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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 베로 Dec 03. 2022

너의 의미

1029 참사가 35일이 지났다.


10.29 참사를 접하고 즉시 혹시 내 조카, 친구, 지인이 참사를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가족을 통해, SNS를 통해, 지인의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소식을 확인했다. 인스타 스토리를 수시로 올리던 먼 지인이 3~4일간 SNS를 하지 않자 설마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손에서 폰을 놓지 못하고 수시로 그의 SNS를 들여다보며 그의 인기척을 확인했다. 근황을 묻기 어려운 지인들의 근황은 어떻게 알아봐야할까.

10여년 전부터 이태원 할로윈축제에 종종 갔다. 지인들과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어울려 이태원에 갔다. 이태원은 할로윈 때마다 이국적인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그리고 분명 ‘경찰들이 즐기려고 이리 많이 나온 것 아닐까’, 혹은 ‘우리의 놀이를 없애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함께 간 친구들과 나눌 정도로 혼잡경비가 삼엄했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구나.’라고 최근에 생각하게 되었다. 춘천살이 불과 1년이지만 싫은 소리를 해야할 자리에 여러 번 발언자로 초대되었다. 왜 1년 밖에 안된 나에게 이런 부탁이 올까 의아하면서도 해야할 말을 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말을 하고 나면, ‘1년 밖에 안되서 무서운 것이 없구나.’, ‘까탈스러운 애가 하나 왔구나.’하는 시선도 느꼈다.

누구나 일상의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을거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그 답답함을 해소한다. 자우림의 노래 <일탈>에서처럼 지루한 일상에 ‘화끈한 일 없을까.’ 찾아나서는 것에 잘못이 없다.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이 지루해서가 아니어도 누구나 축제를 찾아갈 수 있다. 이태원 할로윈축제에 가면 나도 분장을 하고 가지만 온갖 다양한 의상과 분장을 한 사람들을 보며 그 기발함에 탄복했고 너무 재미었다. 평상시 보기 어려운 낯선 모습을 거리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고 그런 일탈이 스펙타클한 영화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보다도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퇴폐적인 것을 즐기려고 이태원 할로윈축제에 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친구들과 맥주한잔 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 갔다. 다양해서 불편할 것 같지만 그 다양함이 ‘조금 달라도, 어긋나도, 불완전해도 괜찮아.’라고 나를 포용하는 힘이 된다고 다양성을 못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서 유가족이 밝힌 참사 희생자분들의 이름과 사연을 찾아보았다. 공업고 2학년 열여덟살 김동규님, 홍성에서 자란 19살 박가영님, 첫직장에 입사한지 두달 된 24살 신애진님, 채용 면접을 이틀 앞둔 25살 노은서님,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20살 스티븐 블레시님, 24살 배우 이지한님, 24살 치어리더 김유나님, 미국에서 온 24살 최보성님, 해바라기를 좋아하던 정주희(헬레나)님, 배우를 꿈꾸던 송영주(24)님, 결혼식을 앞둔 군무원 이다솜님, 50대 여성분과 40대 여동생분, 15살(중3) 조카분, 고등학생 다섯 분, 교사 세 분(서울, 경기, 울산), 고려인 율리아나박(25)님, 연해주 스파스크달니 출신 옥사나 김(25)님, 시베리아에서 유학온 크리스티나 가르데르(26)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다리아 트베르도클렙(21)님, 말레이시아에서 온 라우(21)님, 호주에서 온 영화 프로듀서 그레이스 레이치드(23)님,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와서 간호학을 공부한 앤 기스케(20)님, 일본에서 온 토미카와 메이(26)님, 카자흐스탄에서 온 마디나 셰르니야조바(26)님, 이란에서 온 소미에(26), 알리(36), 아파그 라스트마네쉬(29), 알리레자, 레이힌님, 태국에서 온 한국어교사 낫니차 마깨우(27)님, 베트남에서 온 단 티 투옌(21)님의 짧은 이름과 사연을 볼 수 있었다. 참사 희생자 158명 중에 그 밖의 분들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세월호 때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어떤 한국 정치인이 희생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패륜이라고 했다. 희생자들이 자발적으로 사람 많은 곳, 퇴폐적인 곳에 가서 일어난 일이라는 암묵적인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있는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비참하게 만드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의 길 한복판에서 매년 벌어지는 할로윈 축제에 대한 안전시스템과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 기동대 한 팀만 배치했어도 되었을 일을 하지 않은 행정력의 부작동을 문제 삼아야한다.  대중은 주최없는 행사에 어쩔 수 없었던 '사고'가 생긴걸까 잠시 생각할 수 있지만 행정력의 방향을 결정하는 윗선은 분명 전문가로서, 행정가로서 사전에 혼잡경비를 대비했어야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지금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자기 아래 전문행정가의 소신발언이 일어나도록 건강한 행정력을 발휘했어야한다. 지금 사회 시스템과 행정력의 부작동으로 일어난 사회적 참사임을 인정하고 행정가의 사과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책임자인 윗선에서 유가족의 연락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는 생떼같은 거짓말이나 무능을 으름장 놓듯 반복하고 있고,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 부작동으로 누가 안타까운 희생자가 되었는지 세상에 알리고 사회적인 애도를 해야한다. 그리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다른 누구도 이해한다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을 서로 애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공간을 마련해주고 만날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 공동체와 책임있는 행정가가 피해자나 유가족,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밝히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한다.


이름도 사연도 알지 못하니 그들의 충격과 고통이 세상으로 알려지는데 한계가 있다. 처음엔 나도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도 시간이 걸리겠지 했는데 어느새 35일이 지났다. 내 가족이, 소중한 지인이 갑자기 참사로 희생되고 세상은 왠지 다시 왠만하면 살만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나는 나의 무력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며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고 알게된다. 누구나 하루하루 살아가며 삶을 경험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회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국민으로 소환되고 감당하기 어려워 희생되었고 고통을 겪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어야 한다. 오늘도 문득 안부가 궁금한 먼 지인의 안부를 부담스럽지 않게 알아볼 방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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