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이야기
생업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고독처럼 가난이 옆에 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제는 초월할 때도 되었을 텐데,
아직 물질계에서의 공부가 끝나지 않아
위태롭고 불안한 이원념(二元念)이 올라옵니다.
그럴 땐 묻습니다.
이 요동치는 기운들이 나에게
무엇을 공부시키려는 걸까?
답은, ‘변화’입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늘 요 모양 이 꼴이겠지요.
그러니 다르게 바라보고, 다른 선택을 해보라는 뜻입니다.
참지 않고 들썩였다면,
이번엔 참아보라는 말입니다.
도전하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었다면,
감히 용기 내어해 보라는 말이지요.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삶 속에서의 공부 실천은
곧 ‘기운’을 바꾸는 일이라고요.
처지면 올리고,
과하면 줄이고,
높으면 낮추고—
술술, 기운을 타고 가는 것.
기운은 단지 우울이나 불안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보라’는 삶의 신호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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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뭐든 어려운 공부는 잘 안 되던 나였는데,
타로는 이상하게 재미있었습니다.
두 달 전, 학당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스승님께선 제게 타로 공부는 관두라 하셨습니다.
2년 동안 참 열심히 했던 공부입니다.
시간도 돈도 제법 들였고,
제2의 직업으로 가려 준비 중이었기에 낙담이 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간 사 모은 카드들과 교재들,
자격증들을 바라보다—
아, 너무 큰 공간이 이미 내 안에 차지해 버렸구나.
한 달쯤 고민하다,
다시 스승님께 여쭸습니다.
스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원 높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한낱 앞날을 맞추는 점괘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고.
하지만 내담자의 기운을 바꾸는 용도라면,
타로를 해도 좋다—허락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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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가 오자 존재감 없이 숨죽이며 버텨왔던 제 일자리,
이제는 감원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야간 알바를 할까? 투잡을 띄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지도 교수님께서 야간 타로 알바를 제안하셨고
퇴근 후 8시부터 자정까지 일하기로 했습니다.
2시간의 기다림 끝, 첫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어린 여자 대학생.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는데,
요즘 그 남자가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산다며
헷갈린다고 했습니다.
“그 오빠 속마음이 뭘까요?”
타로의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그대로 전했다간 큰 상처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 뭘까요?
사랑은 아름다운 감정이에요.
짝사랑도 사랑이잖아요?
그렇다면 그 찬란하고 두근거리는 감정은
‘가꾸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해서,
내 것이 아니라 해서
냉정해지고 망가뜨리고 싶어 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 오빠는 군대도 다녀왔고,
복학해서 학점 따고, 취직 준비도 해야 할 거예요.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 보면
연애라는 감정을 담을 여유조차 없을 수도 있어요.
마음은 있었지만
그걸 끌고 갈 힘이 없기에
정중히 거절한 걸 수도 있겠죠.
당신이 태양처럼 밝고 뜨겁다고 해도
모든 이가 그 햇살을 반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에겐 눈이 부셔 피하고 싶은
‘직사광선’ 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틈 사이로 은은히 비추는 햇살처럼,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의 지혜 아닐까요?
소녀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이건 꼭 적어야겠어요. 너무 아름다운 말이에요.
오빠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제가 참 철없이 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풀어놓았습니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이었지요.
저도 제 비밀 하나를 꺼내놓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왠지 안심돼요.”
⸻
그녀와 함께 다시 카드를 펼쳤습니다.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이게 바로 에너지예요.
이게 기운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삶의 기운은 바뀝니다.”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90도로 인사하고 돌아섰습니다.
⸻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내가 말한 대로 살고 있는가?
고용 불안이라는 이원념을
즉시 바꾸려 애썼던가?
삶의 변화에 말랑말랑하게
대응할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가?
삶은 늘 나에게 묻습니다.
너, 정말 네가 가르친 대로,
말한 대로 살고 있느냐고.
‘불경기니까 더 잘해보자!’는
팀장의 말을 너무 고깝게 듣고
괜히 혼자 삐쳐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또 한 번,
작은 반성을 품고 돌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