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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0. 2019

고비- 황량하고 막막하여라

당신에게 몽골 #1 

‘없다’로 시작하는 고비


고비(Gobi)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아무 것도 없다. 하릴없이 나뭇잎 뒤에 숨어서 목이 쉬도록 우는 풀벌레도 없으며, 조잘대며 흐르는 개울도 없고, 한국 사람이 제 안방보다 더 좋아한다는 노래방도 없고, 악어 쇼나 연에 매달려 타는 놀이기구도 없다. 


고비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뭘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곳에 가면 무얼 하면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이런 불온한 질문이 가슴에서 뭉글거린다면 서둘러 짐을 꾸려 고비로 날아가야 한다. 


고비를 가리키는 정확한 우리말은 없다. 굳이 뒤적거려 찾아본다면 ‘거친 모래벌판’, ‘황야’라고나 할까. 고비라는 말 뒤에 으레 붙이던 ‘사막’과는 조금 다르다. 모래사막은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국 쪽에 가깝다.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진 돈뜨고비(중앙고비)는 고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고비의 풍광은 우문고비(남고비)로 향하는 동안 다채로워진다. 스텝 지역의 초원을 지나, 점차 불모지로 비어져가는 고비는 단조롭고 황량한 바람 소리로 여행자들을 매혹시키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어느 지역의 시의원들께서 단체로 왔다가 허허벌판의 게르에 유숙시켰다고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몽골 측에서 부랴부랴 밤길을 달려 울란바토르의 호텔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비는 세상의 어떤 카메라로도 담아낼 수가 없다. 그 광활한 대지를 담기에는 어떤 광각렌즈도 충분하지 않으며, 고작 25km가 한계인 사람의 시력으로 담기에도 고비는 너무 막막하다. 담아내려 한다는 생각마저 지워 버릴 만큼 고비는 아득하다. 세상의 어떤 카메라가 고비의 풀들이 풍기는 부추나 박하 같은 향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메뚜기들이 날개를 비벼대며 차르르차르르 우는 소리며, 알타이를 넘은 바람이 독수리처럼 휘파람을 불며 오워에 매달린 푸른 하닥을 흔들어대는 그 서늘한 촉감은 또 어떻게 담아낼 것이란 말인가. 가서 느끼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



고비는 몽골 땅의 3분의 1이다. 고비는 그러니까 한반도의 2배가 넘는다. 고비에는 한 평에 일 원 하는 땅도 있다. 단, 물이 나오지 않는다. 달도 그러하니 너무 성내지 말라. 그냥 마음에 드는 곳에 말뚝을 박아라. 땅투기에 한 맺힌 이들이여, 고비로 가라. 삽질에 미친 자들이여, 고비로 가라. 삽 오만 자루 줄 테니 닳아 없어질 때까지 파라. 파다보면 남미가 나올 것이다. 안 나오면 그냥 거기서 쉬라. 다음 생이 그대를 부를 때까지.


몽골 말로 고비라는 발음은 대단히 어렵다. ‘거이’와 ‘고비’의 중간음이라 할까. 따라하지 말라. 지친다. 고비라고 해도 몽골사람들은 다 알아 듣는다. 

고비는 중앙의 돈뜨고비, 동쪽의 도른고비, 남쪽의 우문고비로 나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비는 뜨거워지고 고비다워진다. 하늘은 푸르고 황야는 붉다. 고비는 180도의 반구로 이어진다. 신기루와 구름 한점 없는 창공. 그 가운데 서면 막막하고 고적하지만 구질맞게 외롭지는 않다. 고적해서 견고해진다. 세상의 한가운데 놓인 단단한 돌이라고나 할까. 


만달고비를 지나 달란자드가드로 향하자면, 사방 300km 반경의 불모지를 지나게 된다. 풀 한 포기, 양 한 마리, 게르 한 채 없이 막막하니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서면 비로소 세상에 혼자 선다는 가슴 먹먹한 느낌과 만나게 된다. 떼를 써서라도 차를 버리고 그 불모지를 걸어 보기 바란다. 여태껏 가족과 친구와 직장 상사와 싸가지 없는 인간들 틈에 끼어 헐떡거리던 자신을 건져내어 자신의 본연과 만나게 될 것이다. 고비는 막막하니 비어 있으면서도 오감을 충만하게 한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고비를 걷는 나그네의 보법이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없다



고비에서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말라. 길이 없으니 잃을 길도 없다. 낮이면 그림자와 길벗을 삼으며, 밤이면 별에게 길을 물으라. 발길이 닿는 곳이 길이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없으며, 가야 할 길도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도 부질없다. 오로지 마음의 자침이 가리키는 데로 걸으라. 편도 100차선의 광활한 고비를 달리는 차들은 대체로 하루에 300km를 달린다. 하루쯤 맥 놓고 걸을 수 있는 여정을 어떻게든 일정 속에 끼어 넣으라. 걸을 때면 앞 사람이 안 보일 간격으로 떨어져 걷기를 권한다. 고비가 아니면 어디서 그 막막한 길을 만나겠는가. 다행히 고비의 거친 길은 차들을 서너 차례쯤 펑크 낸다. 바퀴가 빠져 달아나기도 한다. 차를 고치는 틈에 기쁜 마음으로 걸으라. 나중에는 차가 고장 나기를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홍그린 엘스에서 바양자크로 가는 산길도 걸을 만하다. 엉기히드 폐사지 부근의 고원에서 별을 보며 밤길을 걷는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천(늑대)’이 뒤쫓을 테니. 특히 바위가 많은 바끄가자링 촐로에서는 밤길을 걷지 말라. 늑대에게 물리면 상당히 아프다. 늑대를 만나면 행운이 있다니 아프더라도 참겠다면 할 수 없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남고비는 졸친고비라고도 불린다. 졸친은 손님, 여행자라는 뜻이다. 황막한 고비가 남북으로 길게 내려선 고비 알타이의 산들과 만나며 아름다운 경관들을 이룬다. 졸친고비의 길목은 달란자드가드라는 도시에서 시작된다. ‘여행자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울란바타르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들이 기착하는 공항이 있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나 차량을 빌릴 수 있다. 시간이 없고, 불모지를 달리는 데 힘이 드는 관광객들은 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서늘한 고원의 여름을 즐기다 돌아간다. 졸친고비는 고비 알타이 산맥을 이루는 시브레 산과 고르왕사이흥 산의 줄기를 끼고, 협곡과 사구가 있다. 

살들을 바람에 날려보내고 암청색 뼈만 남은 산들은 청회색 허브들로 뒤덮여 있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세찬 바람에 시달리던 들꽃들은 여름의 우기에 일제히 꽃을 피운다. 빗방울 냄새만 나도 산빛깔이 변한다. 부드러운 카페트를 씌워 놓은 듯한 산구릉을 따라 올라서면 고원의 아름다운 풍광이 환상적이다. 

말라버린 개울이 바로 길이 된다. 언젠가 그 길이 패어서 산등성이를 타고 간 적이 있다. 3개의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의 ‘고르왕사이흥’ 산을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경주의 고분을 닮은 산들을 오르내리며 달리는 고원 길은 바람을 타고 코끝에 전해오는 허브 향만큼이나 환상적이었다. 


고비에서는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고비를 다녀온 최승호 시인의 ‘고비의 고비’란 시가 그 경계를 잘 일러 준다.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고비에서는 왜 달리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하루나 이틀쯤은 한곳에 머물러 어린왕자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고나, 빈 보드카 병에서 나는 뱃고동 같은 바람소리를 무심히 듣거나, 유유히 자전거를 타거나, 하다못해 고비 벌판에서 된장찌개라도 끓여 먹기 바란다. 멀리 가지 못하면 어떤가. 다 둘러보지 못하면 누가 벌금이라도 물리는가. 하루쯤은 가슴 먹먹하게 고비를 느릿느릿 걸어보기 바란다. 


고비의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보석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라마승이며 작가로도 알려진 단잔 라브자(Danzan Ravjaa: 1803~56)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투명인간이 되어 몸을 숨길 만큼 도력이 높았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희귀한 조각상이나 골동품들을 모아 두었는데 무려 1500 상자나 되었다고 한다. 단잔 라브자의 보물상자들은 스탈린 시절에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다행히 45개의 보물상자가 아직 고비의 모래 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구미가 당기지 않은가. 삽 들고 고비로 달려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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