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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2. 2019

오워- 바람의 이정표

 당신에게 몽골 #2

바람의 이정표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가자면,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방향을 가늠할 나무 한 그루, 오름 한 자락이 없으니 남북을 모르겠고, 동서가 혼미하다.

그런 벌판에 한 무더기 쌓인 돌들을 보자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걸 쌓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누군가 이 길을 앞서 지나갔으리라는 생각에 안도한다. 높은 산마루에나, 망망한 평원의 언덕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벌판 위에 소복이 쌓인 돌무더기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바람이 일러주는 이정표라 하겠다.


오워(оvоо)는 우리네 동구 앞에 있던 서낭당의 원조격이다. 읍내에서 걸어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삼밭골의 고향집을 가려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고, 그 고개에는 오래 묵은 향나무가 서 있고, 그 주변에 돌무더기들이 쌓여 있었다. 장꾼들이 오며 가며 던져 쌓인 그 돌무더기들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붉고 푸른 오방색의 천들이 내걸려 있었고, 이따금 돈이나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새마을 운동 때, 누군가 야밤에 몰래 향나무를 베어 버렸고 돌무더기도 무너뜨려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아스팔트로 덮여 차들이 화살처럼 달려가는 2차선 도로가 되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내 가슴에는 바람 소리가 났다. 무언가 가슴 한 쪽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



몽골의 오워를 처음 보았을 때 바로 그 서낭당이 생각났다.

오워의 유래와 뜻은 정확하지 않다. ‘언덕’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이 있는데, 제주의 ‘오름’ 정도의 뜻이 아닐까 싶다. 오워는 사방 천리 눈 닿는 곳마다 허허벌판인 평원에서 길을 일러주는 길잡이가 되고,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이정표 노릇을 한다. 돌멩이가 귀한 평원에서 하나, 둘 던진 돌무더기가 쌓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워의 기원은 북방 유목민들의 적석묘에서 비롯된 듯하다. 시신을 돌무더기로 눌러 놓았던 장례 의식이 오워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몽골 사람들의 장례의식은 원래 매장을 하다가 티벳 불교가 전해지면서 풍장이 퍼지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나 소달구지에 시신을 싣고 가다가 떨어진 지점에 놓아둔다고 한다. 버려진 시신은 짐승들이 말끔히 뜯어먹을수록 복된 일로 여겼다. 사회주의 체제 이후 풍장은 금지가 되고 매장의식을 하게 되지만,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일부 풍장의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워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한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신성한 산의 꼭대기에 세워지는 알탕 오워는 하늘과 땅을 구분짓는 경계의 표시이며, 신성한 구역의 표시이기도 하다. 알탕 오워 부근에는 여자들의 접근이 금지된다.


그 밖에도 초원의 한가운데 놓여 이정표 노릇을 하거나, 물이 솟아나는 샘을 알리거나, 솜과 솜의 경계 표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거나, 유명한 관광지 등을 알리는 다양한 오워가 존재한다.

몽골의 오워에는 만국기나 오방색의 천을 매단 티벳의 타르초나 룽다와 달리, 주로 하닥이라는 푸른색의 천을 매단다. 버드나무에 하닥을 매는 의식을 ‘잘마’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의 샤머니즘과 관련된 의식이다. 규모가 큰 오워에는 오방색의 천을 달기도 하지만 흔하지 않다. 티벳의 초르텐을 닮은 백색의 불탑들과 함께 설치된 오워들도 있기는 하다.  


오워에는 돌멩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들었던 말의 머리뼈, 다리를 다친 이가 신세를 졌던 목발들이 놓여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하고, 술병이나 돈들도 바쳐진다. 지켜보는 이가 없지만 거기 놓인 지폐를 집어가는 이는 없다.  

나담 축제에서 우승한 말들의 머리뼈는 오워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도열해 놓아, 몽골인의 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알게 해 준다. 허르허린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거북 언덕에 오르면 말 머리뼈가 즐비하니 놓여있는 오워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높은 산꼭대기에 말머리뼈를 놓아두면 말이 다시 환생하여 초원을 달리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오워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몽골의 전설에 따르자면 목동과 관련되어 있다. 부잣집 양들을 지키던 목동이 깜박 잠이 든 사이에 늑대가 양들을 잡아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목동은 자책감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목동은 죽어 양들을 지키는 초원의 정령이 되었고, 목동이 죽은 자리에 돌을 쌓고 버드나무 가지를 꽂은 것이 오워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오워는 돌무더기 가운데에 버드나무 가지를 세우는데, 몽골 사람들이 신성한 나무로 여기는 ‘버드나무’를 쓴다. 버드나무는 물이 귀한 몽골에서 물을 찾아주는 나무이며, 하늘의 신이 강림하는 신목으로 여겨져 몽골에서는 ‘몽골 나무’라고 불린다.


아르츠보그딘 산의 정상에서 야영을 하고 나서, 떠나기 전에 천막 가장이에 눌러 두었던 돌들을 모아 오워를 쌓은 적이 있다. 그걸 지켜보던 신심 깊은 몽골 가이드 보드르마가 주의를 주었다. 오워를 쌓은 사람은 반드시 그곳을 다시 찾아와 제를 지내야 한다고 한다. 또 하나의 금기에 얽매이기 싫어 애써 쌓은 오워를 허물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를 핑계로 해마다 이곳을 찾는 순례의 길도 퍽이나 행복한 노정이 아닐까 싶었다.  

오워는 단순한 돌무더기로 보이지만, 사실 그걸 제대로 쌓으려면 몇 가지 지켜야 할 격식이 있다. 우선 중심을 파고, 그곳에 보온병이나 9가지 귀금속과 오곡 종자를 묻은 뒤 흙을 덮고 그 위에 돌을 쌓는다고 한다. 오워 부근에서는 제사 지내는 성산과 마찬가지로 그곳의 지명을 말하지 않는 금기가 있다.




오워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지금도 오워에 돌을 쌓는 행위는 몽골인들에게 적덕(積德)과 기원의 의미를 갖는다. 오워에 돌을 쌓을 때, ‘큰 돌은 당신에게, 그로 인해 생긴 복과 덕은 내게!’라는 진언을 드린다.

오워를 보면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돈다. 여행자들을 실은 차들은 차에 탄 채 오워를 세 바퀴를 돌기도 하고, 그마저 바쁜 경우에는 경적을 세 번 울린다. 그도 바쁜지 한 번만 울리는 이도 있었다. 몽골 북부 쪽을 여행할 때 모기라는 운전사가 몰던 델리카라는 일제 승합차가 크고 작은 말썽을 자주 부렸다. 에어컨이 고장 나고, 문짝이 열리지 않고, 가다가 시동이 꺼져 짐을 다른 차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불운한 차의 운전사 모기는 다른 차들이 오워를 지날 때마다 꼬박꼬박 세 번씩 경적을 울려도 한 번도 울리지를 않았다. 모두들 모기의 그런 불경함 때문에 차가 자꾸 고장이 난다고 수군거렸다. 이야기를 들은 모기가 말했다.

“내 차의 경적이 고장났어.”


오워를 지나가게 되면 돌멩이라도 하나 얹고, 일 달라짜리 하닥이라도 한 장 매어 두기 바란다.

뒤에 오는 이들에게 그대가 지나갔음을 바람이 전하도록.

옴마니 파드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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