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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ee Oct 25. 2021

집 구하기, 이렇게 바쁠 일이야?

Part 2. 스물~스물아홉: 노잼 라이프 청산기 7

대차게 까인 제안서를 거실 협탁에, 안방 화장대에, 부엌 식탁에, 논에 걸릴 만한 곳 여기저기에 올려두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 눈에 걸리면 한 번은 더 거들떠보겠지.


부모님을 겨냥한 지뢰(?)를 곳곳에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밤마다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뒤지고 다녔던 집들을 추려 퇴근 후 찾아다녔다. 지도상으로 역세권이어서 좋아 보였던 집은 막상 가보니 고깃집 골목 초입에 위치한 담(배)세권이었다. 더블 역세권이라고 자랑하던 집은 이 역도 저 역도 가깝지 않은 애매한 역사이권이었다. 여기저기 다닐수록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내 눈에 좋은 건 남들 눈에도 좋다는 것. 왜 비싼지 모를 아리송한 집은 있어도 싼 집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싸게 나온 매물에서 치명적인 단점을 쳐내면 결국 비싼 매물만 남았다. 슬픈 현실! 젠장.


겨우 겨우 예산과 마음의 합을 맞춰서 몇 군데를 추렸더니, 내 마음만 추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목이 빠져라 기다려도 찜한 건물에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세가 귀한 동네라 전세가 잘 안 나온다고 고개를 젓는 부동산 중개사무소마다 '그래도 좀~'을 외치며 명함을 뿌리고 다녔건만 단 한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아직인가?'를 외치며 산지 한 달이 되던 날, 오전 내내 회의로 바쁜 와중에 부동산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회의 중이니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ㅇㅇ 부동산입니다. 전세 매물 나와서 연락드립니다. - 오전 10:23
3월 말 입주 가능하신가요? 본 집은 오늘 저녁에 바로 보실 수 있는데, 빨리 답장 안 주시면 그전에 계약될 수도 있어요. - 오전 10:47
전세 계약 완료되었습니다. 죄송해요~ - 오후 12:08


답장이 없는 사이에 날아온 3통의 문자. 네? 매물 등록부터 계약 완료까지 2시간이 걸렸다고요? 회의를 마친 후 뒤늦게 문자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어떤 사람이 매물도 보지 않고(!) 계약했단다. 아니, 무슨......


그로부터 이틀 후, 오전 업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전세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지난번 대참사가 생각나서 마음이 조급했다. 퇴근 후 곧장 가서 보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점심시간 후 다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불안하게끔.


전세 계약 완료되었습니다~. - 오후 1:48


그 후에도 몇 번씩 게릴라 이벤트로 뿅! 하고 등장하는 전세 매물은 퇴근까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쯤 되니 본 적도 없는 내 집이 경매라도 넘어간 것처럼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내 집! 내 집!! 내 눈에도 좋고 다른 사람 눈에도 좋은 걸 쟁취하려면 '스피드'가 생명이다. 퇴근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좋은 것을 위해서 점심시간마다 택시를 타고 달렸다. 점심밥도 마다하고 달려간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걸까. 내가 유난히도 못살게 굴었던 중개소 실장님이 급매로 나온 반전세 매물을 집주인을 설득해 전세로 돌려주셨다. (실장님, 감사합니다! 부자 되세요!)


드디어 점심 좀 먹나 했는데, 역시 세상사 만만치 않다. 집이라는 게 호락호락 뚝딱 생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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