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선우 Oct 03. 2024

행동하는 1인 운동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또 시작이군!' 남편은 트레이드마크인 인디고블루 조끼와 '투쟁과 단결'이라고 쓰인 빨간 띠를 두른 채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다.

20년 전,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서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제수씨, 신랑 좀 말려봐요. 어렵게 들어온 직장인데 자꾸 노조 운동에 참여하려고 해요. 윗선에 찍히면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불이익이 많으니 말려봐요." ‘아이참, 이 사람이 또 그러네!' 속이 상했다. 신혼 초 강사로 잘 다니던 학원에서도 강사 권익 보호를 위해 노조를 모으다 요주의자 명단에 올라 트집만 잡히면 해고하려는 사측으로부터 흠집 하나 안 잡히려 샛별을  보고 다녔던 남편이, 어렵게  들어간 버스 운전직에서도 노조 운동에 참여하려 한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대충 좀 살자. 유별나게 왜 그래? 당신이 그런다고 세상 안 바뀐다! 제발 평범하게 좀 살자!” 하지만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할게! 가족들한테 피해 안 가게! “이렇게 말하고선 내 시선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또 있었다. 선거 때면 나를 선거투표소에 강제로 내려주며 "1번 찍어!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1번 찍어라! 꼭!" 그럼 나는 당연히 2번을 찍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1번 찍었다며 거짓말을 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벽 곳곳마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태극기 옆에 붙어있던 환경 속에서 자랐다. 정치 이념 이런 말도 모르던 시절부터,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2번이어야 한다는 환경에서 자란 전형적인 TK인 내게 남편은 꾸준히 1번을 찍어달라고 당부했다. 민심이 흉흉하다는 뉴스가 나올 때도 여당을 비난하며 핏대를 올리는 남편을 보며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변호인'을 남편과 함께 보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고시에 합격하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어두운 영화관 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이 사람은 삶이 진심이구나!'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팬인 남편이 스크린을 통해 들려주는 다른 버전의 자기 이야기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 "민주노조 활동을 왜 하는 거야?"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계란밖에 더 깨지겠어? 근데 세상은 말이야. 계란을 계속 던지는 자가 있어야 바뀌는 거야. 내가 살아갈 세상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 불합리한 세상, 억울한 세상에 살아가게 할 수 없어!" 순간 마누라로서 미안해졌다. 의로운 길을 가는 변호사에겐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매일 혼자 농성장에 가고, 투쟁을 선언하는 피켓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의 경멸에 찬 눈빛 속에서 응원군 하나 없이 외로웠을 것이다. 이념이나 사상, 정치적 색깔이 빨갛고 파랗고를 떠나 '그런 거 왜 하냐고, 제발 평범하게 좀 살자'며 악다구니를 쓰는 마누라가 아닌, '당신 덕분에 세상의 균형이 이뤄지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기꺼이 해주는 당신이 있어 자랑스럽다'라는 그 한마디를 못 해줬을까? 빨간 내가, TK인 내가, 제발 남들처럼 살자고 회유할 게 아니라 한 번쯤은 그의 처지에서 이야기를 들어봐 줘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옳고 그름을 떠나 소신 있는 이를 배우자로 둔 내 역할은 그의 행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와 균형을 위한 첫걸음이지 않았을까?


- 계란으로 바위 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영화(변호인)의 명대사다.

오늘도 교대 시간에 쫓겨 운전석에서 앉은 채로 소변을 보는 운전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단체 농성을 나간다고 남편이 문을 나선다. 결의에 찬 뒷모습을 보며 ’ 행동하는 1인 운동가님! 당신의 행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 당신의 든든한 지원자 마누라 올림' 남편에게 보낼 응원의 메시지를 준비한다. 이미 바뀐 세상을 맞아 오늘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계란이길 바라는 맘을 담아 전화기 자판을 꾹꾹 눌러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