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반차를 내고 이사하는 날. 오전 업무를 보는 내내 스마트폰이 시끄럽다. 전 세입자가 이사를 마쳤다는 부동산 안내 문자. 대출금을 송금해도 되겠냐는 은행의 확인 전화. 부랴부랴 오전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내 마음도 시끄러웠다. 전입신고 필요 서류는 다 챙긴 거지? 주문한 침대는 잘 오고 있겠지?
일주일 전부터 부산스럽게 싼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이고 지고 나올 짐이라고는 옷가지와 간단한 화장품, 그리고 몇 권의 책. 한 사람의 삶이 떨어져 나가는데 필요한 건 트렁크 하나와 큰 박스 3개뿐이었다. 이사 어플로 가격도 알아보았지만 이 정도면 사람을 부르는 게 머쓱하다. 그냥 아빠 차를 타고 둘이서 짐을 나르기로 했다.
조수석에 앉아서 30분 남짓한 거리를 달리는데 기분이 묘했다. 설렘, 막막함, 두려움, 떨림, 해방감 그 어딘가에서 널을 뛰는 마음. 옆에서 운전하는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괜히 신경이 쓰여 창문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
꼭 부자가 되시길 바라는 실장님이 반겨주는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약서와 서류를 최종 검토했다. 이제 잔금을 송금하면 '진짜' 내 공간이 생긴다. 손을 벌벌 떨면서 잔금 이체 완료. 내가 억 단위 돈을 계좌로 주고받는 날이 오다니!
입주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친 빈 집에 짐을 옮겼다. 말없이 아빠와 둘이서 박스 테이프를 뜯었다. 7평 밖에 안 되는 곳인데 이렇게 텅 빈 느낌이라니. 생활에 당장 필요한 물품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아빠와 근처 다이소에 갔다. 욕실 슬리퍼, 수세미, 두루마리 휴지. 급한 불만 끄고 살면서 필요한 것이 생기면 차차 채우기로 했다.
주민 센터가 문 닫기 전에 부랴부랴 전입신고를 했다. 은행에 제출하려고 등본도 발급받았다. 세대주 최혜인. 내 이름만 덜렁 올라간 등본을 한참 쳐다봤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도 새 주소가 붙었다.
맙소사. 나 진짜 독립했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집에서 아빠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고 계셨다. '뷰가 참 좋네!' 한 마디를 남기고 아빠는 '아빠 집'으로 가야 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빠에게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았는데, 나도 아직 집이라니.
아침까지 확인했던 침대는 결국 제대로 배송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사 첫 날은 바닥에서 자고 그러는 거 아닌가. 토퍼처럼 쓰려고 가지고 온 적당한 두께의 이불을 깔고, 엄마가 기어코 알레르기 케어로 써야 한다고 싸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텅 빈 공간. 일곱 번 구르면 딱 맞게 떨어지는 공간이 어찌나 넓어 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