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엄마의 이야기를 적다
2019년 11월 26일은 네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다.
그리고 곧 다른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의 너에게 적는다.
[나는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그러니까 ‘엄마’-사실은 아직도 이 말이 내 스스로는 입에 착붙는 느낌은 아니지만-가 거친 십 대와 거만한 이십 대 사이의 어떤 지점에 서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엄마-너에게는 할머니인-를 엄마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깨닫자 엄마가 낯설게 느껴졌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나는 언젠가는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고 그것을 오래도록 소망으로만 품어왔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만 지켜볼 뿐 한 글자도 적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나의 엄마로 살기 이전의 엄마의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처음에는, 엄마가 내게 그런 이야기들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아는게 없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고, 엄마가 나를 낳았을 무렵의 나이가 되니 그때서야 깨달은거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는, 내가 궁금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러니 네가 엄마이기 이전에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서 어떤 이야기들을 쓰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야. 다만 어떤 마음으로 너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 했는지, 아빠와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열 달 동안 품고 낳았는지 언젠가는 네가 궁금해하리라는 생각으로 이 모든 낱말들을 남겨 놓기로 했어.
그게 일곱 살이 될 지, 열일곱, 아니 스물 일곱이 될 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언제라도, 언제까지나, 우리가 너를 매일같이 더 큰 마음으로 사랑해왔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거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야.
네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그 날은, 정말 머릿속을 커다란 느낌표가 꽉 채워버린 느낌이었다.
네가 누울 마음의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 두고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우리는 이제 갓 부부가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었지 부모가 될 준비는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이었어. 그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아. 아마 네 아빠 마음도 나와 같겠지.
대신에 우리는 아주 작은 점이던 네가 지금의 모습처럼 쑥쑥 자라는 동안,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 결혼 하기 전의 삶이 두 손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부부가 되면 한 손을 서로의 손을 잡는 데 쓰고, 부모가 되면 나머지 한 손도 자식의 손을 잡는데 쓰는 거란 생각이 든단다. 엄마는 아빠의 손을 맨 처음 잡았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엄마가 살면서 아주 잘 한 일 중에 하나가 네 아빠를 만난 일이고, 또 사랑에 빠진 거야.
그리고 이제 네 손을 잡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