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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우 Oct 09. 2024

나의 어린 시절 ep.1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8톤 트럭 짐칸에서 옆집 구둣방 아저씨는 기어이 우리 집 양문 냉장고를 끌어내렸다. 야밤에 야단법석 해프닝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난, 평상시 가족처럼 친했다고 생각했던 아저씨가 얼굴을 붉히며 엄마와 아빠에게 삿대질과 욕설이라고 짐작되는 입 모양을 트럭 운전석 뒷자리 창문에서 지켜봤다. 괜히 눈물이 났다. 양문형 냉장고는 나의 자랑이자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늘 그 냉장고 안에는 제철 과일이 넘쳐, 귤이 나는 철이면 손톱 끝이 봉숭아 물들인 것처럼 노랗게 물들 만큼 귤을 까먹고, 딸기 철이면 깨소금처럼 딸기씨를 이빨 틈에 끼고 살았다. 큰 수박을 갈라 후르츠칵테일과 사이다를 넣고 ’ 삼성당‘한 숟갈 넣은 수박화채가 나오던 냉장고. 컵을 누르면 지금의 정수기처럼 시원한 보리차가 촤르륵 흘러나와 동네 친구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나의 냉장고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부모님께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아주 늦은 밤 떠나는 이사 소식을 듣고 온 구둣방 아저씨 때문에 난 화물 조수석 뒷칸에서 한참을 울었다. ‘잉~ 내 냉장고 잉~ ‘ 눈물이 펑펑 흘렀다.

이사를 앞둔 한 달 전, 엄마는 감기로 학교를 결석한 나를 데리고 대구에서 한 시간 거리인 곳을 갔다. 허허벌판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연탄을 때는 아궁이와 이제 갓 시멘트가 마르기 시작한 부뚜막과 작은 방 한 칸을 둘러보던 엄마는 어린 내가 알아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출입문 문지방에 걸터앉아 한숨을 길게 쉬셨다.

“야~ 여서 우리 살 건데, 어떤노?”

“우리 집 있는데, 여 와가 와 사노? 안 한다!

“문디.. 뭐라카노..”

엄마는 철부지 딸내미 대답에 더 깊은 한숨을 쉬셨다. 여기서 살게 될 거라는 곳의 이름은 ‘성서’라고 했다.

‘성서?‘

교회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난, 성경책을 높여 부르던 ’ 성서‘라는 지명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계속 입으로’ 성서‘, ’ 성서’를 되뇌며 엄마 앞을 깡충거리며 ㅂ뛰어다녔다. 엄마는 물기 촉촉한 눈으로 깊은 한숨을 더 깊게 쉬며 철딱서니 밥 말아먹은 딸내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냉장고가 내려진 8톤 트럭이 출발한다. 트럭 안에는 묘한 냄새들로 토할 거처럼 어지러웠다.운전사 아저씨 옆엔 엄마와 아빠가 앉으셨고, 조수석엔 조수 아저씨와 오빠, 장거리 배달 때 이용하는 듯한 조수석 뒤편, 간이 침실 같은 공간에 올망졸망 우리 삼 남매가 뒤엉켜 타고 있었다. 휘발유 냄새와 퀴퀴한 남자들의 체취, 오랜 외지 생활의 냄새들이 엉켜 속이 울렁울렁했다. ‘잠이라도 자면 괜찮으려나?’ 일단 자보기로 했다.

차는 이미 2시간이나 지났지만 도착할 기색이 없다. 우리 쪽으로 던져진 엄마의 가방 틈에는 만 원권 뭉치 두 덩어리를 봤다. 이게 뭔가. 듬직하다는 느낌보다 달랑 이것만 남은 거 같은 절망이 느껴졌다. 운전 시간이 길어지는 내내 평소 발랄하고 고음의 시끌벅적 대화는 온데간데없고, 아주아주 무거운 침묵이 차 안을 누르고 있었다.

‘아 숨 막혀.’

갑자기 추운 바람이 훅~ 하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분주히 짐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조수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렸다. 성서가 아니었다. 몇 년 전 막내 남동생과 몇 개월 살다 갔던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작은 아버지 가구공장 마당이었다. 가구공장 뒷마당은 작업공간으로 쓰시는 곳이라, 꽤 큰 공터를 갖고 계셨다. 거기에 우리 집 살림살이가 차곡차곡 쌓였고 어린 동생과 난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뒤편으론 황당함에 놀라서 고음으로 따지듯 큰소리를 내시는 작은 어머니 목소리가 땍땍거리며 들렸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는 아버지 곁에 결의 찬 엄마가 작은어머니와 언성을 높이고 계셨다. 난 남동생과 작은아버지 공터에 지천으로 핀 토끼풀을 보며 신이 나서 웃었다. 남동생과 앉아 토끼풀을 꼬아 반지와 팔찌를 만들었다. 남동생은 신랑을 시키고 난 신부가 되어 토끼풀 왕관을 쓰고 부케를 들고, 결혼식 소꿉놀이를 했다. “신부, 신랑 입장!” 입으로 결혼 행진곡을 불렀다. 딴~딴~따~딴~ “반지 교환!” 남동생이 내게 토끼풀 반지를 켜주고 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남동생은 주례사를 읊었다.

“둘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동시에 우린 “네”를 외치며 깔깔 웃었다. 행복한 결혼식 흉내를 내는 우리 뒤로 멀리 어른들의 언성은 높아만 갔다. 어린 우리 둘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싸움 소리가 뒤섞인 맑은 그날의 하늘이 희한하게 기억에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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