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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Nov 12. 2016

잠깐, 쉬었다 갈래

삶에는 이따금 일시 정지가 필요하다  


  창문을 열고 맞이하는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아직도 어스름이 짙게 깔린 새벽녘에도 누군가는 벌써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을테지만- 겨울이 부쩍 앞으로 다가온 이 때의 아침은, 적막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이부자리를 개켜 놓고 대충 얼굴을 씻고 나와 컴퓨터를 켠다. 따뜻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며 책상 앞에 앉으면, 그제서야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제법 여유롭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었던 나조차도 회사를 다닐 적에는 하루 내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제 때 밥을 챙겨 먹은 적도 거의 없었고, 커피는 살기 위해 물처럼 마셔댔다. 종일 일과 사람들에 시달리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하루를 정리하기는 커녕 그 날 입었던 옷가지를 채 정리하지도 못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언제부턴가 '혼자'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아졌다. 혼자서 먹는 밥, 혼자서 먹는 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누구와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실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사서 적당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네 캔에 만원하는 수입 맥주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누구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때때로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너도 나도 함께 할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것도, 시간을 내는 것도, 결국은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내 일과 사람들에 치이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동네 호프집은 오늘도 조용하고, 24시 편의점의 차임벨만 간간히 딸랑거린다.






  더 잘 살아보자고 하는 일이 오히려 삶을 옭아매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이미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가버린지 오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가질 수 있는데다, 그나마 정년을 보장받는 거의 유일한 통로임은 분명하다. 학교에서는 분명 자아실현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배웠는데, 세상은 그새 숨통 터가며 살기에도 팍팍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나를 돌볼 여유조차도 가질 수 없는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세상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리 만무하다. 우리는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단 하루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면서 보내고나면 뭔가 죄책감이 밀려온다. 마치 삶에는 '남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바쁘지 않으면,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쳐지고 도태되는 것처럼. 



  길을 가다보면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휘적휘적 걸어가며 연기를 뿜어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얼굴로 훅 끼치는 연기가 당혹스러워 도대체 사람들이 저렇게 배려가 없어서야 생각하며 속이 부글거리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는, 그런 사람들이 안쓰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디 잠깐 멈춰 서서 담배 한 대 태울 시간도 모자라게 바쁜 사람인가 싶어-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슬쩍 옆으로 비켜 지나간다.  



  하다못해 몇 만원 하는 옷조차도 매일같이 입으면 곧 너덜거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날마다 혹사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조금의 쉼표도 없는 악보의 연주가 과연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을까. 잠깐 멈추어도 괜찮은 삶. 조금 쉬었다 천천히 가도, '게으름'을 피워도 적당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바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은 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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