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hyeonju Oct 27. 2016

있었던, 그러나 잊었던

세상 그 어떤 사랑도 당연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거운 전공 서적을 대신 들어준다거나, 길을 걸어갈 때 차도 쪽으로 걷는 다거나 하는 일은. 식당에 가면 통로 쪽에 앉았지만 택시를 탈 때는 항상 먼저 안쪽에 탔다. 정작 본인은 쓰지도 않는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녔고, 마시지도 않을 생수병을 한 통씩은 가방에 챙겨 다니곤 했다. 데이트를 한다고 한참을 걷고 나면 벤치에 앉아서 다리를 주물러 주었고, 계절마다 내게 어울리는 색의 립스틱을 골라주곤 했다.     



  나로 하여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던 것들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있을 수 있고 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늘 내게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만났고 수많은 끼니를 함께 먹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갔고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단 한번도 족발을 먹으러 간 적이 없었다.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잘 먹지도,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 중 하나였기에.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그 족발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커다란 족발 뼈로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너무 많이 사랑하는 연인들은 흔히 그런 실수를 한다. 상대방이 이미 해주었던 것들, 하고 있는 노력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사랑하다보니 저절로 하게 됐던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점점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지!" 하고 떠밀기 시작한다. 당연하지 않았던 사람의 특별한 사랑은, 그렇게 당연한 사람과 마땅한 사랑이 되어- 수 없는 다툼을 반복하게 만들고, 끝내 헤어지게 만든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들은 지극히 사소한 일들이었다. 당연히 바라도 되는 것들이었다. 그가 조금 더 자주 연락하기를 바랐고 밤 늦게 나가 놀지 않기를 바랐다. 사소한 다툼에는 먼저 사과해주기를 바랐고- 바쁘더라도 짬을 내 보러 와주기를 바랐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리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바람들이 쌓이고 쌓여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다. 사소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집착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그런데 가끔은, 너무 벅차."



  그는 떠났다. 그 자신이 나를 사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한 적 없었지만,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것은 내가 바라는 그의 모습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이 사랑하다보니, 어느새 그 사람 자체에게 마음을 쏟는 것보다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그 사람에게 끼워 맞추고 있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했던 일들은, 실은 무던히도 어렵고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가 있었던 자리가 공백으로 남고서야 그동안 내가 잊었던 것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랑이 당연하겠는가. 그러니 지금 당신에게 편한 자리를 내어주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당연한 사랑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사랑이 가져오는 당연함은 결코 마땅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고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