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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이사 Mar 31. 2020

이상형이 됐으나 이상향이 없었던

영화 '댄서(2016)' 리뷰




공연 20분 전. 한 발레리노가 백스테이지에서 약을 털어 넣고 있다. 하나는 미군이 섭취하는 약이라는데, 활력을 북돋아주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뉴로펜’이라는데, 검색해보니 진통제다. 발레 하는 이들의 직업병인 관절염을 해결하기 위한 처방일 테다.

하나같이 병을 낫게 하진 않으나, 순간의 고통을 잊고 에너지로 가득 찬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이다. 이상으로 향하고자 현실에서 감행하는 최선의, 너무나도 당연해진 현실의 노력들. 약간 들뜬 모습으로 자기가 먹는 약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이는 바로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 영국 로열 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천재 발레리노다.


전 춤출 때 어떻게 출지 생각하지 않아요.
It’s who I am. 춤이 곧 저예요.




영화 ‘댄서(Dancer, 2016)’는 천재 발레리노가 성장하는 과정을 차근히 톺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상당 부분이 폴루닌의 어머니인 갈리나와 폴루닌 본인이 어렸을 적부터 찍어두었던 일상, 연습 영상들을 인용한 장면들로 채워진다. 폴루닌은 모두가 가난한 게 평범한 일상이었던 우크라이나 남부의 헤르손에서 나고 자랐다. 천재에겐 탄생설화 비슷한 것도 있다. 조산사가 아이의 관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리를 벌려 봤는데, 너무 많이 벌어지는 탓에 놀라고 말았단 거다. 갈리나는 아이의 타고난 유연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선 아들을 발레의 길로 이끌었다.


전 세르게이가 뭔가를 이루길 바랐어요.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요.
-어머니인 갈리나의 인터뷰 中



가족 모두가 어린 폴루닌 한 사람에게 온전한 자기 삶들을 다 바쳤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곁에서 영상으로 그의 움직임을 체크해줬고, 아버지는 포르투갈로 떠나 정원사 일을 했으며, 심지어 할머니까지 그리스에서 요양 보호사로 일해 번 돈을 다 폴루닌의 발레 교육에 쏟아부었다. 축복이자 업보인 삶의 시작이었다.

폴루닌은 가족들이 자신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던 그 순간을 '좋은 시절이 다 끝나던' 때로 회상한다. 이런 아이들은 더 이상 모험할 수 없다. 학교에 앉아있는 걸 싫어하던 아이, 우스꽝스러운 팝 댄스부터 발레까지 서슴없이 넘나다니며 춤을 추던 아이 세르게이는 압박감과 절박함을 지고 노력해야 했다. 거리의 평범한 또래들과는 다른, 흩어진 가족의 미래를 짊어진 한 팀의 선발주자가 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세르게이 폴루닌



노력하는 천재는 그렇게 완벽한 이상형이 됐다.

폴루닌은 키예프의 학교를 떠나 영국 로열 발레학교에 합격했고, 거기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무려 3년을 월반했다. 졸업 후 발레단에서의 적응도 탄탄 일로를 걸었다. 솔리스트가 된 지 1년 만이란 가장 빠른 속도로,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무용사가 된 것이다. 파격적인 조치였으나, 사람들은 마땅한 조치라 여기며 어린 발레리노를 환영했다. 공연 하나를 보려면 2년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그의 티켓파워는 대단했다. 높은 체공시간(공중에 머물러 있는 시간. 얼마나 오래 점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뜻하는 말), 흔들림 없는 자세, 근사한 외모와 표현력까지. 그는 시대가 갈구하던 발레리노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https://youtu.be/xkw9KO_kA4g

점프를 이렇게 가볍고 쉽게 하기 있기 없기..? 지금 한 번 일어나 뛰어보자.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를 체감할 수 있을 거다!


전 세르게이를 ‘우아한 야수’라고 불렀죠.
스텝 밟는 방식이 사자 같았거든요.
근데 일단 도약하고 공중에 뜨면 조절을 해요.
깨끗하고 순수하죠. 아주 희귀한 조합이죠.
-발렌티노 주케티(로열 발레단 솔리스트, 동기)



그러나 성장한 건 그의 발레 실력만이 아니었다.

억압된 이드를 스텝으로 분출해내고, 공중에선 다시 책임으로 점철된 초자아를 기꺼이 껴안던 순간들마다 고뇌하고 갈등하는 그의 자아도 함께 배태되고 있었다.

로열 발레단은 폴루닌을 거의 모든 공연에 투입했다. 심적으로, 육적으로 지쳐가는 만큼 폴루닌은 세상의 기대와는 다른 길로 모험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약물을 복용하고, 계속해서 몸의 문신을 늘려 갔으며, 때로 공연 리허설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그의 일탈은 곧 미디어에게 좋은 사냥감이 됐다.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만큼 그의 인지도와 인기는 함께 늘어 갔으며, 발레단은 여전히 그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발레단에 '힘들다고 얘기'했음에도 말이다. 결국 그는 일탈을 통해 세상에 자신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외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에 오른 사람은 누구나 모종의 공허함과 회의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대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노년에 사진기를 내려놓고 붓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그림이란 새로운 언어를 선택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고민의 시기가 폴루닌에겐 비교적 일찍(20대 초반이었으니 말이다) 찾아왔단 것, 그리고 폴루닌에겐 이 열병을 앓는 게 생전 처음이었단 거였다. 애당초 폴루닌에겐 발레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에겐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재능이 있었고, 부담도 있었다. 여느 무용수들이라면 오래간 꿈 꾸며 바라볼 이상향들이 적어도 이상형이 돼버린 그에겐 너무나 단편적이고도 근시안적인 것들이었다. 궁극적인 이상향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목적'을 달성한 후, 더 이상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흔들리던 폴루닌은 결국 3년 만에 발레단을 탈퇴한다.


춤을 춰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어요. 그래도 춰야 하죠.
왜냐면, 잘하니까요.


발레단이 너무 구속적이라며 고작 22살에 모든 영예를 내던지고 만 천재. 이제 그에겐 '최연소', '최초'와 같은 수식어 대신 '발레계의 배드보이', 'Talented but Troubled'와 같은 말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탈퇴 후 춤의 무대를 다른 대륙에까지 넓혀보려던 이단아는 서구 중심의 발레계에서 외면당한 끝에 러시아로 향하게 된다. TV쇼부터 출연하고, 이고르 젤렌스키(스타니슬랍스키 극장 예술감독, 발레리노 출신)와 신뢰를 주고받으며 협업하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나 싶더니, 2년 만에 또 다른 한계가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고전 발레라 새로웠지만 런던과 비슷했다. 한 걸음 앞선 게 아니라 옆걸음을 친 것이었다.'


춤추고 지칠 때마다 왜 이걸 하나 자문하곤 하죠.
하루도 쉴 수 없어요. 너무 아파서.
하루만 걸러도 어깨가 뻐근하고 등이 쑤셔요.
마치 포로가 된 기분이죠.
나 자신의 몸에, 춤에 대한 열망에.


다시 고뇌하던 그는 결국 어떤 이상향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자유.'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상향, 차마 달성하지 못하리라 사료될 정도인 그 이상향은 바로 자기 스스로와 다름없다던 춤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춤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 폴루닌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발레를 가르쳐주었던 스승 이바노브바를 만나고, 영국에서 함께했던 친구에게 자기가 출 마지막 춤의 안무를 의뢰한다. 어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건지도 미리 정해놓았다. 호지어(Hozier)의 'Take Me to Church'였다. 마치 자기가 이뤄온 것들을 뉘어놓고 장례를 치르듯, 그는 하와이의 마우이 섬까지 가서 내내 울며 아래의 영상을 찍었다. 이상형으로 춤추던 그 어느 때보다 더 압도적인, 이상형 이상의 이상향에 도달해가려는 이카루스의 몸짓은 곧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https://m.youtube.com/watch?v=ozs_f4ZT9sw

데이비드 라샤펠과 협업해 하와이 마우이에서 촬영한 'Take Me to Church' 영상


그렇다면 과연 폴루닌은 정말 춤을 그만뒀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춤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순간에 자신이 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전에 누리지 못했던 모종의 자유로움 속에서 부활한 폴루닌은 무용수의 삶을 다시, 그러나 이번엔 '스스로' 선택한다.


영화에선 별 거 아닌 에피소드 같지만, 큰 울림을 주는 전환점도 등장한다. 본래 세르게이 폴루닌은 가족들이 자신의 공연을 보지 못하도록 막곤 했었다. 그의 말대로 어렸을 적부터 춤에 엄격했던 어머니에게 지탄받을 것을 생각하니 부담이 되기도 했을 테지만, 깊은 곳엔 원망도 있었을 것이었다.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해 발레를 열심히 했지만, 폴루닌이 영국에서 1년을 보낸 후 부모는 이혼했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 그는 그때 다신 슬퍼하지 않고, 상처 받지도 않기로 다짐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난생처음 가족들을 공연에 초청한 것이었다. 괴로움에 울부짖던 '야수'의 해방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전엔 부모님이 보시면 엄청 긴장했는데,
이젠 제 공연이 가족과의 합작품 같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게 편해요.


부모님과 함께, 백스테이지에서.


https://youtu.be/vDM868HwYVA

부모님을 초대했던 공연 당시 세르게이의 모습이 담긴 영상(20세기 발레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의 비교 영상)


그리고 세르게이는 재도약에 성공해 전설의 발레리노로 남았습니다, 하고 이야기가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런 해피엔딩은 없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동성애 혐오발언이나 푸틴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슴 중앙에 푸틴 얼굴 문신을 했다)등으로 구설에 올라 초청이 취소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최근의 행보는 아쉬운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르게이 폴루닌의 삶과 이 영화 '댄서'가 주는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다.

 

그처럼 이상형과 진배없는 위인이 된다 해도, 여전히 사람은 이상향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남는다. 천재든 아니든, 결국 모든 사람에겐 자기만의 삶의 속도와 방향성이 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가며, 부닥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꾸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이상향을 갖는 것(물론 그것은 어떤 실제적인 목적과는 차원이 다른, 모든 작은 목표들을 아우를 수 있는 추상적인 무언가 여야 할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생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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