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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4. 2019

게르- 떠도는 바람의 집

당신에게 몽골 #4

바람의 집


 '게르(Ger)'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들의 이동형 전통주택이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의 장군 톤유쿠그의 비문에 새겨진 말이다.

머물면 썩고, 썩은 것은 망할 것이라는 당부의 말은 칭기즈칸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선왕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중원의 문화를 동경한 쿠빌라이칸은 수도를 중원의 칸발리크(베이징)로 옮겨 성을 쌓고 궁궐을 지어 정주한다. 그런 쿠빌라이칸도 잠은 게르에서 잤다니, 게르는 유목의 피를 지닌 몽골인들에게 영원한 보금자리이다.


게르는 몽골북부의 차탕족이 쓰는 ‘오르츠’에서 유래된 듯하나, 몽골 할하족들은 차탕족이 게르를 본뜬 것이라고 '쪽수'로 우긴다. 나무를 얼기설기 세운 차탕족의 오르츠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인디언)들의 천막인 ‘티피’(tepee)와 거의 유사하다. 암각화에도 등장하는 게르는 7세기~10세기경의 흉노족 시절에 대략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게르는 몽골뿐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평원의 유목민들 사이에는 보편적인 주거형태이다. 카자흐족들의 ‘유르트’는 게르와 거의 비슷한 형태이나, 내부의 장식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게르는 허술해 보여도 영하 40도의 겨울과 영상 40도의 여름을 이겨낸다. 지체가 높은 이들의 게르는 고라니나 눈표범의 가죽을 썼다는데, 요즘 유목민들의 게르는 양가죽이나 펠트천을 이어서 안을 대고 바깥에 비와 볕을 막는 흰 천을 두른다. 이 흰 천을 ‘차강 부레스’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회색빛의 천을 쓰기도 한다. 게르의 안쪽에도 천을 두르고, 레이스가 새겨진 테두리로 장식을 한다. 여름에는 게르의 밑자락을 들어 올려 바람이 통하게 하여 시원하고, 겨울에는 난로를 피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된다. 게르는 겨울의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창이 없다. 드나드는 문이 하나이다. 문은 언제나 남쪽을 향한다. 여행 중에 방향을 모르면 게르의 문을 보고 가늠하면 된다. 게르에 들어서면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예의이다. 좌측이 사랑방 격이고, 가운데가 가장이 쓰는 자리, 안쪽이라 할 수 있는 우측이 여자가 거처하는 안방이며, 부엌에 해당한다.



게르의 구조는 먼저 별이 보이는 천창을 버티는 두 개의 기둥(바간)이 서고, 원형의 대들보(토노)에 서까래(오니)를 끼어 넣는다. 서까래는 보통 61개를 사용한다. 바깥에 접었다 폈다 하는 벽체(항)를 세우고 거기에 서까래 끝을 동여맨다.

게르의 천창은 느릅나무로 만들며, 서까래는 낙엽송이나 사시나무를 쓰며, 벽체는 버드나무나 낙엽송을 쓰고, 문은 습기에 강한 잣나무로 만든다. 특히 하늘로 향하여 세워진 기둥은 자작나무를 쓰는데, 이는 신성한 나무인 자작나무가 벼락을 피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라 한다.

게르의 크기는 다양한데, 벽체의 개수로 따진다. 가장 큰 게르는 에르덴조 사원에 있었다는데 81개의 벽체로 지어졌다고 한다. 큰 규모의 게르는 바퀴가 달려 있어 통째로 수많은 우마가 끌어 옮겼다고 한다. 가장 작은 게르는 벽체가 하나로 된 승려들이 기거하는 승방이다. 바끄가자링촐로 인근의 처리인 히드에 갔다가 장난감처럼 앙징맞은 게르가 도열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게르는 숙달된 사람은 30분, 늦어도 2시간 이내에 짓는다. 여행자가 한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이다. 원형의 들보에는 게르의 중심을 잡는 끈이 묶여 있고, 그 끝에 묵직한 돌을 매달아 둔다. 아주 단순하고 허술해 보이지만, 양이 날아갈 정도의 모래바람에도 버티는 아주 튼튼한 원형 구조이다.  

유목민들은 초지와 물을 찾아 한해에 4 ~ 8차례로 이동을 한다. 그때마다 게르를 뜯어 우마차에 싣고 옮긴다. 요즘은 소 대신 트럭에 싣고 이사를 한다. 바양자끄에서 이사를 하는 유목민을 본 적이 있다. 먼저 게르를 세우고, 집안 살림들을 초원에 빨래 널 듯이 좌악 펼쳐 놓는다. 그래 봐야 한 눈에 들어올 양이다.

유목민은 이동에 편리하게 집도 간편하고, 짐도 최소한이다. 게르 안의 살림살이는 중앙의 난로, 작은 장, 밥상으로 쓰는 탁자, 침대 몇 개,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가 전부이다. 바람 따라 흘러다니는 유목민에게 짐은 말 그대로 짐이 된다.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것, 그것도 게르 안에 자리를 덜 차지할 만큼 작게 만든 것이어야 한다.


게르에는 주소가 있을까. 없다.

그러면 유목민들은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있다. 몽골 유목민들은 사서함을 이용한다. 가까운 솜에 있는 우체국에 가면 자신의 사서함이 있다. 그곳에 정기적으로 들러 우편물들을 찾아간다. 홍고린엘스의 모래 언덕 아래 사는 바타르에게. 이런 주소로 편지를 쓰는 일도 멋지지 않을까.


게르에 관련된 금기도 적지 않다.

중앙의 난로에 쓰레기를 태우거나, 불을 꺼뜨리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칭기즈칸 시절의 법이니 크게 겁내지 말기를....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을 매달아 놓은 끈을 끊거나, 매달리거나 하는 장난을 하면 안 된다. 그 줄이 끊어지면 집안이 망한다는 흉조로 여긴다. 남의 게르를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면 실례가 된다. 놀러온 이웃을 빈손으로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비우게 되면 수태차와 유제품을 차려놓고 나간다. 행여 지나가던 길손이 들러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한다. 높은 담과 철망으로도 모자라 씨씨티브이까지 설치한 우리의 정주형 주택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행 중에 들른 게르에서 음식을 권하면 반갑게 받아야 한다. 음식을 받을 때는 오른손으로 받아야 한다. 차나 술은 받으면 내려놓지 말고 바로 마셔야 한다.     


초원의 하얀 쉼표




게르의 지붕은 한가운데가 뚫려 있어 밤이면 별들이 창연히 빛난다. 비가 오면 줄을 당겨 구멍을 덮는다. 대체로 몸무게가 가벼운 소녀들이 지붕에 올라가 걷어올리기도 한다. 돈뜨고비에서 이른 아침, 게르 지붕에 올라가 하늘을 열어 주던 몽골 소녀가 생각난다. 짐작하건데 영혼이 가벼운 이들만이 게르에 올라설 듯하다. 게르의 한가운데 뚫린 천창은 하늘의 신령(탱그리)이 드나드는 문으로 여겨 비가 오지 않으면 늘 열어 둔다. 그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위치를 보고 유목민들은 시간을 안다. 일종의 해시계이다. 밤이면 누워서 별자리를 보고 절기를 헤아리는 것도 멋진 일이다.


요즘은 유목민의 게르에도 태양열 전지판이 얹혀 있고, 위성통신 접시도 있어 고비의 벌판에서도 티브이를 시청한다. 70년대 초, 내 고향 삼밭골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저녁마다 사랑방에 마실을 오던 이웃들의 발이 뚝 끊기던 생각이 났다. 게르에 얹힌 위성 통신 접시의 줄을 뚝 끊어 버리고 싶었다.

망망한 초원에 쉼표처럼 찍혀 있는 게르 한 채, 길을 잃고 자정을 넘겨 달리던 바양홍고르에서 별빛처럼 가물거리는 등불을 켠 게르 한 채, 그것은 몽골인에게 그냥 한 채의 집이 아니라, 역사이다.  


     몽골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 물으면

     누구는 초원을 가리키고

     누구는 바람을 불러오고

     누구는 밤하늘의 별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게르 한 채 보고 왔다고 대답하리

     멀리서 바라보면

     몽골 하늘의 희디흰 구름 빛깔을 닮은

     게르 한 채

     외로워서 빛나는 그 쓸쓸함을 노래하리

     초원도 바람도 별도

     가축마저 얼려 죽인다는 한겨울의 추위도

     게르 한 채에 모두 담겨 있으니

     그 안에서 밥을 해먹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누천년을 이어 살아오는 동안

     지배하지 않되 지배당하지도 않은

     게르 한 채의 역사를

     내 안에 온전히 받아 모시는 일이  

     내 삶의 과업이 되어야 하리


      - 박일환 시 ‘게르 한 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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