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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이사 Apr 15. 2020

이상한 하루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느끼고, 또 말할 수 있는 용기


종각역 앞의 노숙인들이 비둘기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모두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새와 사람,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담담하고도 일상적인 함께함의 순간이 새삼 놀라웠다.


여느 때처럼 종각역을 나서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민머리에 5부 반바지와 조끼를 입은 뒷모습이 근방에 많은 노숙인과도, 지금 누워있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잠깐 놀라 서 있다, 그가 부르르 떠는 것을 보고선 마침 길가에 서 있던 구급차로 달려갔다.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했더니 119에 신고하란 답이 돌아왔다. 본인들은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다급한 내 목소리가 민망해질 정도로 차분한 답. "아니, 사람이 쓰러져있다니까요?" 해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119에 신고하라는.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쓰러진 사람을 챙기는 게 먼저였다. 다시 돌아와 쓰러진 이를 살피며 119에 전화를 걸고 있는데, “거, 깨우지 마쇼. 자는 거요, 자는 거.”하는 목소리가 성큼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좇았다. 차림새를 보니 노숙인인 것 같았다. 좀 안심이 되어서 “아, 그래요?” 하고선, ‘잔다’는 이를 두고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쓰러진 이가 ‘잔다’는 말에 안심이란 걸 했는가. 또 그 말을 왜 그다지도 쉽게 믿어버린 채 자리를 떠나버렸는가.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더 이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돌아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사람이 쓰러져 있는 풍경이 너무나도 평온했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평온한 구급대원들 사이에서 ‘놀란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이상한 걸 이상하다 생각하던 나도 끝까지 이상한 상황을 붙들고 있진 못했다. 문득 ‘바그다드에서 폭탄테러로 300명이 사망했다’는 어느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선 ‘아, 그랬구나.’하며 슥- 넘겨버렸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꽤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아무리 평소에 분쟁이 잦은 지역이라 해도, 먼 땅에서 일어난 일일지라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다치고 죽었다는데 태연자약하게 뉴스를 넘겨버리다니! 오늘도 그 날과 같은 상황이었다. 쓰러진 이가 노숙인이란 걸 알게 됐어도, 누군가가 스러져가는 상황은 언제나 무뎌지면 안 될 이상(常) 상황이어야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상한 것들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침묵하는 만큼 어느새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감각조차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국제문제든, 노숙인 문제든, 불합리한 노동이나 성 착취의 문제든, 오늘날 우리 사회가 사방으로 무뎌져 가는 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단 생각, 목소리를 내도 구조는 못 이길 거란 판단, 그래서 굳이 이상함을 주목할 필요가 없단 합리화가 그 원인인 건 아닐까.


그러나 이 같은 집단적인 무뎌짐에 희생당하는 건 우리가 오늘 외면했던 사람들만이 아니다. 내일의 우리도 안전하지 못하다. 누구든, 언제든 그러하다. 현실적인 회의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새로운 이상(理想)이 필요한 때다. 너무 먼 곳보단 주변부터 돌아보고, 일상 속에서 이상한 게 있다면 이상하다 말해보는 것부터 변화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일단 나부터, 사진과 글로 이상했던 하루를 반성하며 남기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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