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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우 Dec 24. 2024

부안에서 생긴 일

수행

채석강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겹겹이 책을 쌓아놓은 듯 한 채석강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와..”

“진짜 특이해 “

마법책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마법사의 책상 위 같던 채석강. 푸른 하늘, 희뿌연 회색바다는 보색 대비처럼 선명해 보였다.

‘지도 선생님은  왜 내게 이곳을 다녀오라고 했을까?’ 명상공부의 진척이 없어 공부를 그만둘까 고민하는 내게 내려진 ‘부안 채석강과 내소사를 다녀오세요!’라는 뭘 보라는지, 뭘 하라는지 특별한 지시도 없이 이 말만 하셨다.

“가보면 알게 됩니다”

단순하게 ‘채석강이 책을 닮았으니 책 많이 읽으라는 소리인가 보다. 쳇! 그럼 그래라 하시지..

뭘 부안까지 왔다 가라 하시지? ‘

내일 내소사를 가기 위해 숙소를 찾아 격포터미널로 향했다.

회사 휴가를 1박 2일 받아 온 길이고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길은 차간 간격의 틈이 길었다. 격포 터미널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정류장이었다. 상록해수욕장  황토찜질방을 가려 군내버스를 탈까? 택시를 불러야 하나? 망설일 때 좌석버스 기사인듯한 분이 물었다.

“어딜 가려고 시간표를 보고 있어요?”

“아, 네.. 상록 해수욕장옆 황토찜질방이요! “

”어 거긴 그냥 걸어가도 돼요~ 한 15분? 20분? “

”아이고 고맙습니다!! “

기사분이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는 똑바로 직진하라는 말을 믿고 이미 석양이 지기 시작한 길을 접어들었다. 시골길이라 빨리 어두워졌고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았다. 2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는 말만 믿고 어둠이 커튼처럼 내려진 길 속으로 들어갔다. 멀리 선 부엉이 우는 소리도 들렸고, 늑대 울음 비슷한 개 울음소리도  들렸다. 앞이 캄캄해졌고 맞게 가고 있는지 궁금해져 가끔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슬슬 홀로 걷는 길이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곁을 지나치는 차에 강제로 태워져 숲으로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멀리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고, 들개인지 알 수 없는 것들에게 장딴지를 물려 뜯기는 상상까지 가니 극에 달한 공포에 턱이 덜덜 떨리고 이빨이 부딪치기까지 했다. 눈물이 솟았다. 이미 40분 넘게 걸어온 길 어디에도 민가의 흔적이 없었고 가끔 쏜살처럼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스치듯 달리는 차가 두어 대 지나갔다. 무서움에 질려 황토찜질방에 전화를 했다.

”어떤 분이 격포터미널에서 계속 직진하라고 했는데 거기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을까요? “

”아니! 누가 길을 그렇게 알려줬대?? 여긴 격포에서 택시 타도 20분 넘게 걸려요. 그리고 그 길로 계속 걸으면 자동차 전용도로라 사람이 걸으면 안돼요. 걸어온 만큼 되돌아 농로로 와야 해요. “ 그나저나 여자분 혼자 걷기가 거시기할 텐데 “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무서워! 어쩌지.. ‘무서워서 전화를 걸었더니 간신히 통과한 어두운 길로 다시 되돌아가 왼쪽 농로 쪽으로 다시 걸어가야 한다니…

되돌아가는 길은 더욱 무서웠고 내 앞으로 스치던 차들이 이젠 내 뒤로 스치듯 달려왔다.

근데 아까부터 차들이 수상하다. 천천히 오는 것 같았는데 자꾸 내 뒤로 와선 속도를 엄청 빠르게 하며 스치는 게 느껴졌다. 가로등도 없는 길에 하이빔까지 비추며 천천히 다가와선 내 뒤에선 전속력으로 스치며 달려갔다.

왜지??? 내 공포보다 무서운 자동차들의 질주.

도로 갈라지는 틈 사이 세워진 오목거울을 보고 자동차 질주의 연유를 알게 됐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 속에서 검은 실루엣만 있는 내가 검색을 하려 얼굴로 핸드폰을 들이미니 영락없이 귀신 그 자체의 섬뜩한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각 각자의 공포.

갑자기 그게 무슨 깨달음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난 니들에게 당할 몹쓸 짓을 상상하느라 덜덜 떨고 너흰 내가 귀신이라 부들부들 떨었던 거?‘ 공포라는 게 그런 거구나…심약한 사람들의 헛된 상상 같은 거…

그걸 알게 된 순간 무섭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 속이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어둠 저 너머 밝으면 보일 낮길이 상상되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황토 찜질방.

“아이고 거시기한 길을 여자분이 잘도 걸어오셨네요~ 대단하시다!!!” 사장님은 연신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셨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 잠이 일찍 들었다. 다음날 개운하게 씻고 내소사를 가려고 격포로 되돌아오는 길.. 어제 그 해프닝이 있었던 길에는 노란 수선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고 부안의 깨끗한 하늘이 맑아 보였다.

’ 여기쯤인가?‘

공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어둠 속의 그곳을 되돌아가봤다. 맙소사!!!!

그곳은 무연고자들을 모아 묻어놓은 공동묘지였다. 차들의 질주가 이유가 있었네! “

여자 혼자 거시기 한 길을 잘 걸어왔다는 황토찜사장님 칭찬의 진짜 의미를..

미리 알았다면 어제의 그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깨달음 뒤의

더 큰 깨달음..

몰라서 걸을 수 있었던 ‘길’에 대한 기억..

이것이 내가 ‘부안’을 두고두고 사랑하게 된 기억이다.

Ep2. 살아 돌아온 길

치과선생님의 소식을 들었다. 여름 물놀이를 갔다가 그만 초등6학년 첫아이가 거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갔고 얼마 후 다리밑에 걸린 아이의 빨간 운동화 한 짝만 발견 됐단다. 마음공부 오래 하신 치과선생님은 자신보다 먼저 공부를 끝내고 하늘로 갔다며 눈물보다 더 슬픈 희미한 미소로 조문객에게 인사를 전했단다.

그런 치과 선생님께 지도선생님은 “내소사에 다녀오세요”라고 말해주셨고 그 말씀을 따라 내소사에 다녀오셨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내소사의 내 자가 한문으로  올 來인 거?

“그럼 소자는 요?”

“소생할 소, 되살아날 蘇! 해요”

“우와 멋진 절이름이네요!!

내소사를 다녀오신 후 근황을 전하시며 몇 마디를 나눴었다.

나 역시 내소사에 도착했다.

 楞伽山 來蘇寺라 쓰인 표지판을 손으로 더듬거려본다.

‘살아 돌아온다고?‘

능가산의 기운이,

내소사 당산나무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소사 자체의 소생시키는 기운으로..

무엇이 살아 돌아올까? 그게 궁금한 채로 내소사 전나무숲길을 걷고 내소사를 한참 거닐다 서울로 돌아왔다. ’ 무엇이 살아 돌아올까?‘

한 달 후 들려온 치과선생님의 임신소식..

아~그 아이가 돌아왔구나!…

가슴이 뭉클하고 웅장해졌다. 엄마보다 더 훌륭하게 마음공부를 끝내고 하늘로 간 아이가 온 우주를 돌아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는.

내소사 길은 살아 돌아오는 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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