Oct 16. 2016

계절과 계절 사이의 띄어쓰기

잃어버린 계절의 틈으로 잊혀버린 시간들 

  



  애초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그 사이에는 분명 간격이 존재했다. 공기의 온도는 다분히 천천히 데워졌다가 식어갔고, 그 공기를 담고 있는 바람의 세기 또한 그랬다. 두터운 니트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곧 봄이 끝나간다는 신호였고,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던 땀이 시원하게 식어갈 때쯤이면 곧 가을이 오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도 모자라 겉옷을 챙겨 입어야겠다 싶어 지면 겨울의 문턱 앞이었고, 꽁꽁 얼은 바닥 위로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 쬐이면 곧 그 위로 봄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요즘의 계절은 내어 놓은 옷가지를 곱게 개어 옷장에 켜켜이 쌓을 시간조차 도무지 주질 않는다. 한여름에도 얇은 카디건 하나쯤은 챙겨두어야 하고, 한겨울에도 얇은 옷들을 차마 넣어둘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는 종잡을 수가 없게 되어 봄인가 싶다가도 금세 여름이 오고, 이 여름이 언제 다 가려나 싶었다가도 찬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심지어 가을은- 있기나 했었는지 모르겠다. 잠깐 졸은 사이에 기척도 없이 왔다 가버린 것인지.











  계절이 사라졌다.


  더불어 계절의 품에서 누렸던 것들도 빼앗겼다. 봄의 벚꽃 아래서 낮잠을 자는 시간도, 여름의 장맛비를 우산으로 겨우 피하는 바쁜 걸음도, 가을의 낙엽을 곱게 모아 책갈피로 만드는 일도,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며 마시는 따뜻한 한 잔의 코코아마저도. 꽃은 피기가 무섭게 떨어져 나가고, 장마철은 여름이 다 지나 가을이 올 무렵에 들이닥쳐 낙엽은 온통 비에 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올 겨울에도 눈은 아마 한꺼번에 모아 내려 설렘 대신 어려움과 근심으로 쌓일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잊게 되었다. 옷장을 정리할 시간을 잃었고 그래서 멈춰 서서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곱게 개어 떠나보낼 때를 놓쳤다. 한 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면서 느끼는 마음의 파동을 잊었고, 지나간 아름다운 때를 기억하고 지나간 좋은 사람들을 추억하는 삶의 울림을 놓치고 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뀌는 속도에 발맞춰 갑자기 그리고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봄에 충분히 설레지 못하고 쓸쓸함으로 가을을 채우지 못한다. 뜨거운 숨으로 지새울 여름밤을 놓쳤고 무겁게 깔린 겨울의 어둠 뒤에 누워 쉴 자리를 잃었다.


  계절을 잃어 우리가 잊게 된 것인지, 우리가 잊어 계절을 잃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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