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3년 째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덤덤했다. 흡사 지금이 몇 시인지, 바깥 날씨가 어떤지 묻는 것 같은 일상적인 말투였다. 오히려 할 말을 잃고 당황한 것은 내 쪽이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찬찬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자위는 푹 꺼져 있었고 낯빛은 회색에 가까웠다. 입술 양 끝은 부르터져 있었고, 턱 아래쪽은 마치 작은 혹이 달려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오랜 친구가 심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고-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내 주위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자신이 식이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내게 막 털어놓은 것이다.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했다. 이겨낼 수 있을거라 말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짊어 진 고통의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당장 병원부터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는 것은 상처를 주는 말이 될 것 같았다. 두려웠다.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나는 아끼는 사람의 마음이 곯을 때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한 무심하기 짝이 없는 친구이면서 정작 힘이 되어주지도 못하는 소심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봐.
누구는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을 감기에 비유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누구나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더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물 한모금 조차 편히 넘길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의 마음은, 결코, 같지 않았다. 눈곱만큼도 비슷하지 않았다.
병원을 가보기는 했다고 했다. 상담을 했고, 약을 먹었지만 이내 반복되는 증상에 자괴감이 커졌다고 했다. 차라리 그전까지는 남 탓이라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점점 낫지 않는 것은 자기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어쩌다, 아니, 어쩌다가. 결국 나는 무표정한 그녀를 앞에 두고 엉엉 울어버렸다.
아무리 건강하고 튼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에 상처가 나고 또 흉터가 생기는 일을 전부 막기는 어려울테다. 험한 길을 걸어갈 때 알게 모르게 작은 생채기가 나듯, 아무리 상처받지 않으려고 해도 어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그러니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한두번이야 툭툭 털고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지만, 일어나 몇 걸음 가다가 또 넘어지고 넘어진 것이다. 그래서 끝내는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쳐도, 움직일 수가 없어도, 그 마음을 끌고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녀의 마음은, 일어서지 않으면, 걷지 않으면 다치지 않을거라고 세상에 등을 돌려 버림으로써 살아남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내 오른쪽 발목에는 새끼손톱만한 흉터가 있다. 몇 년 전 사고로 인대가 끊어져 수술하고 난 뒤에 남은 흉터다. 어쩌다 가끔 그 흉터가 눈에 들어와 거슬리기도 하지만 걷는 데에는 또 살아가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마음에서 오는 아픔은, 흉터는- 그렇지못하다. 옷으로도 가릴 수 없고 잘 듣는 주사도, 없애는 수술도 없다.
그녀를 위로하는 말을 하는 대신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고 군데군데 까져 있었다. 꽉 잡았다. 내가 잡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 힘 줘 잡았다. 겁이 났다. 그녀가 식욕을 잃은 것처럼 살고자하는 마음까지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이미 꺼져버린 불처럼 다시 타오를 수 없을까봐.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괜찮아. 괜찮아지려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를 해버린 것은 아니냐고- 그녀는 되려 미안해했다. 애써 웃어보이려고 하는 그녀의, 내 오랜 친구의 얼굴 뒤로 작은 불씨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겠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손을 꽉- 잡고 있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우리 날마다 딱 개미 발자국 하나 만큼씩만, 괜찮아지자. 괜찮아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