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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 베로 Sep 23. 2022

일흔아홉살 엄마의 사회생활

노인 일자리 청소노동자 엄마와 엄마의 동료 아주머니 이야기


청소일을 하시던 엄마의 동료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노인 일자리로 동네 동산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산책로를 쓰는 청소 일을 하셨다. 아주머니는 그 일을 2년간 같이 하신 분이다. 금요일 오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가 건강하셨는데 딸네 집과 병원에 잠깐 있다하더니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장례식장에 가려다가 내가 이 몸으로 어딜 가나싶어 마음을 바꿔 경로당 회장님 편에 조의금을 전하고 엄마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안타까워서 어떻게. 그래요. 조의금 전하시길 잘 하신거죠.


엄마와 동갑이라고 했나. 궁금했지만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이후에 또 이야기하셨는데 동갑이셨다.)


안 그래도 오늘 인천 가려고요.


마치 인천에 원래 갈 계획이었던 것처럼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금요일 저녁 공연을 마치고 춘천에서 9시 출발하는 Itx 기차를 탔다. 밤 11시 반이 되어 인천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의 근황 이야기, 왜 돌아가시기까지 했을까 짐작해보는 여러 정황, 그리고 엄마의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걱정되서 이 밤에 왔구나.

아주머니를 기억하고 엄마와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


아주머니를 다섯 번 정도 뵌 거 같다. 엄마랑 일 하실 때 세 번, 나중에 다른 분이랑 일 하실 때 한 번, 아파트 단지 내 길에서 한 번 정도. 엄마가 일흔아홉이시고 동갑내지 한두살 터울이셨으니까 아주머니도 사실 할머니 소리 들을 연배이시다. 하지만 내 착각인지 아주머니는 유독 엄마보다 건강해보이셨다. 엄마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고, 소아마비가 없는 다리는 많이 써서 무거운 인공관절을 하고 나서부터는 다리 무게와 길이 차이가 더 커지면서 허리가 꺾이듯 기우뚱 걷는 것이 더 심해지셨다. 자꾸 넘어지기도 해서 청소일을 좋아하셨지만 2년을 채우고 그만두셨다. 반면 아주머니는 배낭 줄을 야무지게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잰걸음으로 어딘가를 부지런히 향하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아주머니가 길을 가는 모습은 딱 한 번 봤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아주머니는 하염없이 어딘가를 향해 걷고 계신 것 같다. 아주머니가 길을 걸어가실 때 나는 아주머니인줄 알아본 것 같은데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나? 아주머니가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셨나? 그건 기억나지 않고 헷갈린다. 약초를 캐러가거나 단풍구경을 갈 것 같은 빨갛고 노란 아웃도어 잠바에 남색바지, 그리고 배낭을 맨 모습. 다른 아주머니의 모습에서도 흔히 본 모습이어서 내가 정말 길에서 그 아주머니를 본 것이 맞는지 지금도 헷갈린다. 엄마가 일하는 동산에 가방을 가져다 드리며, 엄마 일하는 것을 도우려고 한 번 나가서, 산 가파른 곳에서 일하시는 엄마에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며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는데 늘 엄마를 보는 것이 주였다. 엄마와 같이 일하시는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공손히 인사드릴 뿐 더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나에게 다른 분들이 종종 하시는 ‘결혼 했냐’, ‘왜 결혼 안하냐' 등의 이야기는 딱히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와 엄마가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보셨고, 나와 엄마의 볼 일을 마치면 엄마와 아주머니는 대화나 일을 이어하셨다. 엄마를 보러가면 ‘아주머니도 만나겠구나’정도는 생각한 것 같다. 그 이상 생각한 것은 그다없이 아주머니가 만나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주머니를 만난 유일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마주했던 상황과 풍경들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아주머니의 갑작스런 부고에 엄마가 놀랄까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인 토요일에도 춘천에서 공연이 있어 일찌감치 춘천으로 돌아가야했지만 엄마의 상태를 봐야할 것 같아 인천으로 향했다. 노년. 나이가 들면 친구들도 어느날 갑자기 죽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고 한다. 그런 경험들을 여러 번 겪으며 본인도 언젠가 느닷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내 또래 지인의 죽음을 몇 차례 보았고, 나에게도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도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게 싫었다. 아버지는 십여년 전부터 친구들이 자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적적하셨을까.


그런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주머니의 죽음이 이상했다. 다리와 허리가 아프고 기력이 부족하여 일을 그만둔 엄마에 비해 아주머니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쌩쌩’하셨다. 엄마는 무언가 오래 생각한 이야기를 하면 중간에 끊김없이 온갖이야기가 쏟아낸다. 아주머니에 대해 두 세 번 그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아주머니는 여행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만원, 이만원에 인삼공장 들려서 구경하고 지방 어디어디를 구경하고 오는 단체 여행을 종종 가셨다고 한다. 그 여행을 가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여행을 신청해서 관광버스로 가게되는데 아주머니는 그 버스 안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서 걷는 것도 불편한데 아주머니는 관광버스 안에서 중심 잡으며 춤을 출 수 있다고 했다. 엄마가 같이 여행을 다녀온 건가? 왜 그렇게 관광버스에 춤을 잘 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을까?


엄마와 아주머니는 복지관을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되셨고 7년여 정도 상당히 가깝게 지내오셨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20여명 되는 작은 경로당의 이런저런 일들을 하셨다. 장을 보러가고 복지관에서 물건 받아오는 일 등을 하셨다. 아주머니는 계산하고 나서서 결정하는 일을 싫어하셔서 엄마에게 그런 것을 하라하고 다리가 불편한 엄마 대신 아주머니는 경로당의 간식 등 장을 보고 복지관에서 비품을 받아오셨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장을 봐서 출발했다고 전화가 오면 엄마가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아주머니의 ‘쌩쌩’하고 건강한 면모에 대해서 이야기 들은 바가 많아서 아주머니가 아파서 입원해 있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 이상했다. 엄마가 먼저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셨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이는 50대 아들과 살았어. 결혼 안 한 아들인데 경마로 돈을 다 잃어서 월급을 모두 여동생인 딸이 관리해. 그이 남편은 직업군인이었는데 병이 나셔서 60대에 죽었데. 그이는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넉넉하진 않아도 살만하다고 했어. 그래도 일을 하니까 너무 재밌다고 내가 일을 소개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며 여러 번 고마워 했어.


엄마와 아주머니는 무척 열심히 일하셨다. 두 분은 그 동산 가파른 곳마다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물찾듯이 찾아냈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뭔가 거대한 것들을 찾아냈다. 어느새 경사진 곳들에 새롭게 생기는 쓰레기도 더이상 없었다. 쓰레기를 치우고는 흙밖에 없는 경사진 곳에 듬성듬성 도라지를 심어서 도라지 꽃이 피기도 했고, 누군가 그 도라지를 뽑아가기도 했다. 늦가을에 한 번 나도 같이 산책로를 쓸었던 적이 있다. 얼마나 꼼꼼히 쓸던지 떨어진 소나무 잎 하나까지도 쓸어내는 엄마에게 답답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내가 청소 일을 그만 둘 때에도 그이는 일이 너무 좋다며 계속할 거라고 했어. 나 대신 새로 일하게 된 이는 나보다 한 두 살 젊어. 근데 그 새로운 이는 일하는 동안 한 번을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거여. 수건을 목에 두르고 일하는데 땀이 흠뻑졌는다고 보여주고 그랬어. 그 새로운 이랑 같이 속도를 맞춰야하니 그이는 힘들다고 했어. 나는 2시간 일하는 동안 사이사이 힘들면 5분이라도 쉬어가며 일했는데, 그이는 쉬지 않고 일을 하니 힘들어 죽겠다고 하더라고. 대신 한시간 반이면 일이 끝난데. 간혹 일하다가 쉬면 산책하던 사람 중에 일은 안하고 쉰다고 쉰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이 싫어서 쉬지 않고 그렇게 일했을까? 그렇게 2년 여를 더 일하다가 그이도 힘들어서 그만뒀어.


같이 일하는 분에게 천천히 하자고 이야기는 하셨겠지?


하긴 한 모양인데 늘 빨리 마치고 가자고 하니까 그렇게 한 모양이야.

  

그이는 돈이 생기면 방 장판 아래에 돈을 현금으로 깔아뒀어. 꽤 되었나봐. 은행에 맡기면 딸이 바로 알게 되고, 자식들이 돈 모으는 거 알게 되는게 싫었데. 최근에 딸이 그이가 사는 집을 리모델링하자고 해서 그이가 아주 한 걱정을 했어. 장판 아래 돈들을 어떻게 해야하나하고 말이야. 내가 맡아준다 해야하나 생각도 해보았는데 그랬다가 괜히 문제생길까봐 얘기도 꺼내지 않았어. 그리고는 정말 리모델링을 하게되었다고 딸네 집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그 때쯤 장판 아래 돈은 어떻게 됐을지 결단이 났을텐데 나도 물어보지 않았어.


그러고는 얼마 안되서 그이가 입원을 했데. 폐에 물이 차서 물을 빼느라 병원에 있다고 했어. 전부터 허벅지가 아프다고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일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나니 허벅지도 안아프게 되었다고 좋아했어. 근데 왜 갑자기 폐에 물이 차고 입원까지 했을까? 원래 큰 병이 있었는데 그이가 말을 안했는지, 가족들이 그이에게도 무슨 병이 있다고 말을 안해준 걸까? 어느 날 그이가 혼잣말처럼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라는 말을 하더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긴 했지만 무슨 일인지는 못 들었어.


아주머니의 부고 소식에 경로당 어르신들이 모여 며칠을 아주머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왜 그렇게 갑자기 갔을까? 그 돈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런데 왜 그렇게 갑자기 갔을까?


지금도 어떤 어르신 두 분이 아침 7시면 파란색 조끼를 입고 그 동산의 산책로를 청소하신다. 엄마가 오랫동안 다닌 복지관에서 그 산책로 어르신 일자리를 관리한다. 나는 엄마에게 복지관 담당자분을 찾아가 어르신들께 '쉬엄쉬엄해도 된다'고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복지관 담당자분들이 충분히 그런 이야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도 어르신들께 늘 말씀드려서 걱정없이 하실 수 있는 만큼만 하시도록 전해졌으면 싶었다. 엄마와 아주머니가 일할 때만해도 담당자분은 늘 ‘어르신들 절대 무리하지 마셔라. 쉬엄쉬엄하셔라.’라고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뀌었고 엄마가 아는 담당자님이 아니어서 괜히 가서 그런 이야기하기가 멋쩍다고 하신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지원 일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죽음이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삶이 우여곡절을 알리지 못하고 삭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풀지못한 우여곡절과 갑작스러운 소식이 안타깝다. 누군가의 삶은 너무나 웅장하고 누군가의 삶은 조용히 사그라진다. 미련이라고 여겨지지 않기를.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이 글은 마이아 에켈뢰브,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교유서가, 이유진(옮긴이), 2022)를 읽고 썼습니다.


수없이 많은 아주머니의 사회생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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