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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이사 Feb 29. 2020

그의 시를 미워했던 이유

기형도 문학관에 다녀와 '입 속의 검은 잎'을 읽다



기형도(奇亨度, 1960.3.13 - 1989. 3. 7)


기형도의 시집은 6.4점짜리였다. 작년 그의 30주기를 맞아 재단장해 나온 시집을 A 인터넷 서점에 검색해봤더니, 평점이 그랬다. 누가 기형도의 시집에 평점 테러를 했을까? 평가를 남긴 3명 중 2명은 4점이나 5점을 줬는데, 유독 한 사람이 1점을 줘 놓았더랬다. 그의 시집이 과도한 수식, 현란한 문구, 허상을 심어 혹세무민 하는 글이란다. '테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평가해 놓은 사람의 마음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의한다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다.



기형도는 1960년 3월 연평도에서 태어나 경기도 시흥(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자랐다. 아프신 아버지,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가족들, 비극적인 사건으로 누이를 잃게 된 경험.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검은 심연은 곧 그가 헤쳐 걸어야 했던 삶이었다.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 '오래된 書籍(1985)'


이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포스트 윤동주를 꿈꾸며 '연세문학회'에서 합평하고 토론하는 게 대학시절의 일상이었다고 한다. 실제 '식목제'란 시로 윤동주 문학상에 당선되기도 한다.


(1) 기형도가 남긴 엽서와 그림들  (2) 윤동주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기형도  (3) 기형도의 집. 그의 아버지가 직접 지은 것이다.


1981년 안양에 위치한 부대에 방위병으로 입대했을 때도 시 사랑은 여전했다. 근무지 주변 '수리' 동인에 참석해 초기 작품 여러 개를 쓴다. '입 속의 검은 잎' 수록 시 중에선 '사강리'와 '폐광촌'이 이때 쓰인 것들이다. 졸업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가 되고서도 꾸준히 글을 써 '안개'란 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시집 출간을 앞둔 1989년 3월의 어느 날 뇌졸중으로 숨진 채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발견된다. '입 속의 검은 잎'이 그의 첫 시집인 동시에 유고작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자넨 언제부터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나?”
“아주 어릴 적,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부터요.”

“그럼 왜 대학에선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지?”
“제 뜻이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지?”
“부모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시인이 된 것은 부모님의 뜻이 아니었을 텐데.”
“결국 이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시 쓰는 일이 즐거운가?”
“아니, 괴로워요. 하지만 그 괴로움 뒤쪽에는 아주 커다란 기쁨이 있어요. 그 기쁨을 찾으려 시를 써요.”

- 중앙일보 재직 당시 상사였던 정규웅 전 논설위원의 회고 中




학창 시절의 난, 글이 어두운 건 별로였다. 특히 한국 근현대 문학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곤욕스러울 수가 없었다. 독 짓는 늙은이, 왜 먹지를 못하냐는 운수 좋은 날, 교과서에 나오는 그 시대 문학들은 어디 하나 성한 사람 없고, 당최 벗어날 길도 보이지 않는 우울함의 난장이었다. 솔직히 기형도의 '엄마 생각'을 읽을 때도 그저 마음이 아프기만 했었다. 그땐 이 우울한 문학들을 더 읽어내다간 나까지 검붉은 색으로 젖어들까 봐 무서웠더랬다. 지금 사는 삶도 그리 행복한 건 아닌데, 우울함에 잘못 발 디뎠다가 염세주의자라도 되면 내 앞날은 누가 책임지랴 싶었다. 한창 남들을 웃겨 주다가도 집에 와 혼자가 될 때면 우울함에 다가가려는 내 본성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그걸 인정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나는 너무 사실적이고 어두운 문학은 멀리하기로, 그냥 미워하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
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 '안개(1985)' 中


기형도 문학관의 '안개' 영상 작품.


마음이, 생각이 아직 어렸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좋은 것들로만 현실을 채우도록 노력해야 좋아질 수 있다는 애씀, 행복을 향한 강박 말이다. 점점 더 세상을 알아가며 성장할수록 아무리 노력해도 우울한 현실의 잔상들을 떨쳐낼 도리가 없었다. 뉴스엔 계속해서 누군가가 억압 당하고, 죽어가는 소식들이 들렸다. 부조리한 구조.

그리고 나 또한 정도는 다를지언정 구조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실패도 해 보고, 부모님의 실직을 경험하며 맏딸로서 부담도 가져보고, 취직이 잘 안 돼 속상해보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이 모든 상황들이 나의 꿈을 제약하는 부담으로 성큼 다가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구조를, 상황을, 세상을 뚫어낼 수 있는 용기를 진 사람인가.


번민하고, 때론 공허하며, 속으로 열띠게 갈등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다 부정하다간 삶이 여기저기 구멍 난 모습으로 언제라도 바람에 넘어질 판이었다. 그랬다. 어른의 삶은 우울함을 품으며 단단해지는 삶이었다. 어린 어른의 시기에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우울함이 미웠다. 없으면 더 좋을걸.


그러다 더 이상 우울함을 미워하지 않게 된 건, 헌책방을 기웃거리다 기형도의 시들을 다시 읽게 된 후였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그의 시에서 나처럼 힘겨워하는 한 사람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기형도 시에서 느껴지는 우울은 나를 잠식해가는 어둠이 아니었다. 가만한 위로로, 작지만 분명한 희망같이 별 몇 개 박힌 고요한 밤하늘로 내게 다가왔다. 외로운 마음, 도시의 고단한 이들, 공허함, 질투와 열등감. 펜 끝에서부터 총천연색으로 우울을 그려내는 그를 보며 우울의 미학을 체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우울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사람다운 일인지, 또 그걸 솔직한 글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 '진눈깨비(1988)' 中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1989)'


기형도의 시집에 1점을 주고 간 그치는 분명 이 우울의 미학과 위로를 아직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다.  아직 우울을 무서워하며 미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평가와 댓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하기보단 그가 더 삶을 모험하기를 바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의 미학을 알게 된 후, 나는 기형도를 여러 번 질투하기도 했다. 어찌하면 나는 감히 무서워서 직면하지도 못했던 이 오묘한 감정들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누릴 수 있었던 것인가 하며 말이다. 1점 그이도 언젠가 글로 살아있는 기형도와 마주 앉아 삶의 난장을 논할 수 있길, 질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메모(1988.11)



* 기형도 문학관 정보

-관람시간: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 - 오후 6시 (11월부터 2월까진 5시에 마친다).

-관람료: 무료

-주소: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 기형도문학관

-연락처: 02) 2621-8860

* 기형도 작품 연보 확인해보기: http://www.kihyungdo.co.kr/sub02/sub01_3.php

*20주기를 기념해 비평, 회고 등을 담은 책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문학과 지성사, 2009)' 중 성석제 소설가가 쓴 글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을 추천합니다.

*'연세문학회' 친우였던 김태연 소설가 인터뷰: https://weekly.donga.com/3/all/11/1262235/1

*정규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회고: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8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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