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hyeonju Oct 02. 2016

미디움 웰-던의 스테이크

적당한, 보통의, 평범한 그러나 어려운

  "거 참, 한 번 만나보래도?"
선배는 막무가내였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니까, 뭘 자꾸 거절하고 그래- 너 그러다 진짜 훅 간다?"
갈수록 가관이지 싶었다. 걱정인지, 조언을 빙자한 오지랖인지 모를 억지를 썼다. 아니, 여자는 외모, 나이가 전부야. 남자는 능력이 최고지. 계속되는 나의 거절에 결국엔 "정말 사람 볼 줄 모르는구나" 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아닌 밤 중에 되려 날벼락을 맞은 나로써는 꼴에 선배랍시고 네네-그러게요,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 수 밖에.

   한 다리 건너서 이름하고 얼굴만 겨우 아는 선후배사이. 백번 양보해서 좋은 일 한 번 해주려는 생각이었다 해도, 거절하는 마당에 계속 강요하는 심보가 도대체 무얼까싶긴 했다. 나중에 다른 친한 선배로부터 그가 마흔 줄의 직장 선임의 혼사에 앞장서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아,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사람을 만날 때 탄탄한 직장, 자기 명의의 집과 차를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한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그보다는 취향, 가치관 같은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됐든 자기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어느 한 쪽이 더 좋다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아가 자신의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소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겉만 살짝 구워 육즙을 느끼며 먹는 사람도 있고 바싹 구워서 먹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후자더러 고기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반대로 후자는 핏물 뚝뚝 떨어지는 고기가 야만스럽다 한다. 그렇다면 소고기를 잘 굽는, 고기 제법 먹어 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대다수의 한국인은 "미디움 웰던"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완전히 익히지 않아 퍽퍽하지 않으면서 육즙이 살아있는 상태다. 사실 맛도 맛이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어로 주문하는 것이 야만적이지 않고 웰던으로 주문한다고 해서 촌스러운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가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스테이크 굽기에 간섭하기 때문이다. 고로 먹고 싶은 대로 구워 먹는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사람이겠다.




  많은 연봉과 국산 중형차, 자기 앞으로 되어 있는 집을 가진 40대 남자는 분명 누구에게는 완벽한 결혼 상대일 것이다. "사람 볼 줄 모른다"는 선배의 말은, 레어를 고집하는 사람으로부터 "고기 먹을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듣는 것과 비슷했다. 거기다 대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떠들어본들 무슨 소용이랴. 내 스테이크를 구워 보겠다고 이제 막 팬을 달구는 참이건만.


  사실 그러고보면 그동안의 내 인생에서 많은 스테이크를 태워 먹었다. 급한 마음에 설익히기도 하고, 너무 마음을 놓고 있다가 새카맣게 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내가 이 고깃덩이를 얼마나 익히고 싶은지조차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몇 번을 귀한 재료를 못쓰게 버리고 나서야 조금씩 나만의 스테이크 레시피를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과 만나 보통의 연애를 하는 것은 집에서 미디움-웰던으로 스테이크를 제대로 구워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중불로 천천히 굽다가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알맞게 익어 씹을수록 육즙이 배어나오도록, 불 앞에서 정성을 들여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다른 누가 옆에서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참견을 하든간에 내 팬위의 이 스테이크는, 내가 잘 구워내면 그만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